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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평점 :

"혹시, 벌에 좀 쏘여봐도 될까요?"
p.20, <달고 미지근한 슬픔>
국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언어가 다른 한국과 중국의 여성 SF작가 여섯이 만나 펴낸 몸에 대한 사유. 사실 다른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는지라 기본적인 감수성이 유사해서 읽기에 낯설지 않았다.
'몸'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촉각되는 이 부피감 있는 덩어리를 넘어 앞으로의 미래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머지 않은 미래의 우리는 기존에 생명이 창조되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태어나 신체 자체가 다른 존재를 마주하게 되기도 할 것이고, 어떠한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신체가 대체될 수 있는 때가 곧 올 것이기 때문에. 이 때, 우리는 기존의 '몸'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이 문제의 답을 김초엽 작가의 단편에서 일부 발견했다.
인류는 데이터 세계로 이주했다. 몸도, 뇌도 없는 완전한 데이터, 물리적 현실을 모방한 가상의 세계. 누군가는 이 허무에 질식하여 자살하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잊고 삶에 몰두한다. 그 중 '단하'라는 양봉꾼에게 어느 날 곤충 연구자 '규은'이 찾아오고 그들은 살아가는 느낌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가장 인상깊게 본 이유는 이 문제는 분명 사회의 담론이 필요한 일이므로. 실제로 기존의 '몸'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사이보그적 특징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스레 받아 들이기엔 도구를 사용하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 도구가 신체를 대체하는 범위도 점점 넓어지는데 우리는 이 기존의 신체와 다른 것들을 과연 '몸'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그 부분마저 내 몸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말랑한 피부와 내장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주는 감각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에서부터 뇌를 자극하여 오는 감각들을 진짜 내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사이보그'적 특징을 실제로 지니고 미래에 이런 이들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첨착해 온 작가의 목소리는 강력한 설득력과 함께 알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스스로의 인식, 타인과의 관계, 언어, 공유하는 기억 등 많은 것들이 '몸'을 구성한다. 관념적 몸에서 벗어나 새롭게 인식하는 몸은 분명 개방적이고 평등하며 진취적이다. 앞으로 마주할 기존의 인간과 다른 것들과의 공존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답이자 미래를 향해 가장 먼저 내딛은 첫 발자국과도 같은 책이었다.
+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사계절) 읽다 말았었는데 꼭 다시 도전해야겠다.
++ 왕칸위 작가의 <옥 다듬기>도 좋았다. 뭔가 소설적 재미가 있는 작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