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제30회 한국 출판 평론상 출판평론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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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도서관이 시민 혁명을 통해 공공도서관으로 재탄생했음을 생각할 때, 도서관, 특히 공공도서관은 태생부터 '정치적'이다. / p.126


얼마 전에 SNS에서 그런 글을 본 적 있다. '광고 보고 약정 걸고 팝업 끄고 체크를 잘 보고 해야 하고 3개월 뒤에 자동결제 잊지 말고 해제해야 하는' 그런 모든 일 없이 순순히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에 대한 새삼스러운 놀라움.


윤석열 정부는 지속적으로 도서관 지원을 줄였고 인구대비로 장서량을 축소시켰다. 잡지는 아예 갖춰두지 않아도 문제없도록 시행령을 뜯어고쳤다. 우민화 정책의 일부인 걸까, 그래서 희망도서 신청이 막혔네 등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언제나 어릴 때부터 당연히 옆에 있던 하나의 정물 같은 느낌이라서. 그렇기에 작가가 '도서관 덕후'라고 했을 때 그냥 '책 덕후'인가라고 막연하게 연상했다. 그 공간 자체를 덕질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종로의 '정독도서관'의 정독(正讀)이 박정희의 '정'과 독서의 '독'이 합쳐진 글자라는 것을 알았는가, 종로 도서관 앞의 동상이 친일파 동상이며,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은 처음에 도서관이 아니라 비밀경찰 조직 '사직동팀'의 안가였다는 사실 역시 너무 놀라웠다. ( 심지어 이후에도 이 공간을 여성 경찰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경찰이 다시 차지하려고 했다는 게 놀랍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은 그냥 어린이 줘라 좀... ) 그냥 정치와 엮인 도서관을 말하는 1부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도서관이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는 점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는데, 지극히 정치적이고 아직도 일본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곳들을 톺아보면서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어쩐지 정치·사회적 격동과는 떨어진 정(靜)의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동(動)적인 성격이 강했으므로. 


일제강점기에 틀이 놓인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을 해방 후 8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 / p.64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도서관에 그냥 대놓고 친일파, 독재자의 흔적이 떡하니 있었다는 것이다. 앞마당에 당당히 서있는 친일파 동상이나 독재자 휘호석을 그냥 흔적이라고 할 수가 있나. 친일파라는 사실 적시 안내문 하나 없이 그냥 모른 체 당당히 서 있는 '이범승선생의 상' (진짜 이렇게 쓰여있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구나 전두환은 국민을 학살하고, 권좌에 오른 자가 아닌가? 독재자의 휘호석을 '방치'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역사 의식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의 지적 유산과 함께, 독재자의 '하사품'을 후대에 전승하려는 것인가. / p.342



도서관에는 두 종류의 사(史)가 있다. 인간이 손으로 남겨둔 역사가 고여있고, 정치 · 사회적인 외력에 의해 공간 자체가 영향을 받으며 묶여 함께 흐른다. 그 흐름을 짚어가는 손가락의 끝은 결국 현재를 향해 있다. 과거의 성과와 문제가 엉켜 지금의 도서관을 만들었으니, 현재의 도서관에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장소에 묻은 시간의 흐름만을 매만져보았을 뿐인데 근현대사가 공간감을 가지고 다각도로 쏟아진다. 말 그대로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이다. 


+ 칸막이 열람실이 일재 잔재라는 부분부터 충격 퍼레이드 시작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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