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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체인지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8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평점 :

달콤한 환상 속 기괴한 욕망이 뿌리를 내린 세상의 이야기. 만족을 모르는 뿌리의 끝은 탐욕스럽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돈으로 젊음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노인이 사라지고, 노인 혐오가 더 커지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말 그대로 노오력하여 돈을 모으면 젊어질 수 있는데 왜 그러지 않은 채 쭈글쭈글하게 늙는 것을 택했냐는 것, 젊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젊음을 사지 않은 노인들에게 젊어질 것을 강요한다. 무언의 압박에 못 이긴 노인들은 결국 젊음을 나눠줄 '셀러'를 찾게 된다. 이 젊음의 값은 과연 얼마일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값은 돈이라는 화폐 가치로 충분히 치를 수 있게 될까.
다시 젊어지고 싶은 꿈은 비단 지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전부터 젊어지기 위해 젊은 여자의 피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 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젊은 사람의 젊음을 어떻게든 빼앗고 싶은 욕망은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다. 요컨대 '젊음'을 연속성이 있는 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뚝 떼어서 사고 팔 수 있는 재화처럼 여기는 것.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인간에게 쥐어질 때, 사회는 어떤식으로 일그러지는가. 돈 많은 노인들의 젊음과 영생을 위해 돈 없는 청년들은 시간을 팔고 소모품이 되어 그 밑에서 조용히 죽어간다. 젊음을 판 '셀러'가 죽으면 대체할 호르몬을 못 찾은 '바이어'도 죽는다는 설정은 미래에 기생해 살아가면서 돈을 지불했으니 괜찮다는 이 시대의 부유한 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 기괴한 구조는 무서운 설득력이 있다. 과학이 더욱 발전한 신자유주의의 종착역이 바로 이런 곳일테니.
'젊어진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는 영화 서브스턴스와 큰 차이는 없지만 서브스턴스가 남성들의 시선에서 끊임없이 상품화되는 여성들을 보여줌으로서 차별적인 사회와 기이한 산업 구조를 집어내는데 있다면, 『호르몬 체인지』는 더욱 보편적인 개인과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고, 비춰지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현재와 더욱 닿아있다. '젊음'이라는 재화를 둔 계층들의 각자의 사정이 낯설지 않아 잔잔하게 소름이 올라오는 기괴함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젊음은 정말로 나의 욕망인가.
+ 얼마전에 15세 미만 아이들로 아이돌을 만들겠다며 화장을 하고 짧은 옷을 입혀 상품화했다. 여성 아이돌이라는 포장지로 성상품화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어른들의 비틀린 욕망은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로 자꾸자꾸 내려간다. 소설 말미의 '셀러'를 보며 나는 이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