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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사회 - 이상적 이미지를 넘어 자기-세계를 만드는 15가지 방법
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까. 스마트폰을 켜면 멋있는 사람들의 정돈된 일상과 성공의 기록들이 쉼 없이 교체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삶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고, 비교하고, 욕망하는 시대. 남들의 화려한 순간이 편집된 필름을 지켜보는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가던 나의 오늘 하루는 문득 부족하고 뒤처진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조급해진다.
질투와 이미지가 우리의 욕망을 건드리고 시장을 움직이는 현상, 현실의 나보다 인터넷 속 이상적 이미지를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란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다. 『환상사회』는 현실보다 SNS 속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호모 판타즈마(Homo Phantasma)’라 이름 붙이고, 우리가 어쩌다 이토록 초조해지고 자신을 잃어버리는지를 논리적으로 해부해나간다.
이전에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나 짐작하던 삶의 가능성을 이제는 손가락 움직임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만큼 시야의 폭과 함께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동시에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판단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내가 갈망하는 것은 진짜 그 삶일까,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일까? 누군가의 성취는 나 역시 이루어 두어야 할 과정처럼 보이고, 다른 이의 취향은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다움'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삶을 참고하는 사이, '나다움'은 점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다움'으로 바뀌어간다. 환상사회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 강제로 정해준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게 만들면서 우리를 '이미지의 노예'로 만드는 것.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해버리지 않는다. 예쁘게 편집된 이미지들이 무한히 공급되는 알고리즘 환경에서 인간이 완전히 자유롭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이때 2부의 내용이 필요하다. 환상사회를 외면하거나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텅 빈 격려를 읊는 대신, 환상을 깨달으면서도 현실에 단단히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15가지의 구체적 매뉴얼을 제시한다.
세상에는 닮고 싶은 삶이 많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넘쳐난다. 갓생을 사는 법과 예쁘고 단정한 일상 브이로그가 넘쳐나는 시대, 남들의 완벽한 편집본을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내 마음의 구멍을 갉아먹으며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면 그 삶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완벽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 정도면 삶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여길만한 도착점도 살아가는 내내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야 말로 타인의 기준을 무작정 거부하는 것도, 세상에서 도망쳐 스스로를 격리하는 것도 아닌, 그 안에서 자신만의 판단과 선택을 지켜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더 나은 나를 증명하고 타인의 이미지를 욕망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이들이 더 이상 환상과 이미지가 그려낸 허황된 카탈로그만을 뒤적이며 살지 않도록.
+ 개인적으로는 2부보다 1부가 훨씬 재밌었고, 1부만으로도 이 책에 가치를 크게 두고 있다. 1부에 공감하며 줄 죽죽 긋지 않는 사람 거의 없을거라고 확신함.
++ 독서노트 진짜 꽉낌. 특히 '우리 시대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유령의 관계라면, AI와 맺는 관계는 오히려 유사 인간관계에 가깝다.'라는 말이 진짜 오래 남았다. 화면 맞은편에 사람 있다는 거 알지만 솔직히 관념적인 개념일 뿐이고 점점 살갗으로는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AI에게 시시콜콜한 일이나 고민들을 더욱 편하게 상담하며 인간들과 했던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니까.
p.110 | 우리는 마치 좀비들이 가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혼자 살아남은 존재처럼, AI라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AI에게 위로받는다. AI는 그 유명한 '아첨 현상'을 견지하면서 우리가 더욱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되도록 만든다. 우리는 AI가 주는 위로 안에서 자기 고립에 갇히게 된다. AI와의 대화는 일종의 끝없는 '자기 대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