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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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면서 나는 이 체제에 대해 좀처럼 의심해본 적이 없다. 의심은 커녕 너무나 자연스러워 별다른 이해도 하지 않은 채로 몸을 맡기며 살아갔다. 당연한 사회의 룰이니까.


자본주의가 돈을 벌기 위해 해체한 수많은 공동체들과 연대, 착취로 인해 빼앗긴 개개인의 여가 시간은 물론, 더 나아가 자연을 상품화하여 판매하고 (봉이 김선달을 이제 누가 사기꾼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 정도면 시대를 앞서간 스타트업 CEO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도록 눈을 교묘하게 가린 행태들을 보며 한정된 자원 속에서 자본주의는 빠르게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며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치킨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가 되었든 끝까지 자원을 소비하고 효율적으로 노동자들의 눈을 가려 그들의 노동력으로 많은 잉여가치를 남기는 게임.

돈이 돈을 부르고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현 상황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사실 지금도 가시적으로 보인다.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 소수 몇 퍼센트의 인간만이 독점하는 거대한 자본과 자신이 노예 상태임을 깨닫지도 못한채 자유롭다는 자본주의의 말에 속아 ‘부wealth’ [화폐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풍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풍부한 상태] 를 잃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이 구조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도 기인했다는 점이 나를 소름 돋게 했다. 어릴 때 사회주의를 국유라는 소유 형태로 간단하게 정의했고 너무 자연스럽게 북한을 떠올렸으며 필연적으로 독재와 연결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유물론자. 이 정도의 기초 교육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떠한 의도를 가진 교육이라기 보다는 선생님들도 잘 몰라서, 러시아와 중국은 소련의 몰락을 본인들의 반면교사 삼아 아직도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됨과 비교하여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 이후의 세계』, 한겨레출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하듯 우리에게는 ‘이 사회의 불합리를 그려낼 수 있는 빨간 잉크가 없기 때문’에.


팬데믹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후 전 세계의 탈세계화적 움직임은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고, 미래를 그리기 힘들 정도의 어려운 경제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는 땅으로 떨어졌으며 개인만이 중요하다 여겨지는 세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공동체의 재결합과 연대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재조명하여 경제적 사상을 넘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책이었다. 개인이란 크던 작던 타인의 선의나 연대에 기대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자본론』과 모두의 생존을 목표로 치열하게 연구한 마르크스를 통해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칠해진 파란 잉크로 인해 오히려 검게 변해버린 세계를 정확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버렸던 빨간 잉크를 다시 들어 자국을 남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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