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의 괴이도감
현찬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훤칠한 키에 단정하게 생긴 이목구비는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끄는 것이었지만 궁녀들이 모인 것은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수풀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고 두꺼운 뿔이 나 있던 것이다.

— p.218,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현찬양, 엘릭시르)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 그러나 이마 위로 난 뿔. 작가의 전작인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서 나오는 '강수 선생'을 묘사한 글이다. 당시에는 그저 신비로움만 남기고 스쳐 지나간 이 인물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이야기가 바로 이 『강수의 괴이도감』이다.


작가가 제목에 귀신이나 요괴가 아닌 '괴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서늘한 공포 대신 온기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는 동양 판타지다. (내 기준 '궁궐 괴담' 시리즈가 차라리 더 공포에 가까웠다) 한국의 쌍두사목이나 인어(그 인어 아님 진짜 아님), 이무기 등 낯이 익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기도 하는 괴이들이 와글와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즉,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관습적으로 오컬트 서사가 밟아온 퇴마의 길을 거부하고 선과 악,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대신 인간의 언어와 틀로는 규정되지 않던 존재들의 생명력이다. 인간 중심적인 시선에서 정상적이지 않고 별나며 괴상하다는 뜻의 괴이라 불렸던 존재들은 퇴치해야 할 공포가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주체로 조명된다.이 지점에서 강수가 작성하는 '도감'은 대상을 인간의 지식 아래 통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존재가 가지는 다채로운 성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억하기 위한 일기 같은 기록물에 가깝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흉내문어'의 이야기였는데, 바다에 사는 이 흉내문어는 여인들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다. 과거 선원들은 거친 풍랑을 만날 때마다 용왕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제물로 바다에 던졌다. 그러나 사람을 던진다고 잠잠해질 풍랑이 아니었기에, 결국 여성이 빠진 뒤 배도 난파되어 남자들 역시 바다로 떨어지곤 했다. 흉내문어의 눈에는 그 광경이 여성을 먹기 위해 남성이 뒤따라 뛰어내리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문어는 남자를 유인해 잡아먹기 위한 미끼로 스스로 여인의 형상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잔혹한 관습과 비극이 괴이의 생태와 물물교환하듯 얽혀드는 과정은 기묘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엇보다 현찬양 작가는 전작 『식탐정 허균』이나 궁궐 기담 시리즈에서도 증명했듯 '콤비 서사'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강점을 보인다. 겉보기엔 멀쩡하다 못해 수려하지만 엉뚱하고 허약한 소공자 '강수', 그리고 겉으론 툴툴대도 세상의 풍파를 다 겪어낸 엉터리 맹인 점복사 '두타비'. 흔히 콤비물에서는 어느 한쪽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느라 다른 한쪽이 병풍으로 전락하거나 도구로 소비되기 쉬운데도, 너무나도 확연히 다른 두 인물이 서로의 약점을 교차하며 메워주는 상호보완적 균형이 절묘하다. 티격태격 투닥거리는 케미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내는 관계성은 서사를 끌고 가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


세상을 깊이 알고싶어 하는 강수와, 세상을 굳이 다 밝혀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흘러가게 두는 두타비,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간 기묘한 동행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직접 책장을 넘겨 그들이 다다를 도착지를 함께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p.312 | 삶은 고통이니 오로지 망각만이 그를 구원하리라. 그가 끝없는 망각 속에서 순간순간 행복하기를 두타비는 빌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