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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아니, 자퇴라는데··· 이거 너무 간단한 거 아닌가? 이게 무슨 쿠팡 주문 취소도 아니고···. (첫 문장)
14명의 작가가 자신의 교육 철학을 담아 만들어낸 '교육 소설 앤솔러지'.
어쩐지 읽으면서 어느 순간 사교육 문제가 아닌 다른 주제가 보이는데 싶더라니,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작가 10인이 손을 잡고 <한겨레>에 연재한 소설과 그 취지에 공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탠 앤솔러지였다.
아이들은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을 느끼기도 전에 정해진 정답과 요령을 외워야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대학이 원하는 것이 정말 '답을 잘 외우는' 인재일까. '진돗개는 진돗개답게, 푸들은 푸들답게 살아야 하는데, 진돗개도 푸들도 리트리버도 모두 셰퍼드로 만드느라'(p.118, <대치골 허생전>)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꿈을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미루는 현상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정권 따라 바뀌는 교육 정책에 비해 사교육 열풍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부는 이거 못 잡아. 안 잡아. 대한민국이 자주 그래.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발표하고 다 같이 뭉개지. 그런 풍토를 이해하고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다.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p.36, <킬러 문항 킬러 킬러>
개인적으로 이기호 작가의 단편들을 좋아하는데 여기 수록된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에서도 그 특유의 위트로 무거운 것을 가볍게, 하지만 아프게 때리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아이에게 입시 전략 목적으로 자퇴를 권하는 부모와 그에 공감하여 빠르게 자퇴 처리를 해주는 학교. 아이의 의사는 그 사이에서 허공에 맴돈다. 확실하게 처음부터 단편집의 방향을 잡아주는 느낌이라 앤솔러지의 문을 이 단편이 열어서 좋았다.
가장 기분이 이상했던 작품은 이서수 작가의 <구슬에 비치는>. 12살 아이들을 '의대 준비반'에 넣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수연에게 공감하고 응원도 하면서 넘겼더니 이 바탕에는 남들과 다른 자본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잘 산다'라고 자부하는 부모가 의대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을 보내는데 진짜는 다르구나. 그런 생각도 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 애들은 애매한 부자고 진짜는 <펜트하우스>라는 거. 어찌 되었든, 그저 교사-학부모의 입장차나 대립의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자본과 입시, 교육 문제로 갑자기 확대되는 구조가 굉장히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지만, 시험에는 왕도가 있습니다. 입시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암기에 매진하지 않고, 순수한 공부를 위한 이해에 매진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p.117, <대치골 허생전>
나는 아이도 없고, 이미 입시를 치른 지 한참 되어 사교육과 관련된 주제에 쉬이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펼치자마자 독자를 바로 교실 책상 위에 앉혀놓는다.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험지 넘기는 소리와 주변에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해졌으므로.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전체적인 그림은 분명 긍정적이지 않지만, 이 판에는 절대적인 가해자가 없다. 아이를 중심으로 국가, 사회, 부모들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육에 박차를 가한다. 그들 역시 서로에게 물리고 물면서 전복되고. 아이는 입시만이 삶의 목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입력을 받아 휘둘린다. 이 단편들은 그 점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기사나 칼럼이 아니라 소설이기에 작위스럽지 않게 보여 수 있었던 말들. 사회의 특정한 부분을 케이크 칼로 잘라내어 접시에 내어주는데 이렇게 그려진 학생들의 세계가 너무나 뒤틀리고 이상해서, 그런데 그게 진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서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뒤엉켰다.
아이들에게 있어, 킬러는 과연 누구일까.
+ 무서운 건 서윤빈 작가의 <소나기>. 이건 진짜...그냥 너무 무서움....선배들이 왜 윤이를 언급하기를 꺼려했을까...근데 나라도 그랬을 듯. 교육 관련 단편집에서 이렇게 무서운 작품을 만나다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