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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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리미니베리보다 제리베리미니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혹은 베리제리미니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건 뭐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미 우린 누구도 그 긴 이름의 순서를 바꾸거나 혼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메리 소이라는 지긋지긋한 기다림이 끝난 것, 그래서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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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릴 적에 잃어버린, 빨간 코트에 흰색 베레모를 쓴 동생 메리 소이. 사라진 동생을 기다리는 엄마의 사연은 딸기맛 웨하스에 얽힌 추억과 함께 제과 회사인 ‘미미제과’의 마케팅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미미제과는 과자 상자에 소이를 찾는 광고를 싣고 심지어 은수의 집을 웨하스 집으로 바꿔놓는다. 사례금을 노리고 여러 메리 소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게 되는 와중에 그 메리 소이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고 가장 메리 소이 같지 않으면서 메리 소이 같은 ‘제니미니베리’가 찾아온다.



동화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현실같다. 마치 은수가 살고 있는 딸기맛 웨하스 집 처럼. ‘메리 소이’, ‘제니미니베리’ 같이 동화같은 껍데기 속에는 부동산 사기를 당하거나 별 다른 꿈이 없이 살거나 매 끼니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 다소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 사는 현실이 담겨있다. 과자집 밖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형을 끌어안고 현실을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보일 수도 있을 인물들.

화자인 은수는 주변 인물들을 관찰하는 관찰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친구를 만나고 삼촌을 만나고 가족들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면서 만나본 적도 없는 이모를 기다리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 된 사람. 성장물도 아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결국 원더타운을 떠나는 것 역시 의지가 아니라 삶에 등 떠밀려 동화를 잃는 어른처럼 그렇게 떠나게 된다.


책을 읽으면 살면서 생각해오던 것들을 밍밍한 기분으로 돌아보게 된다. 물 흐르듯 그냥저냥 사는 은수를 보며, 일정한 수입이 없는 과자집의 사람들을 보며, 어떤 ‘메리 소이’가 와도 크게 묻지 않고 곁을 선뜻 내어주는 엄마를 보면서. 하나하나 따져가지 않고 흐르듯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악착같이 현실에 매달리지 않아도, 평생을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진짜는 아니더라도 진실로 받아들이는 그런. 과자집 사람들의 사라짐까지 환상 같았던 이야기였다.



+책 만듦새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따뜻한 색감부터 오돌토돌한 질감까지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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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는 생각만으로도 그저 슬퍼진다. (p. 115)


▪︎마음의 무게는 기억을 조작한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곱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의 시간이 모두 통편집된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의미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p. 155)


▪︎4년을 사귀는 동안 함께 사는 생명체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은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떤 이유로 무언가를 숨겨야 했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매우 수치스럽거나 말하기 힘들어서 그랬다면 그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냥 무관심해서거나 거기에 아무 이유도 없었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말해지지 않는 집 안의 턴테이블이나 윙 체어 같은 존재로 전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덧붙였다. (p. 189)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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