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 Philos 시리즈 22
니컬러스 험프리 지음, 박한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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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타난 그의 존재로 인해 너무 긴장해서인지 헬렌은 시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헬렌의 시력은 자신이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편안할 때만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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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각피질을 제거한 원숭이 헬렌이 있다. 수술 이후 헬렌은 사실상 맹인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헬렌과 놀아주고 산책을 하면서 점점 앞을 보는 것 같고 공간 지각을 하는 것 같았으나 낯선 환경이나 사람을 마주하면 다시 시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는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다. 안경을 쓴 사람이 세수를 하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고 다시 씻는데 순간 깨달은 것이다. 안경을 안 썼는데도 평소와 같이 선명히 보였다는 걸. 이후 다시 거울을 올려다보자 흐릿한 얼굴 형태만이 보였다는 이야기이다. 보통은 자극이 주어지기 때문에 지각하고, 그걸 토대로 의식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식을 못했기 때문에 지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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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시 조상, 즉 눈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생물은 피부를 통해 시각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과 비슷하다. 물론 시각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엄밀히 말하면 시각적 인식perception 이다. 감각sensation이 아니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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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인식은 무엇일까. 인식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은 지각하고 있는가, 둘 중 무엇이 먼저일까,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동물들에게도 지각이 있는가, 더 나아가 나는 무엇일까.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이 아마 이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각과 의식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누가 "손이 뜨겁다는 걸 '느꼈으니' 이 것은 불이구나 하고 '지각하자'." 이걸 쪼개서 생각하고 있겠는가.

당연히 하나처럼 느껴지던 개념을 분리하자 세상과 나 자신조차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렵다. 이론 역시 쉽지 않다. 과학이라는 특정한 분야에 한정짓지 않고 저자는 의식 연구를 심리학, 철학, 예술까지 저변을 넓혀서 수십 년간 깊이를 더했기 때문에 쉬운 글은 아니다. 어려움에도 끝까지 페이지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경쾌한 어조와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이해를 돕고, 한 꼭지가 짧아서 지루할 만 하면 다음 이야기, 이해가 안돼서 지치면 다음 연구가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의식 연구에 대해 읽었을 뿐인데 내가 평가하는 남과 나 자신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갖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는데 평생 나 자신을 모르고 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긴 이걸 끊임없이 곱씹어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니겠는가.


+ 나의 문어 선생님... 헤이... 우리 통한거 아니었냐며...😢
++ 책이 너무 예쁘다. 올해 만난 책 중 최고로 아름다움. 사실 책만 보면 감성적이기 그지 없는데 내용은 철저한 학문과 치열한 논쟁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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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으로 개는 타고난 심리학자다. 그런데 자신을 모델로 사용하여 상대를 예측하는 데 너무 의존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 이상을 상상할 수 없다. 안내견은 눈을 뜬 상태에서 환한 방에 있으면서도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을 겪은 적이 없다. 그러므로 실명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p.271)

다양한 종에서 타 개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 욕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개를 이용한 한 실험 연구에서, 개 주인은 개가 코로 눌러 열 수 있는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주인은 고통스럽게 울거나 혹은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인이 울고 있을 때 개는 더 빨리 문을 열었다. (p.274)

물론 인간이나 다른 지각 동물이 다른 개체 모두의 자아에 자동으로 신경 쓸 리는 없다. 우리가 논의했던 것처럼, 동정심은 선택적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각은 그 자체로 마음이나 행동에 강요할 힘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윤리는 다른 곳에서 비롯한다. 만약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건 본능이 아니라 이해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비인간 동물 중 일부만 우리처럼 자아를 갖고 있다고 인식하므로 그들의 감정에 신경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p.304)


*해당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읽은 뒤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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