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 네미롭스키의 작품들에서 모녀 사이의 지독한 애증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가 없다. 고독의 와인도 그랬다. p. 54 / 사랑이 그러하듯 천 가지 이유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 이유도 없는 증오였다. 사랑을 말할 때처럼 ‘어머니는 어머니였고, 나는 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증오였다.전쟁과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러시아, 핀란드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이어지는 장소의 변화,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여성이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따라가며 읽는 소설이었다. p. 253 / 마땅히 아이여야 했을 때 아이로 살지 못한 사람은 결코 다른 이들처럼 성숙해질 수 없는 법이야. 너무 빨리 추위와 바람을 맞아버린 과일처럼 한쪽은 시들고 한쪽은 덜 익은…이렌 네미롭스키의 소설 속 여자들은 대체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나 엄마는 되지 못한 한계를 지닌 것 같다. 사랑의 대상이 끝끝내 자신이어서 불행을 양산하고 마는 악순환의 반복이랄까. 사랑받지 못한 자녀, 딸은 그 증오의 마음을 복수하는데에 일평생 쓰느라 본인은 결국 아무 것도 없이 홀로 남는 엔딩이다. p. 281 / 삶은 계속 됐다. 무분별하고 빠르게,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헛되이 달려가는 경주처럼. 복수는 다 태워야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것이고. 과연 복수 끝에 행복해지는 결말이 현실에 있을까.📚고전이 ‘읽힌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의 완간을 축하하며 : )#이렌네미롭스키 #선집 #고독의와인 #레모출판사
.계절의 이야기를 여러 작가의 글로 읽었다. 김연수 소설가의 글은 내가 좋아하는 제주 세화의 여름을 오래 기억하게 할 문장들로 가득한 이야기여서 참 좋았다. 참 좋았다, 라고 말하는게 생경할 만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p.18 / 좋은 날 다음에는 궂은 날이, 궂은 날 다음에는 좋은 날이 옵니다. 좋은 날은 좋은 날이니까 좋고, 궂은 날은 궂은 날대로 좋다면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되겠죠.이런 식의 마인드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게 좋은거다는 마음먹음이 삶의 고단함 끝에 나온, 결국 나를 살리는 말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홍한별 번역가의 글은 따뜻했다.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되고 싶었던게 참 많았는데 이제는 무엇이 될 수 있냐는 물음 앞에 다 숨어버렸다. 되고 싶냐와 될 수 있냐의 간극은 이토록 크다. 그럼에도 ‘어릴 때의 작은 실망들이 뭉쳐져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말에 또 위로 받는다.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의 할머니와의 일화는 한 사람이 나고 자람에 있어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과 누군가의 사랑과 다정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를 알게 한다. p. 76 / 이제는 다 자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일이 문득 절벽처럼 느껴질 때 나는 그때 받은 사랑과 다정을 꺼낸다. 그것이 여전히 봄날처럼 따스한 걸 확인하도 나면 낭떠러지를 부수고 다시 길을 걸어갈 힘과 용기가 생긴다.나에게도 그렇게 꺼내볼 사랑과 다정이 있음을 떠올리며.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 계절의 다른 맛이 느껴졌다. 얇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에 잘 읽히는 글들을 읽으며 이 지옥같은 무더위를 나는 중이다. 여름 끝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계절쓰기 #물결점
.타고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귀신 안나오는 기담집. 등골 서늘한 인간 아닌 인간들의 이야기에 훅 빨려 들어갔다. 읽고 있으면서 바로 다음 내용이 궁금해 멈출 수가 없었던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토록 흥미로운 소설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계절에 제격이고, 이 시대에 기담집이라니 낯설고도 새롭다. 성해나 작가의 신간이어서 궁금했지만 제목조차 기이해서 빨리 읽고 싶었던 이 책의 단편 3개를 먼저 만나볼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쁘다.읽고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 인간 아닌 인간이라는 뜻의 인비인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인간이라는 걸 소름돋게 잘 풀어낸다. 서평단으로 먼저 읽게 된 세편 중에 이 기담집의 제목이 된 인비인이 제일 충격적이고 흥미로웠을 정도! 성해나는 어쩌면 하나의 장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총 9편의 이야기가 실린다고 하던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나머지 이야기들도 무척 기대가 된다. 올해는 등골이 오싹한 이 기담집으로 여름나기를 해보는건 어떨까. #성해나 #기담집 #인비인 #한겨레출판
고립된 채로 홀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는지 세상이 그렇게 만든건지, 이처럼 갇힌 사고에서 고민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깨졌다. 그제야 내가 들이대던 잣대와 선입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해해보겠단 노력 자체도 굉장한 오만이었다. 저마다 (아직은 죽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다. 외롭고 버거운 세상을 각자의 몫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차갑다. 기대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얼마나 무너지게 하는지 알면서.. 고립을 택하는 것도 나약함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저항의 몸짓이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니 눈물겹다. 나약함으로 퉁쳐지는 세상에 살아있음 조차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지 생각하니 스스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게 기꺼이 가닿는 일이 도전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환대의 마음이 아닐까. 무해한 관계 속에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좀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은둔하는청년 #은행나무 #르포 #쉬었음청년 #고립사회
철학은 여전히 내게 멀고도 어려운 그 무엇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글자를 읽는 것 같은 워밍업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내용들이 내 삶의 고민들과 오버랩 되는 순간부터 읽히기 시작했다.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반지의 제왕 이야기로 잔뜩 긴장했던 몸이 살짝 풀리기 무섭게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헤매다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빠져들 수 있었다. 왜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나에게 친근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후기 고대철학에선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가 등장하여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가 나오니 흥미롭게 쭉 읽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중간 중간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자주 고민해왔다. 그에 대한 답은 찾지도 못하면서 그게 늘 궁금했던 것이다. 죽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만 죽음이 조금 가까이 와있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와중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의문은 뜬금없이 불쑥 나를 찾아와 이대로 살아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게 나를 괴롭게 했다.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지 좀처럼 모르겠는데 왜 이러는건가 하고. 죽음에게도 물었어야 했다. 어떻게 살아야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 책은 철학이 우리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한다. 철학은 멀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좋은 삶에 어울리는 삶의 방식이자 기예라는 것을 우리가 이름만 아는 철학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이해시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삶이) 외면해온 죽음을 끊임없이 사유함으로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세네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인간미를 느꼈다. 그는 철학적 도야와 세속적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인간의 모순을 생의 마지막까지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 얼마나 공감가는 모습인가. 처음으로 철학자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으면서도 철학을 통해 삶과 죽음을 생각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철학이 우리 일상(삶)에 맞닿아 있는 줄도 모르고.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데 작은 실마리가 되어준 것 같다. 그리고 품을 들여 읽은 보람을 여기서 느낀다. #어크로스북클럽 #좋은삶을위해죽음을묻다 #최대환 #북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