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비의 가르침도, 사랑의 가르침도 이런 질문을 피할 수는 없을 것같다. 자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유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이유에서다. 자비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기쁨을 주거나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만은 아니며,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동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정한 자비란 악행을 행하는 그들이 부처로서의 잠재성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게하는 것이다.
꽤나 긴 시간 동안 공동체를 하면서 체험한 것인데, 공동체란 선물을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만, 공동체 안에서조차 선물은 잘못하면사람들에게 의존성을 키워 무능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선물이 있지만, 최고의 선물은 선물하는 마음, 선물하는 능력을 선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물하는 것 못지않게 선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선물하지 않거나 선물을 그저 받기만 하는 것으로는 불편한일, 고통스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비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앞의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나, 그의 고통을 나서서 덜어주는 것을 무조건 자비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부처라는 말에 근접한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촉발하는 것이 바로 자비행의 요체이다. 악행을 한다고 판단된다면그가 지금 하고 있는 악행들,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로 인해 불편함이나 고통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 P-1

가까이 지내는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있다. 교육이나 삶에 대한 원칙이 확고하고 특이한 분인데 타협할 줄 몰라서 고생을 많이 한다. 며칠 전 이분에게 인상적인 얘기를 들었다. 거의 6학년 학생들을 맡는데, 학급에 대개 힘없는 애들을 못살게 구는 ‘나쁜 놈‘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거나 분란이 일어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는 그 ‘나쁜 놈‘도 본성은 착하니 잘 달래야한다고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오랜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인데, 그런 친구는 습관 때문이든 자잘한 계산 때문이든 나쁜삶의 습성을 계속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좋은 말로 달래봐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놈들을 설득하고 달래는일은 하지 않는단다. 대신 그놈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만나 말한단다. 너희들이 그냥 당하고 살면 섀도 너희도 평생 이런 식으로 살거라고. 너희들이 모여서 그런 놈에게 대항하고 싸워야 너희들이 겪는 고통도 줄어들고, 저놈도 저런 식의 삶을 고치게 될 거라고. 그게너희들을 위한 길이고, 저놈을 위한 길이라고.
옆의 교사들이 들으면 경악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분의 언행이 - P-1

미움의 감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악행을 반복하는 학생에 대해 적절한 자비의 행이 될 거라고 믿는다. 자비란 어떤 대상에게 듣기 좋은말을 하거나 당장의 기쁨을 주는 언행을 하는 게 아니다. 그가 좋은삶을 살고 훌륭한 능력을 갖도록, 때로는 칭찬하지만 때로는 경책하며, 때로는 설득하지만 때로는 이 짓을 계속해선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도록 적절한 고통을 주는 것이 자비행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여 가혹해 보이는 언행을 하는 그런 자비행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자비행이란 누군가가 자신의 불성을 보고 부처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촉발을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 같은 큰 고통 속에서 수행을 시작하게되고,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한 각성의 계기를 얻는다. 이를 안다면 안타깝지만 그런 고통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 최대의 자비를 행하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다시 생겨나는 의문이 있다. 악행을 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거나 마찰을 일으켜 그 관성적인 힘(입력)을 정지시키는 것과 어떤 행동에 대한 분노나 미움, 앙심으로 그에 반발하여 마찰을 일으키고 고통을 주려 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악인이나 권력자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대항할 때조차 자비심이 아니라미움이나 분노의 감정에 의해 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건 사실이다. 그 감정적 행위를 ‘자비‘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을 정당화하기위한 위선적 개념에 불과하다. 감정적 행위가 대개 분노나 미움 같은
‘반동적 Reactive‘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부처의 마음으로 행하는 자 - P-1

비행은 저 중생이 부처의 삶을 등지는 것을 저지하고 제 방향을 찾아가게 하려는 ‘능동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찰을 아기하든, 침묵으로 거리를 두든. 최소한 분노나 미음의 감정 없이 마음이 일어났다면 감정에서 벗어나서 판단했을 때에도 그렇게 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감정적 행위와 구별되는 자비행이라 할수 있다.
앞에서 말한 교사에게 최근에 들은 얘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자기반에 부모가 없는 학생이 한 명 있는데, 조그만 일에도 툭하면 ‘욱‘하는 친구라고 한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사고를 쳤다. 교실 옆 복도에서옆 반 여자아이가 자기를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고 그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쥐고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불러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냥 눈빛이 기분 나빴다고 했단다. 어이가 없었는데, 어찌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하다 그 아이와 함께 복도에서 계속 울고 있는 그 여자아이앞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곤 다짜고짜 여자아이 앞에서 그 아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교실로 끌고 가면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너도 따라오라고 했단다. 쉬는 시간이라 복도에 나와 있던 아이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 쳐다보고..
교실로 오니 놀란 여자아이가 오히려 기겁을 해서 자기 눈빛이 나빴던 것 같다고,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고 한다. 머리채를 잡힌 아이는이글거리는 눈을 한 채 머리채를 잡은 손을 뿌리치려 할퀴고 난리를쳤지만 끝내 머리채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울려 여자아이는 가고, 그때 비로소 머리채를 잡았던 손을 풀어주었 - P-1

다고 한다. 짧지 않은 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아이에게 말했단다.
내가 싸워줄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선생님 손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거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눈물을 펑펑 흘리더란다.
무슨 말이냐고 내가 물었더니, 이런 일이 있을 경우 대개는 아이에게 조목조목 잘못을 따져 야단을 치고 여자아이에게 사과하게 한 후돌려보낸단다. 그런데 그랬다면 그날 여자아이는 아마 선생님 앞이니 ‘괜찮다‘ 하고 돌아서겠지만 그 분한 감정이 가시지 않아 부모에게호소했을 게 틀림없단다. 그렇게 되면 여자아이의 부모는 그날 저녁아이의 집으로 쫓아가 그의 부모와 싸우든가, 아니면 다음날 아침 학교로 찾아와 아이의 멱살을 잡았을 거라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그렇게 해도 좋았을지 모르지만, 부모 없는 3형제 중 하나로, 자신의 아이 둘까지 다섯 명을 이혼하고 혼자서 키우고 있는일용직 노동자인 큰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처지인지라, 극히 난감한상황이 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여자아이의 분한 마음을그 자리에서, 그가 당한 것 이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생각에, 폭력교사의 비난을 살 게 분명함에도 그런 ‘미친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선생님의 이 ‘미친 행동‘을 이해했을까? 모를 일이다.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오해하는 일보다 훨씬 희소하니까. 혹시 이과격한 행동에서 교사의 자비심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말해보라. 던진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있는 힘껏 뺨을 때리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 들어 답하는 걸 따라 하던 동자승의 손가락을 - P-1

‘일체유심조 하면 흔히 예로 드는 원효의 해골물 고사도 그렇다.
마음먹기에 따라 해골물도 맛있을 수 있겠지만, 해골을 본 이상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게 문제다. 내 마음조차 내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삶을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이유일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애써 얻으려 하기보다는내 마음이나 내 마음대로 하자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게마음대로 되는 분들은 부처의 경지에 올라 ‘대자유‘를 얻은 분들일 텐데. 그런 분들은 평생을 선방에 앉아있던 분 가운데서도 극히 희소하지 않을까. 그걸 보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어려운 게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렸으니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는 것이라 애써 붙잡지 않으면 지나가 없는 것이라며 마음의 ‘실상‘을 보라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않다. 오지 않은 것을 구하려 하고, 지나가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며.
지나간 것을 잊지 못해 고생한다. 차우나 구양봉은 지나간 것을 잊지못해 그것을 붙잡고 산다. 아니, 그것에 붙잡혀 산다. 모용언은 오지않은 이를 미워하면서도 붙잡고 싶어 하며, 혹시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게 중생인 우리의 마음이다. 하여 그 마음이 만든 방황이 있고,
그렇게 고통스럽게 방황하는 세상이 있고, 그런 세상 속에서 매일매일 결정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삶이 있다. 어쩌면 실상을 깨우치지 못한 우리의 실제 삶은 차라리 이 방황하는 마음이 만든 세상 속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 P-1

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들이 왜 ‘일체유심조‘를 말했던 것일까? 그렇게 말할 때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부터 다시 되짚어보자.
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가령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어지는 건 일종의 ‘조건반사다. 여기서 먹고 싶다는 마음은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과 나의 감각기관이 만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굳이 대비하여 말하자면, 절식해야지 굳게 결심하고 있는 내 마음에속한 것이라기보다는 꼬르륵대는 내 배에 속한 것이다. 혹은 배가 고픈게 아닌데도 어느새 손을 끌어당기는 저 음식에 속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고, 침대에 누우면 자고 싶어지고, 매력적인 여자를 보면 사랑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 부지중에 어느새 하고 싶어지는 것은 모두 이런 식이다. 음식이 있다고 다 먹고 싶지는 않다고하겠지만 그 마음조차 내 의지보다는 배부른 내 신체에 속한 것이다.
싫어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맥클루언의 유명한 명제가 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TV나 자동차, 혹은 돈이나 옷 등의 미디어(매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립적 매체가 아니라, 그 자체가 특정한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교환을 위해 돈이란 매개물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일단 돈이 나타나면 돈을 벌기 위해 생산하고교환하게 된다. 모든 것을 돈으로 바꾸라는 명령이 바로 돈의 메시지고, 우리는 대개 그것을 따르게 된다. 그건 우리 마음에 속한 것이라 - P-1

기보다는 돈이라는 미디어에 속한 것이고, 돈으로 가치를 재는 세상에 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먹는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내마음 밖에서 오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의미에서 ‘자유의지‘란 없다고 스피노자는 확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쓴다고 할 때에도, 그것은 그가 읽은 책이나 그가 겪은 어떤사건, 혹은 사람이 무언가 쓰도록 촉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극을 표현한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행위조차 신체의 어떤 상태가 요구한 것을 따른 것이다. 신장이나 방광이 앞장서는 그런 촉발이 없다면 소변기 앞에 서려는 마음이 생겼을 리 없다. 소변을 누는 것도 내가 마음먹기 이전에 신체가마음먹은 것이고, 그 신체에 흡수된 수분이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내뜻대로 행위한다고, 즉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한다고 믿는 것은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원인을 모르고 있음을 뜻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할 때 그 마음은 저렇듯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는, 내게 다가온 것들에 속한 마음들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하려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음식에 속한 마음, 침대에 속한 마음, 바퀴에 속한 마음, 방광에 속한 마음 등등.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들과 내가 만나서 일어나는 게마음이니, 마음이란 그런 만남의 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남의 장 안에서 일차적인 것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있는 어떤 게 아니라, 바깥에서부터 내 마음 안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나의 마음이 - P-1

란 그런 것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텅 비어 있는 마당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마음이란 밖에서 들어온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이게 어디나뿐이랴! 내가 하는 언행에 화를 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내옆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내 집에 사는 개미의 마음 또한 다르지않다. 과자부스러기에 스며들어 있는 인간의 마음이 개미의 촉수를부르고, 개미를 쫓아내려는 인간의 마음이 개미의 행적을 숨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내 마음 바깥에서 들어오는 저 마음들의 연쇄. 그것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개미의 마음을만든 것이다. 그것이 나나 개미를 특정한 양상으로 행동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체유심조‘는 연기법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연기법의 다른 표현이다.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일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그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유심조‘는 내 마음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식의관념론과 반대되는 방향의 사고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1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는 우리의 신체, 우리의 마음은 35억 년 생명의 역사가 만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나의 마음, 너의 마음은 이런 점에서 보면 모두 35억 년간 생명의 역사라고 불리는 연기적 조건이 기억되고 집적된 것이며, 그런 외부적 조건이 내부화된 것이다. 나에게 작용하는 모든 마음이 응집되어 내부화된 것이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그 외부적 조건이 생명체의 마음속으로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들, 그것이 나의 신체요, 나의 마음이다. 만나는 조건마다 만나는 마음들에 따라 모두 다르게 접혀 들어가며 만들어진 주름들, 그것이 ‘소산‘으로서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이나 개미의 마음이고, 내 눈의 마음, 내 유전자의 마음이다. - P-1

무상한 것을 멈추고 고정하여 ‘알려는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무상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멈출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멈추려 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의원인임을 아는 것이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고정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지혜이다. 따라서지혜는 지식과 어쩌면 반대방향에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함은 세계의 실상이란알 수 없다며 포기하고 절망하는 니힐리즘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나체의 말대로 멈출 수 없는 가변적 세계에 실망하여 변함없는 것,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니힐리즘이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알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살려고 하는 한 세상에 대해, 눈앞의 저것이 무언지 알아야 한다. 알기위해, 포착하기 위해 우리는 변화를 감속시키고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멈추어선 채 포착된 것에 이름을 부여한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인정한다 함은 그렇게 포착된 것이 실상과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고정한 순간 이미 실상은 옆으로 빗겨나기 시작했음을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포착한 것이 그저 잠정적인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정된 것을 떠나 다시 변화된 것을 향해눈을 돌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지혜란 내가 포착한 것을 믿고 확장해가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세계 앞에서 그걸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에서 눈을 돌려 다시 무상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한 물건도 지고 있지 않을 땐 어떠합니까?"라는 물음에 조주 스님이 내려놓아라! 라고 했던 것, 이어서 선승들이 내려놓아라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가르쳤던 것은 이 때문이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
후안옌 지음, 문현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나는 젊었을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려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도 않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오해를 살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잘보이려는 충동은 맹목적이고 헛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누구나 자기 기준에 따라 남을 판단하므로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진실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진실함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정으로 나답게.

서어나무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내 모습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바꾸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면 나무껍질처럼 자신을둘러싼 외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나무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소중한 엽록소를낭비하는 법이 없다.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 집중한다. 수수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서어나무도 그렇다. 이나무는 유달리 높이 자라지도 않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도 않으며, 맛있는 열매를 맺지도 않는다. 수천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 단단히 뿌리 내리며 강인하게 자라왔을 뿐이다.
단 한 번도 박수갈채를 바란 적 없이. - P-1

필요할 땐 도와달라고 손 내밀기

느릅나무

느릅나무는 혼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스스럼없이 손을 내민다. 애벌레에게 공격을 받으면 이 나무는 페로몬pheromone이라는유인물질을 내뿜어 기생말벌을 불러들인다. 페로몬에 이끌려 날아든 기생말벌은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고, 알에서 부화한 유충은 애벌레를 먹이 삼아 자라면서 위협을 서서히 잠재운다. 우리는 종종 남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힘으로 해내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느릅나무는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때로는 그저 말벌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 P-1

서로의 곁을 지키는 일

우산가시 아카시아나무

나무는 말없이 서 있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주변과 어우러져살아가는 사교적인 생명체다. 우산가시 아카시아나무는 곁에 있는 친구를 살뜰하게 챙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영양이나 기린이 간식 삼아 나뭇잎을 한 입 뜯으려 하면 이 나무는 에틸렌가스를 내뿜어 이웃 나무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신호를 받은나무들은 잎에서 떫고 쓴맛이 나는 타닌rannin을 내보내 허기진 초식동물의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우리도 우산가시 아카시아나무처럼 평소 친구들을 세심히 살피고, 위험이 닥치면 빠르게 정보를나눠 서로를 지켜주기로 하자. 단, 가스는 너무 뿜어대지 않기! - P-1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

미송

사람처럼 나무도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망에서 힘을 얻는다. 한때 과학자들은 미송 Douglas fir 같은 나무들이 왜 가깝게 붙어 자라는지 의아해했다. 햇빛을 받으려면 간격을 벌릴 법한데 오히려서로의 햇빛을 가릴 위험까지 감수하며 바짝 모여서 자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흙 속에 사는 균류의 도움으로 나무뿌리가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영양분이 오가고 있었다. 미송은 이 뿌리망을 통해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 심지어 숲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무라면 쓰러진 그루터기에도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때의 공동체란 단지 미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송은 비록 종이 달라도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으며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정함은 상대를 무안하게 하지 않는 배려와 상대를 안심시키는 반듯함이다. - P-1

‘기분 좋게 사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직접 잡아가는삶의 태도가 된다. 좋음과 좋지 않음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좋음을 선택하는 연습. 그선택을 매일 훈련하는 삶을 살아간다. - P-1

"지치지 않고 멀리 가려면,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지혜다"라는 데일 카네기의말처럼 - P-1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그 질문은 나의 감정을 다듬고, 시야를 넓혀주었다. - P-1

다정한 사람은 결국 가장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 말은 곧 배려가 습관화된 사람이며, 동시에 속도를 읽고 맞춰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는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래 이어지려면 결국 ‘속도‘를 읽는 감각이 필요하다. - P-1

당연한 관계란 없다. 오랜 인연도 돌보지 않으면 금세 멀어지고, 매일의 다정함이 쌓여야 비로소 오래가는 인연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다정하자. 익숙한 관계일수록 더 섬세하게 말하자.
다정함은 시간이 아니라, 태도로 만들어가는 거리감의 예술이니까. - P-1

데일 카네기는 말했다. "비판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이며, 비판을 받는 사람은 방어적으로 변한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부드럽고 다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모든 삶에는 보이지 않는 결이 있고, 그 결을 모르고 쉽게 판단하는 일은 늘 오해를 낳는다. - P-1

사랑은 에너지를 준다. 미움은 에너지를 앗아간다. - P-1

"이건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인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생각의 방향이 바뀐다.
그리고 나의 하루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마음, 지나간 과거, 알 수 없는 미래. 이 모든 것들에는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에 나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의 선택을 정성스럽게 고른다. - P-1

하는 쪽을, 웃는 쪽을, 칭찬하는 쪽을, 기쁨을 고르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면, 세상은조금 덜 버거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작은 선택들이 결국 나의 태도가 되고, 그 태도는 내가 세상을 통과하는 방식이 된다. - P-1

자기 확신은 거창한 명언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 남이 모를작은 일에 진심을 다하는 것, 그런 반복 속에서 나에게 쌓이는 내면의 믿음이다. - P-1

나의 하루를 지키기 위해, ‘상심하지 않는 방법‘을 천천히 배워왔다. 그 방법은 단순하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크게 탓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는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몸으로 익히고 삶으로 깨닫는 앎의 철학
요로 다케시 지음, 최화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다는 것은 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
사람이 달라졌다는 건 과거의 자신은 죽고 새로운 자신이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
이를 반복하는 것이 배움.

80년을 공부해 온 사람이 하는 말.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것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말에 나는 늘 이끌리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뭐든 공부하면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때는 모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기보다 정말 단순히 그럴 거라고 느꼈다.
그런데 언제쯤 그 생각이 무너졌을까. 어렸을 때부터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떤 책이든 읽으면 이해할수 있다는 전제가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젊은 시절, 나는 책을 읽듯이 세상을 ‘읽으려 했다. 물론 세상이책이라면 읽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를 읽는게 반드시 그 내용을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을 읽기란 어려웠다. 세상사와 사람 마음이라는 - P-1

게 얼마나 복잡하고 버거운지 아무리 애써도 읽어낼 수없었다. 애초에 사람 마음은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알았다. 그래서 전공분야로 해부학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마음은읽을 수도, 읽을 필요도 없다. 읽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내마음뿐이다.
내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가가린 Yuri Gagarin (구소련의 우주 비행사-옮긴이)이
"지구는 푸르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 밖에서 나를 보지 못했다.
나 밖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본다는뜻이다. 다행히도 이 일에 성공하지 못했기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일은 없었다.
여든을 넘어 인생을 돌아보니 나는 알고자 했으나 결국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논하는 책을 세상에 낼 만큼 아직도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 P-1

인생에는 딱히 의미가 없어도 된다. 이 점을 상세히다루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지만 "인생의 의미를 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섬뜩해진다. 그런 경향의 씨앗들이 이따금 보이는 요즘세상에 이케다의 발언은 일종의 경고다.
인생의 의미 따위는 모르는 편이 낫다. 모르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그냥성이 풀리지 않은 채 정신을 다른 데로 돌리면 된다. 나는 정신을 산만하게 하려고 곤충채집을 비롯해 다양한일에 몰두한다. 오늘도 볕을 쬐고 있는데 곤충 한 마리가 날아왔다. 추운 날 생각지 못하게 곤충을 만나 몹시기뻤다. 나는 오늘도 건강하고, 이곳에 곤충이 있다. 그게 살아 있다는 것이니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세상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알면안 된다. 조금만 더 가면 알 것 같은, 그 경계를 찾는 게참 어렵다. 이 책이 세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P-1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과꽤 다릅니다. 안다는 것은 만난 적이 있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는,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가리킵니다. 이해한다는 것과는 다르죠. 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 즉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당 부분 예측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에서 그런예측을 하는 기관이 바로 ‘뇌‘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측을 요즘은 시뮬레이션이라고 하지요. - P-1

8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나는 줄곧 자연이라 불리는세계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어릴 때와마찬가지로, 나는 알지 못합니다. 땃쥐나 바구미도 쉽게 알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진정 알게 되려면 공명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나, 두사람이 공명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양은 사람의 마음을 아는 마음"이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하셨습니다. - P-1

두 고체의 고유 진동수가 우연히 일치했을 때 발생하는 공명은 언뜻 보기에 참 신기한 현상입니다. 공명은의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무한에 있는 한 점입니다. 나는 땃쥐가 되었다가, 바구미가 되었다가,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좀처럼 공명에는 이르지 못했죠.
방식이 틀렸을 테지요. 이성으로 ‘알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의식‘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 알기 위해서는 의식이나 이성을 벗어나야 합니다. 여기부터는 거의 종교의 세계이므로 이만 마칩니다.
합장.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