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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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설화 ‘장화홍련’은 계모의 학대와 자매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원혼의 복수를 다룬다. 전통적인 서사 안에서 자매는 늘 피해자이자 억울함을 호소하는 수동적인 존재에 머무른다. 그런 설화가 지금까지 구전된 데에는 아마 그런 수동성이나 자매에게 씌워지는 어떠한 프레임이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는 이 오래된 물귀신 설화를 현대 스릴러로 완벽하게 비틀어낸다. 소설 속 자매는 단순히 슬픔에 갇혀 우는 귀신이 아니다. 이들은 가부장적 질서와 백인 중심 사회가 강요한 ‘완벽한 딸’이라는 허상을 깨부수기 위해, 스스로 금기를 깨고 괴물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들의 선택이 독자에게 지독한 슬픔과 동시에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안가 마을 ‘제이드 에이커’는 아름답지만 한국인 이민가족에게는 배타적인 공간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슬픔에 일상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어린 동생 수진의 사이에서 장녀인 '미래'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의도치 않고 악의없이 오는 '든든한 장녀' 가스라이팅이 낯설지 않다. 평범한 가족들이 첫째에게 흔히 씌우는 이 무거운 굴레는 미래에게는 일종의 서서히 숨을 막아오는 물고문과 다름없다. (굳이 한국 사회나 문화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소설이 외국에서도 분명히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장녀를 향한 특정 프레임과 거기에서 기인한 고독은 시대나 문화를 넘어서도 분명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있다)


언니의 익사 이후, 동생 수진이 가문의 금지된 주술로 언니를 되살려내면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부활한 미래가 보여주는 난폭함과 광기는 단순히 주술의 부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열한 살 때부터 ‘완벽한 장녀’라는 감옥에 갇혀 억눌러왔던 썩어 문드러진 감정들의 폭발이다. 멍청한 결정을 내릴 자유조차 없었던 영혼이 마침내 통제력을 잃고 폭주할 때, 그 파괴의 행보는 잔혹하지만 굉장한 통쾌함을 동반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소름이 끼치는 점은 '귀신'과 '강물'이라는 존재를 세대적 트라우마의 메타포로 사용했다는 부분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감내하고, 장녀라는 이유로 슬픔조차 사치로 여겨야 했던 상처들. 마치 물귀신이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사람의 발목을 잡고 밑으로 끌어내리듯이 계속해서 대물림되는 이야기들.

미래가 저지르는 거침없는 복수극은 자신들을 억압해 온 불합리한 세계를 향한 피의 복수나 다름없다. 이 처절한 붕괴 과정이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축축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묘사되고 있다.

완벽한 딸이라는 유령 같은 족쇄를 강물 깊은 곳으로 끌어내려 익사시킬 때, 자매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하다. 그러나 그 비극적 결말 속에서도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은, 강제로 씌워진 프레임 밖으로 나가겠다는 발버둥과 외침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이 잔혹한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이 끝내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서야 비로소 해방감을 느끼는 구도, '딸'이라는 이유로 짊어져야 하는 기대와 희생의 무게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어디든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사실은 입맛을 쓰게 만든다. 어디에서나 딸들의 삶은 이토록 비슷하고 서글픈 것이었을까.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 안에서, 악의 없이 건네지는 "착하고 든든한 첫째"라는 다정한 말들이 도리어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가장 날카로운 밧줄이 되는 비극을 마주하는 일은 착잡하기도 하다.



인생을 뒤흔드는 상실 앞에서 자매가 내린 선택들은 분명 완벽하진 않고 위태로운 면도 있지만, 그들이 흘린 피는 세상의 모든 착한 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장르적으로는 호러와 스릴러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세상의 모든 딸들이 치러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한 처절한 고발에 가깝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스스로의 영혼이 썩어가는 줄도 모른 채 버티고 있는 이들, 특히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수많은 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더 이상 잘해내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를 물속으로 완전히 던져버리라는 이 이야기가 남기는 카타르시스는 분명히 강렬하고 오래도록 마음을 뒤흔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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