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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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여자는 사이보그가 되어야만 하는가?


▶ 페미니즘을 공부하고자 하는 첫 걸음으로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논문을 모은 내용이 다수라 상상 이상으로 학술적이고 내용이 쉽지 않으므로. 하지만 확실한 것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면 이 책을 안 읽을 수는 없다.


▶ 과학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가 자연 과학적이므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지배의 당연함에 얼마나 기여해왔는지 다각도로 보여준다. 당연하게 그어두고 그 너머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어떠한 경계선을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책으로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보면 나의 경험과 배워왔던 일들과 지배(domination)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인지 저 아래의 근본부터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정말 객관적인가? 과학은 객관적인 게 맞나? 그런 사고가 가능하긴 한가? 그런 과학조차 문화적 맥락과 사회와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면서 현실을 직조해 낸 것임을 우리는 간과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여성을 만드는 것은 남성이 가진 특수한 전유 관계다. (p.250)


섹스란 단지 상상적 구성물로 사회를 이성애로 건설하기 위해 자연화 된 정치적 범주라는 문장을 보고 있으면 동성애가 왜 소수자로서 사회에 자연스레 편입되지 못했었는지, 특히 이 중에서도 게이보다 더욱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레즈비언임을 떠올려 볼 수 있으므로 틀린 말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를 안정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아이들, 섹스,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사회는 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정의하고, 심지어 한 때는 범죄로까지 낙인 찍었던 것이 아닐까. 철저하게 대상화 된 상상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말하는 7장. 마르크스주의 사전에서 젠더 편은 그 전체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가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해러웨이는 매키넌이 얘기했듯 '여성이란 상상적 인물이자, 다른 사람의 욕망의 대상을 실재로 만든 것(p.263)' 부분은 받아들이면서, 여성들을 같은 범주로 묶는 것은 거부한다. 여성은 여러 경계에 걸쳐 있고, 이 세상 여성의 수만큼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장한다.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p.328)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으로 인공두뇌를 이용해 자기를 조절하고 정체성을 확립해나간다. 여성 역시 그럴 수 있다. '몸'이라는 유기체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여성으로서의 기존 정체성을 파괴하고 재구성한다.

해러웨이가 그리는 사이보그의 이미지는 여성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비판적 실천을 행하고, '여성'이라는 기존의 경계를 넘어 사이보그로서 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 책을 읽은 뒤, 역자인 황희선 선생님 인터뷰나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았다. 확실히 쉽지 않은 책이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고민들을 더듬어 자료들을 찾아가며 한 발씩 생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는 책이었다. 사상의 발전만큼 현실이 빠르게 뒤따라오지는 못하지만 그런 씁쓸함을 한 번 깨물고, 공부하고 나아가기를 멈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당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읽은 뒤 주관적으로 작성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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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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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종말의 순간, 나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뻗어나갈까?

여기 다양한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B021342는 아주 매력적이고,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그만둘 수 없으며, 어느 정도 읽게 될 경우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인다. (p.15 [죽이는 것이 더 낫다])

 

 

종말 이야기, 재난 영화를 이미 어디선가 많이 본 주제이나,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면이 있다. 세상을 구하는 데는 관심 없고 자신의 감정 따라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나름의 마지막을 조용히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가위바위보 하나로 지구의 종말을 멈출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가위바위보 영웅의 어깨에 올려진 너무 무거운 무게...



너무 극단적이거나 튀는 행동, 이해가 되지 않는 서사의 흐름이 없어 첫 장을 펼치자마자 한 번의 쉼이 없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커다란 대의로 인한 희생 이런 것보다는 조금은 이기적일수도 있는 인간 개개인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색다른 느낌이기도 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게 보여서 오히려 편안한 위로로도 다가오기도 했다.


 

두께도 두껍지 않고 문체도 어렵지 않아서 누구에게나 추천 가능한 즐거운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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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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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번역이었습니다. 아는 분에게는 어렵지 않을 번역일수도 있지만 아예 처음인 저에게는 낯설고 힘들었는데, 이번 펀딩으로 받아본 <오뒷세이아>는 몇 장 펼쳐봐도 읽는데 어렵지가 않아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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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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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문장 내내 흐르던 불길한 분위기와 낯선 우물 속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기묘하게 담아낸 1권과 달리 2권은 본격적으로 왕자가 된 '찰리 리드'의 모험을 담고 있다.

망해버린 왕국과 거인을 없애고 저주에 걸린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면 본인도 동화 속의 왕자님이 되어야하는 법.
마치 그것이 운명이라는 듯 찰리는 외형부터 왕자에 어울리게 바뀌기 시작한다.


그렇게 왕자가 된 찰리는 2권 내내 영웅적 서사들을 그대로 밟아나간다. 역경과 고난, 그리고 이를 헤쳐나오는 그의 기지와 지지하는 동료들의 합류. 심지어 중간에 베푼 선행이 힘든 상황을 타개할 열쇠처럼 돌아오기도.


물론 중간에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킹이라는 걸 잊지 않게 해주듯 비틀리는 클리셰, 잔인한 서술, 자극적인 전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른을 위한 것이든 아이들을 위한 것이든 무릇 동화라 함은 권선징악, 해피엔딩이 기본 아니겠는가.
동화의 법칙을 믿고 쭉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분명 해피 에버 애프터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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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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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황금가지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제목은 페어리 테일. 근데 저자는 스티븐 킹.


동화는 동화인데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기에는 조금 곤란하다.

희망이 보이고 밝고 권선징악의 엔딩. 과연 그럴까?


처음에는 동화를 읽으면서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스티븐 킹이 그려내는 문장 속에서 흘러가다 뒤를 돌아보면 그제서야 지나온 길들이 동화임을 깨닫게 된다.

누가 봐도 오마주한 것처럼 대놓고 드러내는게 아니라 소설 전체적으로 동화들이 겹겹이 덮여있고 분해되어 공포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꾼'인 스티븐 킹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실과 페어리테일의 접합.


2권이라는 분량 답게 급작스러운 전개나 애매한 개연성을 들어내고 차분히 서사의 설득력을 키우면서 문장 하나하나로 섬세하게 불길한 분위기를 적층시키는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평화로운 듯 하지만 은은하게 불길함이 깔려있는 현실에서 기괴한 저편으로 넘어가는 순간, 공주를 구하는 왕자 혹은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의 모험 이야기 같으면서도 허황된 꿈을 찾는 어리석은 소년이 보여 결말에 대한 불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어둡지만 매혹적인 이야기에 독자는 바로 2권을 집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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