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언어가 될 때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소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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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페미니스트 인식론)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했던 점들이 어디에서 기인하게 됐는지를 좀 더 명확히 알게 됐고 5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관심의 수준을 벗어나 필수적으로 내가 맞춰야 하는 삶의 방향이고, 저자가 말한 대로 페미니즘은 실천적 학문이기에 내 삶과 동떨어질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균열을 반가워해야 함을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내가 못난 사람일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나만의 생각에 갖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21p)

1. 페미니즘 인식론
(보편×특수, 지식x, 나×너)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1장 보편×특수 파트는 우리가 쉽게 쓰는 '보편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그 뒤에 가려진 존재들을 상기시킨다. 보편은 사회의 기준점이다. 남성 중심 사고의 결과물인 보편엔 여성과 소수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보편에 이르면 이 세상은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내는 스피커에 따라 같은 여성들 안에서도 잊힌 존재들이 있다. (이 사실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보편적인 여성을 대표해서 말한다고 할 때 그 보편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게 '나'일수도 있다는 것을.) 소수자나 장애인들이 사회의 보편적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특수로 밀려났기에 그들의 운동은 인정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보편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편으로 설정하면 우리는 모두 편한 세상에 살 수 있다.(47p).

'지식은 권력 없이 존재할 수 없다.'(49p) 권력과 영합한 지식은 어떤 이들을 배제한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지식은 특정한 삶의 방식대로 사는 여성들을 칭찬하고 어떤 여성들은 주변부로 몰아간다.'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어떠한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가려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모든 신념들에 질문을 던지면서 성찰의 과정을 끊임없이 밟아 나가야 한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무지로 이어지며 폭력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 안에서 '타자화'와 '이분법적 사고'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내가 평소 불편해했던 지점들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쌍으로 구성된 이분법적 토대위에서 분노가 구성될 때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이란 고작 파괴에 지나지 않는다.'(83p)

2.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결과
(계급x여성, 자본×시간, 생산×소비)

저자는 자원 분배의 불평등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물질적 자원의 차이로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예를 들어 '계급은 여성의 현실을 가로지르며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여성만을 이야기하는 일이 어떤 여성의 삶을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99p)고 말한다. 계급은 성별만큼 사람들의 생각을 주조한다. 이는 파트 1에서 읽은 '보편'의 문제와도 닿아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봄 노동자 모두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며 돌봄의 시간을 여성에게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 노동자를 돌봄 노동자로 설정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 '돌봄의 위기는 자본주의 위기이자 우리 자신의 위기이다.'

소비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의미를 떠나 타인과의 차별화의 욕구라는 주장은 흥미로웠다. 소비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소비에서 찾는 것보다 거울상인 생산에서 찾는 것과 노동과 소비라는 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혔는지에 관한 내용 등 생산x소비 파트는 보다 넓게, 미래를 위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게 하는 부분이기다.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의 첫 책으로 읽게 된 '경험이 언어가 될 때'는 에세이보다는 다소 무겁고 인문서보다는 쉽게 서술됐다. 저자는 페미니스트가 되면서 지금까지 겪어왔던 성장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솔직한 저자의 자기 고백에서 글의 진정성과 힘을 느꼈다. 그 점들이 나를,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추동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폭력관계에서 갈등의 해소는 일반적인 불화에서 늘 그렇듯 서로에 대한 화해나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갈등의 해결은 피해자의 성장이다. 존재에 매여 있지 않게 되는 것. 가해자의 존재를 나의 삶에서 쫓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폭력의 경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자, 폭력의 경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23p)

페미니즘적 시각은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면서 훈련되고 학습된다. 그 지점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1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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