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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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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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로지 환상이고
오로지 열정이고 오로지 소망이고
오로지 흠모이며 의무이며 복종이며
오로지 겸손함이고 인내이고 조바심이죠
피비에 대한 내 사랑 역시 그렇답니다.
ㅡ 윌리엄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

표제작인 이유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는 사랑이 지나고 남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찾아오면 기존의 감정에 많은 변이들이 일어난다.  그 변이는 그 사랑을 특정하게 하고 고유성을 가지게 한다.  내게 무가치하고 쓸모 없어진 사랑이라고 해서 그것이 단지 '사랑'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유용한 사랑이 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우리가 무수한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여전히 어렵고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진이 친구 영인에게 돈을 받고 성재가 떠난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을 감정전이를 통해 팔았지만 그 감정을 전이 받은 영인이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의 감정이 균열되고 변이를 일으켜가며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이물감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유일성과 일대일성을 가지기에 그 대상에만 유효하고 그렇기에 고통스럽지만 아름답다.  이전 사랑이 떠나면 다른 대상을 향한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이 다시 만들어진다.  영인이 이미 만들어진 타인의 사랑을 전이받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회복했다고 믿지만, 그 불완전하고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인간의 재료가 달라진다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도 바뀌지 않을까?' (131p)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에서 수브다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은 안드로이드이다. 그는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인간화 시술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후 사랑은 깨지고 만다.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로 바뀐 피부를 원래의 부식이 되는 금속으로 다시 바꾸길 원한다. 수브다니는 자신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애초 사랑은 자신의 그 원래 본질 속에서 태어났기에.  금속성 피부로 다시 돌아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마지막 작품 <변화의 실행>의 재현하며 자신의 피부가 부식되도록 하는 것은 그가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의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그 빛을 잃어갈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는 걸까요?'(134p)

천선란의 '뼈의 기록'에서 염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는 자살한 레나의 시신을 염하면서 남과는 다른 그녀의 고유한 뼈가 말하는 것을 읽어 나간다.  피부라는 외피에 가려진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녀의 뼈들은 그녀의 본질을 대변하고, '뼈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르며,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는 불가능성'(254p)을 가진 점에서 아름답다.  뼈에 대한 이러한 속성은 앞서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과도 닿아있다.

로비스가 모미를 위해 그녀가 죽고나서지만 우주를 유영할 수 있도록 큰 용기를 냈던 마음, 김서해의 '폴터가이스트'에서 사고 트라우마로 왕따를 당하며 유령처럼 지내던 세인에게 먼저 다가간 현수의 마음, 과거 자신을 떠올리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경을 구해내려는 설재인의 '미림 한 스푼'의 미림의 마음, 우리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건 이런 마음들이다. 밤새도록 책의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단편들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에 담긴 5편의 단편들 사이에는 다양한 사랑의 빛깔과 서로를 보듬는 마음들이 흐르고 있다.  나는 이 따뜻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 세익스피어의 인용글은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사랑이 될 것' (바버라 H.로젠와인, 서해문집)의 제사를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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