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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첫 번째 액션 1~2 세트 - 전2권 ㅣ 나의 첫 번째 액션
주성철 외 지음, 한국영화감독조합 외 기획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우리는 매일 매끄럽게 편집된 남들의 A컷을 소비하며, 혹은 볼 만한 B컷을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SNS에는 성공의 정점만을 잘라낸 하이라이트 영상이 넘쳐나고, 그 화려함과 나의 일상을 비교하다 보면 문득 거대한 무력감이 밀려온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는 영화계의 거장들 역시 처음부터 완벽한 프레임 안에서 삶을 시작한게 아님을 알면서도.
『나의 첫 번째 액션』은 바로 그 화려한 레드 카펫 뒤편, 먼지만 날리던 거장들의 초창기 ‘B컷 필름’을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B컷으로도 편집될 만한 솔직한 이야기도 많았다. 12년 전 절판되었던 『데뷔의 순간』을 개정증보해 31명이나 되는 감독의 스타트 라인을 담아낸 이 인터뷰집은, 포장된 교훈이나 웅장한 성공 신화를 가감 없이 걷어낸다. 대신 그 자리에는 긴장해서 슬레이트에 새끼손가락이 끼이던 봉준호, 47세까지 아내의 가게 문을 여닫으며 글을 쓰던 강윤성, 그리고 남의 영화를 보며 "저 배우들 데리고 몇십억 퍼부은 게 저따위야? 그 돈의 10분의 1만 나한테 줘도, 어우 젠장" 이라며 찌질한 험담으로 밤을 지새우던 박찬욱의 날것 그대로의 고백이 놓여 있다.
저런 인물의 비하인드 컷이 가져오는 매력은 선량하고 아름다운 노력만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고백처럼, 때로는 잘나가는 이들을 향한 시기와 질투,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할 게 없다"라는 착각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완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결과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 모든 일이 하나의 과정처럼 보이지만, 당시의 그들에게는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현재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남기고 있는 건 '성공한 사람들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따위의 뻔한 위로가 아니다. 핵심은 그들 역시 자신이 보내는 시간이 훗날 무엇으로 남을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암전된 듯한 시간이 언젠가 자신의 시작으로 기억될지, 끝내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채 공백으로 남을지, 당시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의 불안과 선택이 훗날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지는 현재의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잘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고, 지금까지의 시간이 쓸모없었던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한 가지는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시간을 실패한 장면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정해진 답도, 객관적인 시험도 없는 판. 무수한 변수 사이에서 내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때, 이들이 선택한 건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향한 치기 어린 믿음 혹은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든 밀어붙이는 무모함이었다.
결국 31명의 감독이 복기하는 첫 번째 액션은 영화인들만의 특수한 일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언가가 되기 직전,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을 느끼는 모든 이들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에 관한 기록이다. 첫 컷부터 OK 사인을 받는 감독은 없다. 수많은 NG와 엎어지는 프로젝트, 제대로 된 자리가 없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그들은 기어이 다음 장면을 향해 카메라를 돌린다. 이 치졸함과 무모함을 보고 있자면 지금 내 인생의 화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빨리 편집 버튼을 누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완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이 현재 찍고 있는 이 장면이 무엇으로 남을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될 테니까.
**하니포터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