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여자의 세상 - 스즈키 이즈미 프리미엄 컬렉션
스즈키 이즈미 지음, 최혜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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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전체적으로 경쾌하진 않다. 어둡고 묘하게 허무한 환상 같은 느낌이 있음.
성별이나 가족, 사회의 틀에 대한 의문과 전복. 불안정한 주인공을 앞세워 표현하는 불안정한 사회.
그 판타지에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이 짙게 묻어있고 머릿속으로는 곤 사토시의 영상들이 떠올랐다. 미세한 균열, 자연스러움 속의 부자연스러움같은 그런 뒤틀림이.
 
 
그런데 무엇보다 작가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 에세이가 정말 괜찮았다. 특히 <메마른 폭력의 거리>에서는 개인의 감정과 폭력의 원인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날카롭게 빛난다.
1900년대 초중반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소설에서도 보인 페미니즘이나 사회적 부조리가 더욱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인다.
소설 속에서 내내 보이던 메세지가 있었다. 성별이란 과연 고정된 것일까?(<여자와 여자의 거리>), 학습된 것은 아닐까? (<밤 소풍>) 사회에서 학습된 고정관념들에 대한 고민과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 그리고 좌절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작가와 내가 딱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은 감각이 들면서 속절 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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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은 온몸에 넘치는 느낌이 든다. 증오는 자기 몸 바깥을 향해 간다. 자기 정당화가 약하기 때문에 외부를 향해야 할 증오가 안으로 향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파괴 혹은 자기 처벌 욕구는 이 세계에 대한 적의가 바뀐 것이다. 자신을 만든 것에 대한 증오이다. 그러니까 자기 파괴 욕구는 미련과 보복처럼 나약함의 징표이다. 나약함이라기보다 본래의 길을 갈 수 없게 되어 굴절된 것이다. (p.373)


'여자아이는 귀여워야만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순종을 강요했다. 나중에 남자와 잘 지내려면 주장이나 의견은 방해가 될 뿐이다. 남자를 섬기고 덕분에 먹고살면서, 그의 아이를 낳는다. 노처녀가 되지 않기 위해 증오는 억눌러 졌다. 적의와 격렬한 애정 욕구는 권위를 가진 자에 대한 가짜 순종이 되었다. (p.374)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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