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통섭 - 학문의 경계를 넘다 통섭원 총서 1
최재천.주일우 엮음 / 이음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엮음 : 최재천, 주일우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통섭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학문과의 융화, 조합을 이루는 말로 알고 있었던 내게 지식의 통섭은 함께 읽어보자고 하여 부랴부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 보았다. 우선 이 책의 구성은 다양한 지성인의 글을 엮은 책으로 서로 다른 주제를 다양한 학자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사실 쉽지 않은 학문적 통섭을 주제로 삼고 있기에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우선 다양한 학문적 사전 지식과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무심코 읽어서는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읽었지만 내 지식의 한계는 분명했나보다.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인상적인 문구를 보면 연암 박지원은 길을 걷을 때 왼발과 오른발을 의식하지 않고 걷듯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 역시 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체득이 되면 망연이 본연이 되고 본연이 자연이 된다고 한다. 이 고전을 통한 철학적 지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회학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의 제 2본성 즉 태어나서 얻은 본성 이외에 교육 혹은 문화를 통해 얻게 된 제 2본성이 체화되어버리게 되고 이는 중요하리만큼 문화가 바로 선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내가 보기엔 이것이 통섭으로 보여진다. 서로 다른 학문적 접근과 방법이 다른 학문으로 서로 적용 및 점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다른 내용을 살펴 보자. "과학적 몰이해위에 쌓은 사상적 누각"에서 자기 체계의 무오류성을 확인하는 순간 그 어떤 사상도 독단이 될 수 밖에 없는 닫힌 사상의 운명이 되어버린다"라는 표현은 과학적 지식과 좁은 과학적 영역 안에서는 완전 무결한 지식이 되지는 못한다는 한계론적 시각을 보여주며 이는 일상 생활에서 철학적 지식과 기준에도 함께 부합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여진다.



현대의 지식량은 방대해서 학문을 분류하지 않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연히 학문의 분류와 지식의 구분은 필요한 수순이였을 것이며 그로 인한 한계가 발생되어지기에 이 책에서는 통섭이라는 개념을 통해 학문적 고집이 주는 오류를 지적한다고 보여진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지식의 통섭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뒷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오정, 오륙도란 말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50대 전후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기껏 20년 벌어 먹기 위해 그 혹독한 입시 직옥을 겪었다는 소리이다. 은퇴후 30년에서 50년을 지내야 하는데 말이다. 결국 인생의 2모작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고령사회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어떤 직업을 갈아타도 변신이 가능한 융통성과 응용력이 필요하며 인문학과 자연학을 고루 갖춘 지식의 통섭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20년 가까이 공부하여 얻은 지식으로 긴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우리는 직업의 불안정성과 조기은퇴 수입에 대한 지속적인 유지가 필요한데 현대의 지식적 획득은 한계가 분명하니 변화가 가능하다록 지식을 통섭하여 얻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비단 남의 일이 아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직장이 안정하지도 않겠지만 그 이후를 바라보고 우리는 현재를 준비해야 한다. 이 책은 분명하게 끊임없는 공부와 지식 추구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고루 섭렵하라는 목적과 그 이유를 전달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