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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우리는 슬픔을 보통 무게로 느낀다. '무거운 슬픔에 짓눌린다' 라던가, '가슴이 내려앉는다' 라는 표현이 증명하듯이.
그러나 임선우의 세 번째 소설짐인 『지상의 밤』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슬픔의 무게가 아니라 상실이 찾아왔을 때 우리 삶의 형태가 어떻게 일그러지고 변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리적인 문제다.
임선우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작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 비대해질 때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라고 다그치는 대신, 인물들의 외형이나 물질적인 상태를 바꿈으로서 오히려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지상의 밤」 편의 해파리가 그렇고, 『초록은 어디에나』(2023, 자음과모음) 에서는 낙타)
그간 임선우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읽은 독자에게 이번 소설집의 핵심 표상인 해파리는 갑작스러운 변주가 아니라, 임선우 소설 세계가 오래도록 예비해온 상징으로 읽힌다. 작가는 유령, 돌멩이, 해파리, 낙타처럼 지상의 물리 법칙을 이탈하는 존재를 그려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 왔기 때문에. 이번 작에서는 그것이 해파리로 만개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낯설고 기묘한 생물체로의 변신은 파격적인 설정이 아니라, 작가가 오랫동안 다듬어온 세계관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도착지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실을 마주할때 언어를 잃는 대신 형태를 바꾼다. 연인이 물이 되어 흘러 내리고, 인간이 촉수를 가진 해양 생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어쩌면 이를 ‘기괴하지만 귀여운 환상’이라 명명할 수도 있겠으나, 실상 이는 극심한 고통 앞에서 인간의 문법이 파산했을 때 일어나는 슬픈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이전 앤솔로지에서 작가가 말했듯 '생으로부터의 완전하고도 완벽한 도망'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 온전한 인간의 형태로 버텨내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칠때, 인물들은 스스로 형태를 무너뜨림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난다. 단단한 뼈대와 규격화된 일상을 포기하고 흐물거리는 존재가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필사적인 도피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완벽하게 소멸하는가? 형태를 버리고, 혹은 잃었더라도 여전히 지상이 그들을 붙잡는다. 해파리가 되기 전 공백의 시간을 메우는 사소한 일상, 신체를 바꾸고도 지워지지 않는 관계의 잔상을 보며 이별이 관계의 완전한 소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단지 다른 질감으로 변한, 존재 방식으로의 변환일 뿐.
《지상의 밤》은 우리에게 깨끗하고 무결한 치유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태를 바꾸며 계속 살아가는 슬픔의 생태계를 보여주고 있다. 얼룩진 채로, 모양이 일그러진 채로도 지상에서의 삶은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지속 자체가 인간이 부릴 수 있는 가장 고요한 용기임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우리가 흘려보낸 눈물과 잃어버린 존재들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 어딘가에서 액체로, 유령으로, 혹은 바다의 생물로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우리 곁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밤이 지나도 지상이 사라지지 않듯, 우리의 슬픔 역시 지상의 풍경 중 일부가 되어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 이미 이전에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이라는 앤솔러지에서 표제작을 읽어본 터라 약간 아쉽긴 했다. 생각보다 읽은 단편이 많아서...「유령 개 산책하기」도 그렇고.
** 출판사로부터 월간 릴레이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