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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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르 마을이 거기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그냥 이름이지 그 이상은 아닌 격이다. 소음이랄 만한 소리도 없다. 주일날 아침 8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약간 서툴게 울릴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도 그곳 사람들이 불행한 건 아니다. 세월의 운행에 순응하며 그저 기쁘게 지내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한 해가 베푸는 선물을 받고, 겨울에는 난롯가에서, 봄에는 나무 아래에서, 여름에는 잘 익은 제 고장 과일들을 앞에 놓고서, 가을에는 포도 덩굴시렁 아래에서 지낸다. 그렇게 살기에 모두, 걸음도 미소 짓는 일도 느긋하다. 질문에 대답하는 일도 느릿느릿하다. 모두 평화로운 신뢰감 때문이다. (p.32)


“현대의 가장 위대한 몽상가”라 불리는 앙리 보스코의 대표작인 ‘이아생트 3부작’의 완결작이 이 『이아생트의 정원』이다. 사실 읽는 내내 이 작품이 3부작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읽는데 어렵지 않았고 이 자체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 였으므로.



목가적인 경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소설 앞부분부터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책의 배경은 세기 초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로, 보리솔(땅에 바짝 붙어있는 작은 돌집)과 주변 경관, 풍족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부족하지는 않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게리통 노부부와 수더분하고 겸손한 시골 마을 사람들, 지혜로운 양치기 아르나비엘. 나는 지금도 『하이디』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소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자연의 생명력과 그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하이디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거의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양을 치고 염소를 조금 키우고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불을 피운 난롯가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모습만으로도 읽는 내내 잔잔하게 즐거웠다. 작품의 화자인 '메장'은 그들을 좋아하여 주기적으로 찾아갔는데, 게리통 노부부와 함께하던 성탄 밤에 어린 '펠리시엔'이 보리솔에 버려진다. 잔잔한 자연처럼 흘러가는 초반과 달리 소녀의 등장 이후 이 이야기는 비밀스러운 환상을 풀어놓는 방향으로 바뀐다.



우선 아이가 정말 무심한 것에 놀랐다. 때로 어떤 강렬한 이미지가 내적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때처럼, 아이는 제 속에 제가 없음이 역력했다. (p.196)

 

그 아이는 사실 마법사에게 납치당해 본래 이름도 영혼도 잃어버린 아이였으며, 작가는 생명력이 없는 아이가 자신을 찾고 굳은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의 환희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영혼을 깨운 것은 메장과 마을 사람들의 사랑. 이 이야기로 나는 영혼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은 조약돌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의 안정된 애정과 따뜻함이 아이를 깨웠을 때, 다소 담담한 묘사 속에서도 벅찬 감동이 전해졌다. '비인간적인 음색으로' 말하던 아이의 출발선이 열려서 설렜고, 그 때 보리솔의 물줄기가 열렸다는 표현도 너무 아름다웠다. 모든 것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져 넘치는 순간을 그려내는 마법같은 장면이었다.



몽상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희뿌연 안개를 헤매는 듯한 환상과도 같은 몽상과 너무나 선명하고 섬세해서 가본 적 없는 곳에서도 향수를 느끼게끔 하는 압도적인 상상력. 이 작품은 선명한 묘사의 극치에 있다. 계절의 흐름부터 영혼의 미약한 흔들림까지. 원래부터 널리 쓰이던 문장인 양 자연스러운 시적 표현들이 가만히 마음을 두드리는 작품이었다. 



+ '이아생트'가 히아신스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발음이라는 것도 너무 좋았다. 히아신스는 예쁘고 향도 좋아 봄에 가장 먼저 집에 들여놓는 꽃이라서 내게는 봄과 같이 연결되는데, 봄의 정원이 마치 시작의 정원 같아서.

++ 소설이 진짜 표지 그 자체임. 그냥...찰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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