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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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의 국가별 소득 분포 자료를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 몫보다 더 벌어가는 사람은 10% 정도인데 제 몫보다 덜 버는 사람은 70%나 된다. / 첫 문장


성실한 노동 만으로는 타고난 계급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 하에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코인의 유혹이 사람들 사이에서 거세게 불었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코인을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이른바 커다란 ‘한 방’이 없다면 타고난 수저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고, 그로 인한 불안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금수저로 태어나면 계속 금수저지만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노오력’해도 금수저가 되기 어렵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구조화된 ‘수저 계급 사회’가 되었다. (p.56)


한국인들은 불평등을 인식하고 있다. 변화가 없으리라는 부정적 전망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수용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어째서일까? 금수저는 어째서 당연히 금수저이며 흙수저는 어째서 죽을 때까지 흙수저야 하는가. 이 높은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힘이 강해져야 하는데 자본가도 아닌 일부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는지, 현 정권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어떤 계급인지. 불평등을 조장하고 정당화 하는 것은 누구의 이데올로기인지. 어떤 질문을 하고 답을 마음 속에 내려봐도 너무나 부정적인 답안지만이 나오고 있다.


취준생을 일자리 빼앗긴 피해자로, 전환 비정규직을 일자리 빼앗는 가해자로 만든 것은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이었다. (p.251)


상위 10%와 하위 50%의 소득 격차가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상위층을 단단하게 유지시켜줄 불평등 사회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득권층과 언론은 교묘하게 노동자들 내부에서 서로가 총질을 하게끔 부추기고 있다. 그들의 손가락이 결코 자본가를 향하지 않게끔, 나의 적은 옆에 있는 나와 같은 다른 사람이라는 듯. 부추겨지고 확산된 불안감은 이 문제를 크게 볼 수 없도록 당장의 밥그릇만 보이게 시야를 축소시킨다.


죽어라 일해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주(住)만을 원하는 사회. 당장 내 몸 편히 뉘일 온전한 나의 집이 없어 내면이나 정신적 성장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회. 이럼에도 노후를 장담할 수 없는 사회.

다수가 이 부조리를 인식하지만 체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출구는 정말 없는걸까.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는 국가 권력의 정상인 대통령과 시장 권력의 정상인 삼성 재벌 총수가 불법 비자금을 매개로 국가 권력을 농단한 사건으로 정경 유착의 불법성과 불공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는 ‘수저 계급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을 겪으며 누적된 시민들의 불만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촛불을 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p.295)


재벌에게 날리는 통쾌한 한 방이 있는 영화 <베테랑>의 흥행, 지나친 재벌 갑질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모두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던 2016년. 각각의 사건들은 불평등을 한국 사회가 속 깊이 용납하고 있지는 않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조금의 계기가 있다면 이 사회는 힘을 합쳐 저항할 것이다.


앎으로서 오는 작은 촛불 같은 희망은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파고들어 균열을 낸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잘 살면 돼.’ 의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 내가 살 수 있다. 해당 저서는 체념하며 수용하던 계급 부조리에 일단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들어주므로 현재 시기적절하게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한국 사회가 포기와 좌절을 반복하는 상태보다 선택과 기회가 주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좀 더 공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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