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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성별 - 가족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ㅣ Philos Feminism 7
셀린 베시에르.시빌 골라크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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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개념들, 즉 가구나 세대 같은 개념은 여남 간 부의 불평등을 알아내는 데 방해가 된다. 이 개념들은 여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데에서 성별적 요인이 보이지 않게 하고, 여성들이 겪는 참상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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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이 쓴 책이지만 핵심은 전세계가 공유한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가족. 결혼, 이혼, 상속 등 모든 사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해진다는 것. 한국도 다르지 않다. 법적 제도와 관습으로도 남성에게 훨씬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반드시 장남, 장남이 없다면 딸이 있더라도 장손자에게 넘어갔던 제사주재자 (*2023년에 '아들에게 제사 주재 우선권이 있다'는 판례가 파기 되었다.), 성년 남자에게만 종중원 자격을 주고 여성에게는 부여하지 않았었던 관습법 등 여성은 각종 지위와 상속에 있어 훨씬 불리하다.
이런 재산 분배의 과정에서만 불평등한가?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 사진을 드는 것은 아들이다. 더 연장자인 딸이 있더라도, 아들이 초등학생이라도 아들이 들어야 한다. 아들이 안된다면 다른 사촌이 든다 (와중에 외손자는 안됨). 장례식만 그런가, 병원에서도 법원에서도 엄마와 딸이 있으면 아들 찾는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 이 부분도 할말이 많다. 솔직히 뒤에서 궂은 일은 딸이 다 하는데 명분과 감투는 아들이 챙겨가는 관습이 치가 떨리게 싫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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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본의 성별은 단호하게 남성이라 말할 수 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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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쌓여 첫문단이 길어졌지만 이 책이 말하는 바 역시 비슷하다. 가족 내 불평등을 수치로 증명해낸다. 단순 경험담이 아니라 치밀한 연구와 수치로 여성의 빈곤을 밝혀낸다. ‘가족인데 무슨 성차별이야’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없다. 가업은 장남이 잇고 결혼하면 보통 남성 쪽으로 편입되며 이혼하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가난해진다.’(p.54)
‘우리 집에 돈이 얼마나 있다고 상속이 중요한가 일을 해서 모으는 게 중요하지‘라고 생각한다면 첫째로 여성은 일할 기회와 노동 가치가 남성과 같지 않으며, 둘째로 현재는 노동 수익률보다 상속에 의한 자본 수익률이 훨씬 높은데 와중에 남성만큼 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자본 축적에 있어 스타트라인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성은 불평등을 알고 있다. 오랜기간 지속해 왔다 하여 모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필롱 가족의 딸들 역시 인식하고 있고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아서, 나만 참으면 되는 일이므로 넘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여성들도 참고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참아왔던 작은 일들이 모여 전체적인 여성의 빈곤을 낳는다. 개인의 희생은 침묵 속 불만으로 끝나고 그렇게 넘어갔던 많은 일들이 관습이 되어 제도적으로 얽매고 있다.
저자는 ‘사법의 개입이 불평등을 거의 해결해주지 않는다(p.307)’고 한다. 동의한다. 사법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견고히 해주는 받침이 된다. 차별의 당연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된다. 계급 불평등의 해결 · 성별을 뒤집는 일은 말로만 해서 오지 않는다. 위치에 대한 인지가 첫 걸음이며 다양한 법과 제도적 지원이 받쳐주어야 한다. 상대의 저항을 누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종 차별로 가득한 사회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진 가족 내에서 시작되는 불평등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책이다. 성별간 부의 불평등에 관련된 이야기는 있었으나 이 성별을 가져와 가족 안으로 집어넣어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에서부터 조명한 책은 없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인간이 가장 처음 속하는 집단인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는 차별을 알아야 큰 맥락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서민들은 상속을 받고 부자들은 생전 증여를 받는다는 차이도 재미있는 점이었음. 미디어에 나오는 재벌들이 너무 당연하게 회사나 자본을 물려받아서 감각이 무뎌졌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의 경영진이 가족 본위로 꾸려진다는 것은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진짜 이상한 점이 아닌가.
++ 와중에 양육비 안주려고 애쓰는 남편은 국적불문…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