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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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첫 문장으로 쉬이 이 아이의 삶을 예상할 수 있다. 하나의 민족에 속하지 못하며, 피부색만으로 평생 가져가야할 불편한 시선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은 알겠지만, '단일 민족'에 집착하는 이 땅에서 혼혈 특히 동남아 혼혈의 삶은 녹록하지 않다. 


주인공인 재일의 가족은 미국으로의 이민을 계획한다. 기회의 땅, 다민족이 섞여 살아가는 그 곳으로 가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과정에서 베트남 사람인 어머니의 의견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의해 묵살되고, 동생의 손을 잡고 베트남으로 간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응축된 분노의 표상이었고 합의된 공격 대상이었다. 핍박받으나 반항하지 못하는 존재였고, 그래서 더욱 응집하지 못하는 개인이었다. 개인이었으나 집단이었고 또한 어떤 개념이었다. 소수의 부정한 존재였으며 위험을 상징하는 대상이었다. (p.286)


첨언하자면 나는 재일의 이름도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jail(감옥)이 생각나는 어감 혹은 '재일교포' 할 때의 그 '재일'이 생각나기도 하고. (물론 일본이 아니라 미국으로 갔으니 이 경우 재미교포겠지만) 소수자로서 받는 불합리한 차별과 멸시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존재만으로도 위험 인물로 찍힌 낙인과 그의 행동을 샅샅히 감시하고 흰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 속에서 재일은 어디를 가든 언제나 감옥에 갇혀있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미국 땅을 밟아도 재일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이다. 파란 피부는 여전히 그에게 강력한 소수성을 부여했으며, 아시아인, 베트남인도 한국인도 아닌 혼혈, 편부 가정.



수 많은 사람들이 재일에게 소수자답기를 강요한다. 소수자로서 의견을 내기를. 마치 들어주는 척하는 그들의 행위에는 자기 만족과 우월감이 숨어있다. 주류가 허락하는 답을 주장하기를 바란다. 학생들과 선생들 어디에서도 재일은 도망갈 수 없었으나, 학교에서 그는 자신을 돕는 셀마와 백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파란 피부의 클로이와 만나고 친구가 된다. 그 시간은 재일에게 있어 거의 유일한 안온함이었으나 클로이의 전학으로 오래가지 않는다. 클로이는 '파란 피부'로서 느낀 차별과 모욕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유명세를 얻게 되었으며 재일은 그런 클로이를 응원하지만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에 반발심을 느낀 이에게 살해당한다. 이 일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재일에게는 불행이 밀어닥친다. 




나는 사이먼이 쓸모없어진 클로이를 폐기 처분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반짝이는 트로피, 자신이 선량한 이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명찰, 파란 피부의 친구라는 타이틀, 한때 그러했던 기록. (p.156)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부자 사이에 어떠한 정서적 교감이 없었으므로 그저 나의 住와 食을 제공한 것만으로 감정의 골을 어거지로 메우지 않는 점이 좋았다. '그래도 키워준 부모인데.'를 강요하지 않는 점. 


이 소설에서 재일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표본이다. 한국에서는 같이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고 위에 군림하듯 행동하고, 같은 한국인에게는 굽신거리며 미국으로 넘어와서는 역으로 자신이 차별했던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 차별받으며 분통을 터뜨리나 흑인을 차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차별은 아들인 재일이라고 다르지 않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깨달음도 없으며, 아들을 마치 통역기처럼, 도시락을 싸주는 도구처럼 취급한다. 피멍이 든 채로 돌아오고 집에 보안관이 찾아와도 그는 재일의 상태를 묻지 않는다. 재일은 가정 내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여 부유했다. 외로웠겠으나 자유로울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어떠한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





차별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니까. 수십 번의 경험이 필요한 게 아니야. 몇 번, 어쩌면 딱 한 번의 끔찍한 경험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폐에 남기는 거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 (p.185)



작가는 다양한 차별적 시선을 그저 그려낸다. 감정의 처절함이나 시린 문장이 없다. 날 때부터 차별과 함께였던 재일은 외롭고 아프고 우울했으나 부정적 감정에 깊이 매몰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구도 가본적이 없는 길이었기에 재일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으며, 대처할 방안을 알려줄 이들이 많지 않았고, 옥죄는 다양한 시선의 감옥 속에서 애초에 꿈도 꾸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는 재일과 같이 불합리한 상황을 그저 목도한다. 담담한 글과 철저한 자료조사는 서사에 객관성을 부여한다.  그는 정말로 어딘가에 파란 피부로서 같이 살아가고 있을 것 같으며, 개인적 공감을 넘어 이야기 곳곳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차별을 받는 자, 하는 자 모두에게서 나의 파편을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차별에서 나는 자유로우리라는 알리바이는 없다. 여기에서 무너지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세계의 전복이 아닌 그저 마주하는 재일의 힘으로부터 공존과 연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읽는 이를 성장시킨다.




​성별, 세대, 인종, 국가, 종교로 분류된 인간은 연대가 필요한 집단과 분리됨으로써 고립된다. 군림하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도구로 작동한다. 이것이 종으로 연대한 결과다. 종으로의 연대는 차별과 계급화를 심화시킨다. 계급화된 상태로 분열하고 고착된다. 이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수직 결합을 벗어나야 한다. 수평적 구심점을 확보해야 한다. 평행한 타인과 연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것이 종이 아닌 횡으로의 연대다. 횡적 연대다. 집단에 맞서는 집단이며 구조를 전복하는 구조다. (p.304, 작가의 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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