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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평점 :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는 그였다. 그는 여전히 내게 고유한 존재였다. 그는 고양이로 변한 그였다. / p.57
'인류의 5%가 고양이가 되어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류의 웹소설 제목 같은 판타지이지만 너무나 소소하다. 얼마나 소소하냐면 사람들은 거대고양이가 짠하고 나타나서 [고양이가 되시겠습니까]가 적힌 계약서를 들이밀고 하룻밤 사이에 가족 연인들이 고양이가 되어도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거대 고양이의 음모나 이를 밝혀내는 조직의 이야기도 없고 고양이로 변한 아버지를 둘러싸고 재산 싸움을 하는 자식도 없다. 그려지지 않은 물밑에서는 과학자들이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연구하고 각 행정처들 고양이가 된 인간의 다양한 권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머리를 싸매겠지만 적어도 이 단편에서는 그렇게 크고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존재이니까.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더라도 여전히 온기를 나눌 수 있고 사랑하던 눈빛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인간'으로서의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단편을 전체적으로 떠받치고 있다.
이 사랑은 여전히 쌍방향이다. 연인과 같은 종이기를 포기하고 고양이가 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아가페적인 사랑을 완성한다. 연인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의무나 집착을 벗어나고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오롯이 주는 사랑, 경계 밖으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변함없이 곁에 있어주는 반려. 형태가 고양이든 강아지든 무엇이 중요할까, 그냥 곁에 있는 존재의 사랑 이야기인걸.

<작가의 말>이 충격적으로 좋다. 단편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책을 애타게 찾고 있는 '이름 없는 출판사'에 보내는 말이라니. 가장 사실적인 성격의 페이지까지 도구로 활용해 이 책의 세계를 완성시킴으로써 이 약간은 달콤 쌉싸름한 판타지와 현실이 겹쳐진다. 특별하고 낯선 곳이나 시공간적으로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나와 닿아있는 현재와 당장 연결된 인연을 말하며 부드럽게 연결되는 세계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