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렘입숨은 1500년대부터 인쇄와 조판 산업에서 레이아웃을 편집하는 데 쓰인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지만, 읽었을 때 별다른 의미가 없다.
고 하여 아무 글자나 얹어놓은 것은 아니다. 최초의 로렘 입숨은 기원전 45년 키케로의 《선악론》에서 발췌한 문구를 뒤섞어 놓은 것이라고 하며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Neque porro quisquam est qui dolorem ipsum quia dolor sit amet,
consectetur, adipisci velit고통 그 자체를 사랑하거나 그것을 추구하거나 원하는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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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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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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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로지 환상이고
오로지 열정이고 오로지 소망이고
오로지 흠모이며 의무이며 복종이며
오로지 겸손함이고 인내이고 조바심이죠
피비에 대한 내 사랑 역시 그렇답니다.
ㅡ 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표제작인 이유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사랑이 지나고 남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찾아오면 기존의 감정에 많은 변이들이 일어난다.  그 변이는 그 사랑을 특정하게 하고 고유성을 가지게 한다.  내게 무가치하고 쓸모 없어진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단지 '사랑'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유용한 사랑이 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가 무수한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진이 친구 영인에게 돈을 받고 성재가 떠난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을 감정전이를 통해 팔았지만 그 감정을 전이 받은 영인이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의 감정이 균열되고 변이를 일으켜가며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물감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유일성과 일대일성을 가지기에 그 대상에만 유효하고 그렇기에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이전 사랑이 떠나면 다른 대상을 향한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이 다시 만들어진다.  영인이 이미 만들어진 타인의 사랑을 전이받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회복했다고 믿지만, 그 불완전하고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131p)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 수브다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은 안드로이드이다. 그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후 사랑은 깨지고 만다.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로 바뀐 피부를 원래의 부식이 되는 금속으로 다시 바꾸길 원한다. 수브다니는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애초 사랑은 자신의 그 원래 본질 속에서 태어났기에.  금속성 피부로 다시 돌아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마지막 작품 <변화의 실행>의 재현하며 자신의 피부가 부식되도록 하는 것은 그가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그 빛을 잃어갈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는 걸까요?'(134p)

천선란의 '뼈의 기록'에서 염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는 자살한 레나의 시신을 염하면서 남과는 다른 그녀의 고유한 뼈가 말하는 것을 읽어 나간다.  피부라는 외피에 가려진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녀의 뼈들은 그녀의 본질을 대변하고, '뼈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가능성'(254p)을 가진 점에서 아름답다.  뼈에 대한 이러한 속성은 앞서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과도 닿아있다.

로비스가 모미를 위해 그녀가 죽고나서지만 우주를 유영할 수 있도록 큰 용기를 냈던 마음,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에서 사고 트라우마로 왕따를 당하며 유령처럼 지내던 세인에게 먼저 다가간 현수의 마음, 과거 자신을 떠올리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경을 구해내려는 설재인의 '미림 한 스푼'의 미림의 마음, 우리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건 이런 마음들이다. 밤새도록 책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단편들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에 담긴 5편의 단편들 사이에는 다양한 사랑의 빛깔과 서로를 보듬는 마음들이 흐르고 있다.  나는 이 따뜻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 세익스피어의 인용글은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사랑이 될 것' (바버라 H.로젠와인, 서해문집)의 제사를 재인용

#내게남은사랑을드릴게요
#자이언트픽 #자이언트북스
#이유리 #김서해 #김초엽 #설재인
#천선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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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언어가 될 때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소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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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페미니스트 인식론)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했던 점들이 어디에서 기인하게 됐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됐고 5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관심의 수준을 벗어나 필수적으로 내가 맞춰야 하는 삶의 방향이고, 저자가 말한 대로 페미니즘은 실천적 학문이기에 내 삶과 동떨어질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균열을 반가워해야 함을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내가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나만의 생각에 갖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21p)

1. 페미니즘 인식론
(보편×특수, 지식x, 나×너)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1장 보편×특수 파트는 우리가 쉽게 쓰는 '보편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그 뒤에 가려진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보편은 사회의 기준점이다. 남성 중심 사고의 결과물인 보편엔 여성과 소수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보편에 이르면 이 세상은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스피커에 따라 같은 여성들 안에서도 잊힌 존재들이 있다. (이 사실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보편적인 여성을 대표해서 말한다고 할 때 그 보편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나'일수도 있다는 것을.) 소수자나 장애인들이 사회의 보편적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특수로 밀려났기에 그들의 운동은 인정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보편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편으로 설정하면 우리는 모두 편한 세상에 살 수 있다.(47p).

'지식은 권력 없이 존재할 수 없다.'(49p) 권력과 영합한 지식은 어떤 이들을 배제한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지식은 특정한 삶의 방식대로 사는 여성들을 칭찬하고 어떤 여성들은 주변부로 몰아간다.'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어떠한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가려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모든 신념들에 질문을 던지면서 성찰의 과정을 끊임없이 밟아 나가야 한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지며 폭력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 안에서 '타자화'와 '이분법적 사고'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내가 평소 불편해했던 지점들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쌍으로 구성된 이분법적 토대위에서 분노가 구성될 때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란 고작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83p)

2.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
(계급x여성, 자본×시간, 생산×소비)

저자는 자원 분배의 불평등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적 자원의 차이로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예를 들어 '계급은 여성의 현실을 가로지르며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여성만을 이야기하는 일이 어떤 여성의 삶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99p)고 말한다. 계급은 성별만큼 사람들의 생각을 주조한다. 이는 파트 1에서 읽은 '보편'의 문제와도 닿아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봄 노동자 모두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며 돌봄의 시간을 여성에게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 노동자를 돌봄 노동자로 설정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 '돌봄의 위기는 자본주의 위기이자 우리 자신의 위기이다.'

소비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의미를 떠나 타인과의 차별화의 욕구라는 주장은 흥미로웠다. 소비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소비에서 찾는 것보다 거울상인 생산에서 찾는 것과 노동과 소비라는 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혔는지에 관한 내용 등 생산x소비 파트는 보다 넓게, 미래를 위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게 하는 부분이기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의 첫 책으로 읽게 된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에세이보다는 다소 무겁고 인문서보다는 쉽게 서술됐다.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성장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솔직한 저자의 자기 고백에서 글의 진정성과 힘을 느꼈다. 그 점들이 나를,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추동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폭력관계에서 갈등의 해소는 일반적인 불화에서 늘 그렇듯 서로에 대한 화해나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갈등의 해결은 피해자의 성장이다. 존재에 매여 있지 않게 되는 것. 가해자의 존재를 나의 삶에서 쫓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폭력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자, 폭력의 경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23p)

페미니즘적 시각은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면서 훈련되고 학습된다. 그 지점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196p)

#경험이언어가될때 #이소진 #채석장그라운드
#문학과지성사 #채석장그라운드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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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키우는 사람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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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빛으로 가득한 '프로방스'에서 태어났기에 오렐리앙이 금(빛)을 자신의 꿈의 색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렐리앙은 자신이 찾는 꿈의 색인 금을 꿀벌을 키우는 일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화재로 순식간에 양봉장을 잃고 좌절한 그는 아프리카에서 금을 찾는 어떤 사람의 모험을 그린 책을 읽고 금색 피부의 여인과 꿀이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 오렐리앙은 다시 그의 꿈인 금을 찾으러 아프리카로 떠난다.

금의 꿈을 좇는 오렐리앙에겐 직진만 있다.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꿀벌을 키웠으며, 아프리카에는 죽음뿐이라며 말렸던 이 빠진 사람의 충고에도 아프리카로 들어갔으며, 마코넨 군주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꿀벌들의 절벽을 찾아 나선다.

꿀벌들의 절벽에 도착한 오를레앙은 꿈속에서 보았던 금빛 피부의 여인을 만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오렐리앙은 꿈을 이룬 것인가? 그러나, 허무하게도 오렐리앙이 감각했던 금빛 여인은 다음 날 사라지고 갈라족 마을은 마치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 그는 그곳에서 3년을 방황한다. 오렐리앙은 자신이 그토록 좇던 꿈이 무엇인가.

"그런데 이제 나는 그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147p)

오렐리앙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 귀향길에 만난 루아죌이 찾아온다. 광기 어린 야망을 품은 기술자 이폴리트 루아죌은 오렐리앙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며 돈을 들고 와 꿀벌 농장 아피폴리스를 만든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꿀벌의 오페라를 만든 후 그들의 농장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꿀벌에 대한 집착은 광기를 만들고 그 광기는 그들의 꿈에 독을 뿌리고 무너뜨렸다. 운명을 손에 쥐었다는 자만이 그들을 파산하게 만든다.

인생에 희망이 있는 것은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꿈을 좇아 머나먼 길을 돌고 도는 동안 오렐리앙은 자신의 금을 찾지 못했다. 오렐리앙은 다시 꿀벌 키우기를 시도한다.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준 폴린에게 주고 나자 그제야 자신이 그토록 찾던 여인이 폴린, 즉 자신의 금이었음을 알게 된다. 집요하게 금을 찾아 헤맸던 그는 그가 찾던 금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책에서는 유독 숫자 7이 집요하게 등장한다. 7은 완성의 숫자이며, '눈'에서 유코가 집착한 숫자이기도 하다. 금의 꿈을 좇으며 자신의 영혼이 무거워지고 가벼워지는 것을 7차례 느꼈던 것은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 마치 자신의 영혼을 일곱 차례 재련하는 과정을 이루어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라르에서 꿀벌들의 절벽으로 가는 길은 7일이 걸렸다. 아덴에서 마르세이유로 가는 배 안에서 그는 7일 동안 앓는다. 루아죌과 만든 아피폴리스가 무너지고 다시 재기하기 위해 오렐리앙이 만든 벌통은 7개다.

인생은 자신의 색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는 듯,
막상스 페르민의 색채 3부작을 통해 '눈'에서는 흰색을 쫓고, '검은 바이올린'에서는 검은색을, 그리고 '꿀벌 키우는 사람'에서는 금색을 좇아가는 주인공들을 만났다. 페르민은 세 권을 관통하는 색과 사랑, 예술 그리고 광기와 꿈..그것들이 버무려진 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이라고 말하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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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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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표지부터 강렬했던 그 책은 처음부터 무의식의 흐름을 언어로 엮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를 수차례 되뇌며 앞부분만 여러 차례 다시 읽고 다시 읽었던 난해하기 그지없었던 책이었다. 그러나, 묘하게 나를 시험하려 드는 느낌에 책 읽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지만.

나에게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남미 브라질 작가이며,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그녀의 데뷔작으로 을유문화사의 새로운 문고 시리즈인 암실문고판으로 국내 처음 출판됐다. 이 책은 그녀의 개성 강한 문체의 원류, 맨 처음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반가웠다.

🔖나는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태어난 원인을 미쳐 자각하지 못한 내가 나도 모르게 아주 중요한 것을 짓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의 위대한 겸허함이다. (24p)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 머리 속에 부유하는 감정들과 문장을 이루지 못한 단어들이, 독서를 통해 분명한 문장으로 완성될 때의 쾌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주아나가 무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내는 많은 문장들과 단어들이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 날 것 그대로 독자에게 마구 던져지는 느낌이다. 불가해한 문장들을 이성적으로 해독하려 할 때마다 나는 책 속에서 여러 번 길을 잃었다. 주아나 내면의 악과 순수, 잠재된 폭력, 그것들이 어지럽게 문장에 담겨있다. 아름다운 시를 짓는 어린 주아나에서 선생님과 오타비우와의 사랑의 감정을 겪으며 성장하는 여성 주아나의 시선으로 주변 인물들을 보다 보면 그녀가 왜 버지니아 울프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한 클라리시,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글은 반대로 어떤 독자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를 내 읽었을 때 오히려 더 좋기도 했던 (실제 이 책으로 낭독회를 하는 서점도 있다.) 이 책은 감상의 스펙트럼이 엄청 넓을 것 같아서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해 보고 싶기도 한 책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후의 시간 한 줌 속에 있게 되는거야, 알겠어? (13p)

🔖동물의 삶은 결국 이 쾌락의 추구로 귀결된단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 복잡해. 쾌락의 추구와 그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둘 사이의 시간을 잠식한 불만족으로 귀결되지. 내가 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상관없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니? 모든 갈망은 쾌락의 추구야. 모든 참회, 연민, 자비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모든 절망과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은 불만족이지. (78p)

🔖그래서 고통을 겪는 시인들의 시는 달콤하고 다정하죠. 반대로 불우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시인들의 시는 고통으로 불타오르고, 저항적이죠. (181p)

🔖특정한 대상들을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눈이 멀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예술가의 특징일 수도 있다. 그 누구라도, 진실이 이끄는 바에 따라 안전하게 추론함으써 자기 자신을 넘어선 것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들은 불을 밝힌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한다. (1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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