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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그 시장은 시간의 미로였다. 과거를 품은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현재를 잊게 만드는 골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걷다 보면 시대를 뛰어넘은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 p.11
밤 11시에서 새벽 4시까지 문을 여는 골동품점.
주변에서 '귀신 들린 가게' 라고 불리는 곳.
범유진 작가 하면 자꾸 호랑이가 생각난다. '범'이라는 작가의 성에서 출발하지만 작품을 읽어도 그 이미지는 깨지지 않고 유지된다. 수풀 속에 눈을 번뜩이며 숨어있다 필요한 위치에 적확하게 송곳니를 박는 호랑이처럼 작가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꽂아 넣는다. 환상 같은 소재에 현실 사회의 모순을 얹어 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기담.
호랑점에 놓인 골동품 중 판매 금지 품목은 이 성냥처럼 사연이 깃든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자신과 비슷한 한이 응축된 사람을 끌어들여 가게를 벗어나려 하지요. 그렇게 멋대로 돌아다니면서 계속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것도 한을 해소하는 방법이 됩니다만… 그래서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니 가게 안에서 한을 정화하는 겁니다. / p.57
콜센터 노동자와 인간을 부품처럼 갈아 넣는 근무 환경, 아내 살아생전에는 가정폭력범이면서 그에 기생해 살아가다 죽고 난 이후에는 아내를 대체해 자신을 돌볼 아이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는 (ㅆ...)할배, 유튜브 인기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 되는 행동까지 하는 청년들...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호랑골동품점'의 저주 받은 물건을 만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호랑골동품점에서는 한(恨)이 깃든 물건을 판다. 무작위로 살을 뻗는 원(怨)이 아니라 한. 분명한 인과가 있고, 작동하는 원인이 있으며 공포보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인연은 분명 사람의 것이다. 연유를 들여다본 이후에 우리는 그 기이한 물건을 '흉한 것'으로 단정지어 분리할 수 없게 된다.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물건에 깃든 슬픔과 죽음을 비극의 자리에서 끌어 올린다. 다정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열리는 호랑점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아쉬운 점은 호랑점의 점장인 이유요의 이야기가 많이 안 풀렸다는 부분. '호미(虎眉)'라는 독특한 설정을 내세우며 그 신비로움과 능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딱히 그런 부분이 돋보이지는 않아 아쉬웠다. 워낙에 매력적인 설정이라 뭔가를 보여주겠거니 기대한 것도 있었고. 하긴 근데 이게 더 두꺼운 장편이었으면 모를까 하고싶은 이야기가 그런 능력 부분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것 같기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