#도서제공 1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0들의 이야기이다.학생, 수험생, 취준생, 알바생을 거쳐 직장"인"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생"의 자리마저 박탈당하고 "백수"가 되어버리는 양은 위기감을 느끼고 경계선에 서있는 유령이 되길 자처하며, 다시 1로 수렴되고자 하는 그 길 위에 올라선다. 눈에 분명히 보이지만 자신의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유령 같은 존재들. 그러나 커다란 사진을 확대하면 보이는 한 칸의 픽셀들처럼 그들은 확대해야만 보일뿐 제 자리를 차지하며 단단하게 모여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만 보면 무용하고 파도에 휩쓸려 나갈 한 알의 모래알 같지만 수많은 0들은 다른 숫자에 기대어 우주의 단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양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오랜만에 크게 웃고 '외롭다'라고 혼잣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자리에서 비로소 밖을 바라보았기 때문이고, 수많은 0들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모였을 때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소설 영의 자리는 1보다 작은 0과 1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 촘좀하고 세세한 감정들을 너무 잘 묘사해서 1이 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나도 한때 존재하고 있었음을 감각하게 해주었던 소설이다. 특히, 중간에 잠깐씩 나오는 꿈같은 환상적인 서사는 주인공의 감정에 더 몰입하게 해주었다. 장복해 더 이상 효과가 없는 약을 먹는 사람이 되는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비극이 산개돼 평범한 일상으로 보이는 비극을 더 이상 견디지 않기 위해, 모든게 그대로여도 조금 변한 자신의 마음을 붙잡고 다시 0부터 시작하는 양에게 나는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마무리가 너무 좋았던 소설이다.올해 눈여겨볼 작가 목록에 고민실이라는 이름을 추가한다.📖 0에서 1로 변모하는 과정은 설레면서 우울하다. 곧 1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므로 0에 가까운 자신을 체감하게 된다. 첫 출근 날에는 0.0000001쯤 되는 기분이다. (34p)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나쁜 기억이 중요할지 몰라도 살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필요해. (56p)📖경계선만큼 유동적인 세상도 없다. 아무리 잔잔한 수면이라도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끊임없는 증발과 응결이 일어난다. 물 분자가 치열하게 움직인 결과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면이다. (148p)📖 경계선만큼 불안정한 것도 없다. 단순한 세상을 복잡하게 보지 않으면 경계선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간과하게 된다. (19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