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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평점 :

요즘 사람들은 김천이라는 지역은 잘 몰라도 김밥천국은 잘 안다. 결국 수많은 김천 특산물을 제치고 김천에서 김밥축제를 열었을 정도로. 살면서 김밥천국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방문한 이유와 추억은 다양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김밥천국은 대다수 한국인의 추억 한 부분에 확실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단편집은 각각의 음식을 테마로 잡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별한 서사나 독특한 성격이 있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배경과도 같아서 눈치채려 하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그런 사람들. 괴로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소설 주인공 같은 사람들보다는 좌절하고 힘에 겨워하는 그런 인물들이 고단함을 달랠 작은 위로를 찾아 김밥천국의 문을 연다. 김밥, 떡볶이, 돈가스와 콩국수 등 열 가지 음식을 주제로 단편들이 전개된다.
사실 김밥천국 자체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수많은 장소들이 나오는 힐링소설처럼 어떠한 삶의 힌트나 위로를 제시하지 않고 묵묵히 손님이 주문한 따뜻한 밥만 내어준다. 밥을 먹고 나온다고 해서 현실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시간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상황을 재조립해보기도 한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남이 차려준 나를 위한 한 상과 차분하게 자신을 위한 자리를 주는 것. 고작 그 정도로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 걸어볼 수 있다.
작가는 개인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장소로서 김밥천국을 사용하고 있다. 어디에나 있는 김밥천국과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면서 독자를 위로한다. 어렵지 않은 서사와 복잡하지는 않은 사안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마주하고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높은 그런 어려움들을 끄집어 내어 잠깐 숨 고르고 가라며 밥 한 끼를 권한다. 복잡다난한 현실만큼 위로도 피로할 정도로 많은 시기에 적절한 정도의 담백함이 돋보인다. 어둡고 지친 마음에 한숨 돌리라며 희미한 주황색 빛이 켜지는 듯했다.
+ 한국인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밥심이다.
++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시선은 역시 언제나의 전혜진 작가의 작품과 같다. 변하지 않는 통쾌한 시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