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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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서 그 끔찍한 죄를 저질렀나? 그가 잃어버린 것과 비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하찮았다. 태평양에서 흑해까지 뻗어 있는 제국도, 학문도, 한 작은 인간의 진실과 순수성에 비하면 그저 하찮기 그지없었다. (p.358)



이야기는 세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모스크바에서 피난 온 유대인 물리학자 시뜨룸과 가족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 3부작에 걸친 방대한 소설이지만 저자 스스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무섭도록 생동감 있게 참상을 그려내 서사가 빠르게 읽혔고, 실제 인물명이나 당시 소시민의 심리를 그대로 뒤집어 드러낸 솔직함이 그 장점에 힘을 더한다.



군인도,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자들도, 평범한 가족이나 죽음을 기다리는 전쟁 포로들의 개별성을 계급을 가리지 않고 조명하고, 대량 학살과 전쟁으로 인해 ‘삶과 운명’이 폭력 아래에서 짓밟힌 무수한 이름들을 기억해낸다.

작가는 더 이상의 풀뿌리조차 보이지 않는 완전한 멸망이 오더라도 ‘덧창이 열리고, 빈집은 어린애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로 가득 차며 생기를 띨 것(404)’ 이라는 인간의 미래와 희망의 지속을 꿈꾼다. 삶과 같다. 고통을 겪지 않는 이들은 없다.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고비도 살아가다보면 삶은 계속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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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로서 1000일 이상 활동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작품,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는 대작이지만 압수되고 삭제되면서 겨우 러시아에서 출간된 『삶과 운명』이 창비 세계문학 100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소설과 작가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채, 출판사가 이름을 걸고 내놓는 세계문학의 100번째 작품이라면 수없는 고민과 분명한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무작정 읽었고 지금은 어쩐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독일-소련이 맞붙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중동 그리고 전운의 긴장감이 팽팽히 도는 현 시대를 관통한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어렵고 어두운 전망이 가득한 현재,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야 말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투쟁이다. 가스실 건설을 거부하고 가스실을 선택하거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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