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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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은 감정이 뒤섞여 들어왔다.

라이너 쿤쩨, 프리모 레비, 마크 로스코, 그리고 위안부와 세월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로 드러난 인간의 잔혹성, 가족의 부재와 상실까지.. 그녀는 많은 비극과 그로 인한 아픔들을, 응집하여 보여주기보다 시어들로 흩어지게 둠으로써 그 아픔의 파편들을 우리가 직접 주어 보고 응시하게 한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中-
부표처럼 흔들리면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그 간극, 그리고 그 속의 슬픔에서 시인은 우리 자신이 가라앉은 자일지, 구조된 자일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가라앉힌 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그들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그 간극이 두려움으로 채워지는데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 中-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의해 오히려 더 공격하는, 그리고 먹는 것이 먹히는 것인 줄도 모르는"늑대"와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에게 맞서기를 말하고 있다.

정직함이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정직함에 대한 부정직한 이해만이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필사적으로 말을 더듬거리며
피가 묵처럼 굳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는
-정직한 사람 中-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문턱 저편의 말 中-

시인은 이 시집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상처들과 상처 입은 존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피 흘리는 존재를 보여주며 이를 묵인하지 말기를 촉구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이런 다양한 인간들이 시간의 일관성 속에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나이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함을 보여준다

한 개의 씨앗에서
삶과 죽음은 두 개의 떡잎처럼 돋아났다
(중략)
한 열매가 대지로 돌아간 그날에

씨앗의 심연이여,
그것은 어떤 피에타인가
-어떤 피에타 中-
우리는 떡잎처럼, 삶과 죽음은 함께이고 우리는 그 함께인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극단으로 보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실은 그날의 삶과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견딤 속에서 우리는 고통받고 절망 속에 갇힌듯한 느낌을 받지만, 그리고 여러 일화들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발견해내고야 말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고통을 주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고통받는 만큼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시집을 읽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한 마크 로스코 전에 갔던 일이 생각났었다. 시 '마크 로스코'를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시를 읽는 내내 형언할 수 없는 아픔들이 몰려왔다.
마크 로스코전에서 회색과 검은색만이 칠해진 캔버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나는 아무런 설명도 사물도 없는 캔버스 앞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빛이었다.

이미 죽은 마크 로스코가 돌아와서 빛 한 점 그려줄리도 없고, 까만 캔버스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짜잔-하고 나올 리 없는데, 나는 빛을 찾고 있었다.

지나고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내 인생의 희망을 찾고픈 바램을 투영시켰던 것이었다.

시인은 그런 나에게 말해주었다

검은색 위에 더 짙은 검은색이 내려앉을 때
검은색이 비로소 한줄기 빛이 될 때
-마크 로스코 中-


시가 닻이고 돛이며 덫인 삶을 상상해본다. 종이 감옥 속에서의 삶도,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감내하며 쓰인 시 하나하나 소중했다.
시인에게 감사하고 창비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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