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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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죽으려고 한다." / p.57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기념일 (紀念日)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


기념일이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약속한 것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든 개인의 것이든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하는 날'이다. 기억하고자 이름을 붙이는 행위로서 성립하는 기념일. 단순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일이라도 기억하는 날로 해석하는 일. 그런 것이 8인의 소설가들이 이 책에서 정의내린 기념일이다.


무언가 잊으려 하면 그것만 계속 생각난다는 모모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잊기 위해서는 그것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피할 수 없다. 상하고 망가져도 어쩔 수가 없다. / p.228 <비트와 모모>

가장 좋았던 작품은 위수정 작가의 <비트와 모모>. 반려견 모모의 생일을 중심으로 아이와 함께 했던 일상들이 '기념'이라는 이름으로 떠오를 때 어떤 먹먹한 감정들이 펼쳐진다. 이 때의 기념일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기념의 의미가 아니다. 잊혀서는 안되는 슬픔의 기억일. 매년 이 슬픔을 곱씹는 것이 어쩌면 비생산적이고 개인을 슬픔에 묶어두는 일 같지만 오히려 충분히 기억되지 않은 채 잊으려 노력하는 것이 더 개인을 감정에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남유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 여기서도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누구나 행복할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모두가 기념하는 날에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모의 선택을 돕는 이야기. 본인의 생계고 때문에 이모의 유언을 들어주지 못한 자에게 크리스마스는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까.

(추가로 이 단편은 돈이 있는 자들은 죽지 않게 된 세계를 그리는데, 이 세계에 죽은 인간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구경거리가 되는 게 기분이 너무 이상했음...)



기억하고자 하는 순간은 사실 365일이 지난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의 관념적 날짜일 뿐일 기념일이 객관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생각이 들지만 중요한 건 365일이 지난 뒤에 거듭 반복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일, 순간의 감정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일, 평범한 일상을 선명하게 채색하여 기념했을 때 삶은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하게 다가올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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