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백사혜 지음 / 허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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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


p.208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완벽한 드라마라 읽는 내내 온전히 한 세계에 푹 빠졌다가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서 너무 선명하게 제 흔적을 내리누르는 여운 때문에 빠르게 읽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빨리 이 이야기를 소진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시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국가 정상이 아닌 영주의 세상이다. 민족과 국가로 나뉘어진 세상에서 흔히 일어났던 쓸데없는 인종차별이나 극단적인 애국주의 따위의 크고 작은 혐오 분쟁이 없어진 대신, 축적해 온 재산의 차이로 신분이 결정 나는 세상.


p.171


 먼 미래, 지구 밖의 행성까지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는 진행된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영주의 투자금으로 우주 행성 여기저기에 파견된 개척단은 테라포밍에 성공했으나 영주가 군림하는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분노한 영주들은 이 '외지구'에 정착한 개척단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넓은 우주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이 단편집은 우주 전쟁의 발단에서 결말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차별이나 탐욕, 인간의 이기심, 척박한 세상에서 지켜야 할 인간성에 대한 의문 등이 치밀하게 전개된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연민이 배부른 자의 사치와도 같은 시대에 '인간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숭고한 것일까 아니면 끝없는 탐욕에서 기인한 이기 자체가 인간이라는 증명일까. 기술이 끝없이 진보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각자의 욕망을 부딪히며 발생하는 갈등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고민되어 왔던 인간성에 대한 의문이라는 점에서 SF 잔혹동화의 탈을 뒤집어 쓴 익숙한 휴먼드라마의 맛이 났다. 물론 배경 설정이나 결말 그 어느 것 하나 뻔한 것은 없었기에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지만.



 차갑고 시린 세상 속에서도, 가장 아래의, 가장 더럽다고 여겨지는 그 어둠 속에서도 인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서 살아간다. 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남을 지옥으로 끌고가기도 하지만 그 선택에는 오롯이 자신이 갖고 있는 단단한 이유가 있었기에 현재 시점 기준 좋은 선택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택한다 하더라도 납득이 된다. 이념의 경중이 나와 다르더라도, 어떤 잔혹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를 선택하는 것 역시 어떤 인간의 인간성이라는 말을 서사로만 이해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그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이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외부의 폭력성에 무릎을 꿇든 제 잘못이 아닌 불평등한 상황에 휘둘려 어떤 결정을 하든 모두에게 다르게 주어진 운명에 흔히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걸 고르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고.



+ 장황한 후기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책 너무너무 재밌어요!!!였다. 사실 작가가 창조한 독자적인 세계관에 푹 빠지는 것이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정의 빈틈이 보이기만 하면 자꾸 가시처럼 눈에 박혀서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덮은 SF 소설집이 몇권이었는지..ㅎ... 근데 이건 납득과 이해. 진짜 짜증나는데 그럴 수 이쒀...하고 고개를 주억거림.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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