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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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토론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걱정하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독도를 일본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시는 분도 있더군요. 그분들께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차피 독도는 조만간 일본 땅이 될 테니 말입니다. / p.23


정치학자 이관후 저자의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매우 충격적인 말로 문을 연다. 대한민국의 소멸 위기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도 않고, 결혼과 출산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진짜 어쩌라는 수준의 말이다. 한국이 저출생인데 지금 그를 담당할 나이의 여성이면서 지금 뭐 하냐는 손가락질과 책임을 떠넘기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하기까지 하다. 뭐 낳을 사회가 되어야 말이지. 그런데 바로 독도부터 얘기하고 들어가다니. 사실 한국이 없어질 위기인데 독도의 운명이야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럼에도 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소멸이라는 말에 무뎌졌다는 게 느껴진다.



빠르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한다는 주제는 낯설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생률 타이틀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만 봐도 이 나라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가지 않나. 한국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소멸하고야 말아야 하는 운명인 걸까. 나는 많은 것이 소멸한 한국에서 과연 지금까지처럼 무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정부는 국가 경영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여당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집권 세력, 지지 세력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은 뒷전입니다. 결과가 나쁘면 전 정부와 야당 탓을 하면 됩니다. 야당은 정부가 외교와 경제를 망치고 있으니 반사 이익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나라가 망해도 좋은 것입니다. 아니, 망하게 방치할수록 좋습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는 게 더 설득력이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습니다./ p.38


여야의 '심판 프레임' 그 속내를 알게 된 무서운 문단. 국민의 심판을 바란다는 말, 선거철마다 매번 듣던 말이라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다. 상대가 무능해야 내가 밥그릇을 더 차지할 수 있는 싸움이라면 내가 나서서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상대의 실패만을 바라는 것이 더 빠른 길이며, 내가 여러 정책을 내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비판하는 것이 더 쉬운 길인데.


공생하여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은 한국의 각종 소멸과 국민의 절망을 다른 당에 떠 넘기고, 그 책임은 국민에게 오롯이 지운다. 저출생도 국민의 탓, 아동 학대도, 사기를 당하는 도 국민의 탓, 지방으로 가지 않은 것도 모조리 국민의 탓.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은 없고 커다란 일이 터지면 부랴부랴 사건을 수습하듯 '00법'이라는 이름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며 넘어가는 일들. 저자는 이 모든 사회의 소멸에는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밥그릇 싸움에 서로가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정책의 실패를 바라는 사이에 한국은 얼마나 많은 비상신호와 기회들을 놓쳐왔을까. 



유일한 희망은 정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의 소멸을 말하고 있는 지금, 돌아보면 2016년의 촛불이 꿈만 같'(133)다던 저자는 지금의 형형색색 응원봉을 보면서 어떤 글을 쓸까. 한국의 소멸을 걱정하는 그처럼 이렇게나 한국을 걱정하고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응원봉의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추운 거리에 밖으로 나오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멀리서나마 마음을 전하면서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정치를 복원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답은 탈조다' 라면서 희망이 없는 한국을 떠나기를 부추기는 sns 어딘가에 돌아다니는 그 말들은 시위 현장에 나가보면 절대 나올 수 없다. 이 불빛의 개수가 곧 희망이고 사람들의 배려와 연대 의식이 가득했으며,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있을 정도로 평화로운 집회를 여는 시민들의 수준은 그 어느 나라보다 선진적이다. 소멸 직전의 문턱에서 한국을 다시 일으킬 힘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 2주에서 3주만 늦게 나오지. 너무 일찍 나와 아쉬운 책이었다. 한시 바삐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유시민 작가의 책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에 이어 2위로 올림. 




+ 『검찰 국가의 배신』(이춘재, 한겨레출판) ,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신장식, 한겨레출판) 와 묶어서 정치 에디션 내지 탄핵 에디션으로 나와도 될듯. 진짜 미친 시대였다. 5년같은 2년 반이었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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