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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사실 수십 살 된 큰 나무는 그냥 옮길 수 없다. 옮기기 편하게 하기 위해 뿌리와 가지를 대부분 잘라낸다. 사실 '옮긴다'는 말과 가장 가까운 현실은 '시민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갖다 버린다'는 의미다. / p.104
할머니가 사시던 전남의 어떤 면, 작은 동네 어귀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어릴 적 아빠 차를 타고 갈 때마다 그 나무가 보이면 할머니 댁까지의 거리를 어림짐작할 수 있게끔 하는 반가운 이정표이기도 했는데 그게 당산나무임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큰 후의 일이다. 그게 당산나무임을 몰랐을 때에도 어쩐지 어린 눈에는 나무의 울퉁불퉁한 뿌리나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두껍던 둘레, 잎이 무성하다 못해 어둡던 나무 아래가 무서워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현재 그 나무는 없다. 왜 베었을까. 살고 있는 마을 사람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던 당산나무를 베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천년도 사는 것이 나무인데 고작 백 년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이토록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걸까.
오래된 나무는 마치 강한 힘을 가진 것 같다. 이것이 예부터 나무를 신령스럽게 여겨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런 나무의 밑에서는 절로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나무들이 인간의 편의와 고작 미관 때문에 사라져 가고 유행 따라 갈아치워 진다. 보호수로 지정되어도 민원보다 앞서지 못한다. 본인의 이득에 따라 일단 베어버리고 벌금을 내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몰래 골프장 공사를 짓게 하고 골프장 vip 회원권을 받은 공무원도 있었고, 재선을 목표로 무리하게 생태하천을 파괴한 시장도 있었다. 후에 문제 되면 사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치인의 고개 숙임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나는 나무를 보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간 사회를 봤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현재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기후 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드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당장 현실적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가까운 곳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고, 그 시작은 정물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으로 나무를 재인식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해당 책은 있는 생명을 지키는 일의 중요함을 전달하고자 그 출발선상에 다시 독자를 끌어놓았고, 나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스러져간 생명들에 대해 어떠한 착잡함을 느꼈다. 세월을 몸에 새기고 미래에도 계속 살아갈 나무들이 결국 이 책의 사진으로만 남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냥 역시 인간을 메워야...
++ 최근에 『모로 박사의 섬』(허버트 조지 웰스, 문예출판사), 『모로 박사의 딸』(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황금가지)를 연속으로 읽고 이걸 읽으니 인간 너무...동식물 전방위로 백해무익함.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