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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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활동하든 밤에 활동하든, 나방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은 나비를 능가한다. 어쩌면 여러분은 나방을 나비로 착각해 감상했을지도 모른다! / p.11


상식이 약간 뒤틀린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란다. 이상하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어두면 내 방충망에 붙어서 파뤼투나잇 하던 그것들은 나방이 아니었나. 그렇게 일렁이는 궁금증과 '내가 경험해 봤는데 아닌데' 하는 묘한 오기로 책을 펼쳤다.


사오정이 "나방~~" 이러면서 입에서 나방을 쏟아내는 만화를 안다고 말하면 나 상당히 늙은이인가...? 하여튼 예의상으로라도 귀엽다고 말할 수 없는 사오정이 입에서 하고 많은 벌레들 중 나방을 쏟아내는 건 어떤 상징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나비가 아니었던 것은, 근면 성실을 의미하는 꿀벌이 아니었던 것은,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꺼리게 되는 나방으로 설정한 이유는 사오정의 외적인 모습과 같이 나방 역시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벌레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방을 만지고 눈을 비비면 실명된다는 괴담까지 있었을 정도로. 그렇게 잘 모르면서, 오히려 어설프게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대중적인 편견에 갇혀 나방을 두려워했다. (물론 지금도 무섭지만...이 책 읽기 전보다는 쪼금 용감해진 것 같음;ㅅ;)



나방도 벌만큼이나 귀중할 것이다. 단지 대개 어둠 속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 p.13


나방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진짜 '나방'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비의 종류는 동요를 만들어서 부를 정도인데 나방의 종류를 그렇게 읊어본 적이 있나. 한국을 기준으로 여기에 서식하는 나비는 겨우 280여 종인데, 나방은 2400여 종에 달한다. 전 세계로 눈을 넓히면 나방만 14만 종이다. 그만큼 다양한 종류의 나방이 셀 수 없이 많다. 자 이제 지구의 주인은 누구지?ㅠ



나방덫에 걸린 나방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방이라는 지엽적인 주제에서 맴돌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태계란 원래 물고 물리며 순환하는 구조이므로 나방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그를 둘러싼 자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하지만 잊으며 살고 있던 전제를 나방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금 끌어올린다. 작은 사각형의 나방덫에서 지구에 쌓아 올려진 시간과 여러 사건들, 놀라우리만큼 맞아떨어진 강력한 우연의 합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는데 여기서 이 날개를 가진 곤충은 단순한 '나방'에서 거대한 생태계의 축적물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나방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벌레는 무섭지만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그들조차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간다는 이야기이므로. 사유는 짐작이 가고, 나는 너무 작은 개인이며 해결은 막막해 보인다.


생물들의 원래 서식지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겠지만, 안 될 경우 '이주'를 시키는 방법도 있다. '도움 이주'라는 개념을 책에서 배웠는데, 멸종위기종의 보존을 위해 개체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 할 법한 오만한 생각이다. 책에서 말한 대로 정말 '비극적 모순'(403)이 아닐 수 없다. 생태계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다른 종의 이주 필요성만 높이고, 그로 인해 벌어진 문제를 통제할 수 없을 경우가 생겼을 때 마땅한 대안도 없다. 뻔한 말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오히려 도시의 치명적인 빛에 이끌려 적절하지 못한 서식지에 갇혀버린 개체일 수도 있다. / p.278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죄책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오늘 나방을 잡지 않더라도, 살충제로 죽이는 대신 도시의 다른 불빛으로 놓아주더라도 나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것 만으로 생태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문명 속에서 사는 모든 것들은 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방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생태계를 파고들어 갈수록 그 대상 자체보다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적어도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 아래에서 그 작은 존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일을 훌륭히 해내는 책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세상 한구석을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완전히 격리할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웃의 행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잘 알지만, 우리가 모두 이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 p.422



+ 나방 얼굴도 이렇게 크게 사진으로 볼 수 있고 참 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방과 눈을 마주치면 손 끝 부터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우리 아직은 서먹해요.


++ <물고기는 알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추천한게 어쩐지 웃기면서도 납득이 된다. 둘이 뭔가 결이 비슷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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