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 그때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문장들 39
대니얼 클라인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골라온 책인데
철학자 할아버지의 옛노트를 몰래 읽는 기분이었다.
20대부터 철학을 공부해오며 삶에 흔들리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한 거인들의 문장을 살펴보게 한 책.

과학자였던 내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 반세기 전, 철학을전공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정신적 자위행위" 같은 말을중얼거렸다. 그 당시엔 손으로 하는 자위행위는 정신적 자위행위든 도덕적으로 해로우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에게 철학은 반사회적인 데다가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대공황 시대에 태어나 자란 아버지는 ‘유용성‘을 모든 것의 최우선 가치로 생각했다. 쾌락주의자와는완전히 거리가 먼 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철학 공부는 순전히시간 낭비를 의미했다.
러셀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적 지식이 없다면 스스로 상식으로 인한 편견 속에, 나이나 국적으로 인한 습관적 믿음 속에, 그리고 신중한 이성의 동의나 협조

없이 마음속에 자라난 확신 속에 갇힌 채로 살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세상은 명확하고 유한하며 뚜렷하다. 일상적인 대상에어떤 의문도 갖지 않으며, 익숙지 않은 가능성은 경멸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철학은 친숙한 대상을 낯선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경이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모든 세월 동안 각자의 삶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담사가 되어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물론그랬다. 철학적 주제를 놓고 우리가 나눴던 길고 격렬한 토론은 내게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줬다. 하지만 함께 보낸 가장 환상적인 시간을 꼽자면 아무래도 함께 바보처럼낄낄거리며 망가질 때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충분히 믿기 때문에 함께 어리석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덤 앤 더머처럼 말이다.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어대다가도 잠시 시간이 멈추고 즐거움으로 무아지경이 된 상태에서 ‘영원한 현재 Eternal Now‘(뉴에이지 사상이 제시하는 시간을 지각하는 법에 대한 개념이자, 뒷장에 등장하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가 1956년 출판한 설교집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틸리히의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옮긴이)를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순수한 사귐의 즐거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홀로 있음의 영광도 사랑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즐거움은 더더욱 깊어졌다. 혼자 있으면 평화로움과 더불어 살아 있음에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가 많다. 여름날 내 작은 집 뒤쪽에 훌쩍 자라난 풀과 야생화들을 눈앞에 두고 홀로 앉아 있노라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마저도 떠들썩한 잔치처럼 느껴진다.
내 곁을 지날 때면 아내는 가끔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바라본다. 몇 년 전에 아내가 의자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리깊이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행복하게 진실을 고백했다. 어떤 깊은 생각도, 심지어 어떤 얕은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있었노라고. 사실은 그랬기 때문에 진실로 즐거울 수 있었던것이다.
고독에 빠져 있다는 건 분명 이기적인 행위다. 그러나 자기본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건 내가 나임을 자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축하할 일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며, 그 축복은 보통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는 그 느낌이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우주에게는 굴 한 마리의 삶보다도 중요하지 않다. ㅡ 데이비드 흄

흡이 말하는 ‘보잘것없는 삶‘ 패러다임에 대해 영화계가 내놓는 또 다른 반응도 있다. 스웨덴 걸작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는 개개인의 삶은 우주 그 자체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작고 하찮다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 작은 세상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이 감독한 이 감동적인 영화는1900 대 초 스웨덴의 부유한 대가족 에크달Blkdahl 집안에서 3년동안 벌어진 일을 묘사한다. 극 중에서 에크달 가족은 몇 가지거대한 상실을 겪는다. 어린 알렉산더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에밀리는 목사와 재혼한다. 하지만목사는 폭군 같은 가장이자 잔인한 의붓아버지였다. 결말 부분에서 에밀리와 아이들은 자유를 되찾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와 만찬을 크게 열어 자축한다. 알렉산더의 삼촌 구스타프는건배를 제안하며 사랑스럽고 유머를 곁들인 ‘작은 세상‘에 대한 긴 송가를 바친다.
"세상은 도적들의 소굴이며, 밤은 서서히 다가오네. 악이 사

슬을 끊고 미친개마냥 온 세상에 날뛰네. 우리는 악에 감염되어 도망치지 못하네. 그러니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집시다.
친절하고 자비로우며 다정하고 선해집시다. 우리는 이 작은 세상을 즐겨야 합니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흡이 말하는 ‘굴과 다를 바 없는 하찮은 삶이 구스타프에게는 ‘이 작은 세상‘이다. 꽤 괜찮은 말 아닌가?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집에 두고 살면서도 나는 옥스팜에한 푼도 기부해본 적이 없다. 인정한다. 그러니 싱어에 따르면나는 근본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기분 좋다고는 말 못한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끔찍하다. 분명 이에 관해서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아니면 옥스팜에 십일조를 내든지 그냥 행동에 옮길 수도 있다.
나는 도덕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하지만 싱어는 옳다. 세상이정의롭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정작 이를 바꾸기 위해 편안한 의자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이들에게 싱어가 가하는 저격에 전심전력으로 동의한다. 위선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사실 가장 기

만적 형태의 위선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위선이라고 부르는대상에게 위선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나는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목청껏 외쳐대는 것만으로 세상을바꾸기 위한 책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불평꾼들 편은 절대로들 수 없다. 그들의 제1세계 머리 위에 제3세계의 물 한 양동이를 흠씬 끼얹고 싶다.

인생의 의미는 찾았다싶으면 또다시 바뀐다. ㅡ라인홀트 니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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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을 전해준 괴테 할머니 전영애 작가.
한평생 무언가를 연구했던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엔 귀가 솔깃해진다. 아니 솔깃해지는 것을 넘어 무슨 말이든 믿게 된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불어 빨래가 떨어지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다 읽은 책.
여주에 있는 여백서원에 꼭 가보고 싶다.

눈앞이 캄캄하던 젊은 날,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좀더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새로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고,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 성심껏 해왔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하면 좋을지, 그게 득이 될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시간에 하나를 꾸준히 잘해보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늘 비유하는데요, 산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

니다. 더 쉬운 일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산 하나를넘는 고비는 있는 것인데, 우리가 산을 넘으려면 저 산이 좀 쉬울까, 이 산이 좀 쉬울까 하고 둘러보면 안 될일이고요. 어떻게든 바로 이 눈앞에 있는 산등성이를꼭 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너무 재는 것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고, 쭉가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해도 힘든 점은 있으니 산 하나 정도 오르는 공은 들여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적어도이건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라도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도돌이표를 하나 치자면, 무엇보다도 바르게살아야 됩니다.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바르게 살면 큰일날 것 같고, 무슨 수를 써야지만 손해 안 볼 것 같지요? 아닙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살아지고, 작은 결단들에서 언제나 선한 결단 쪽을 택해서 묵묵히 가노라면 그것이 쌓여 마지막에는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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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 해오다 얼굴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마치 우리 아빠의 고향 동생이 썼다고 생각할 정도로 친근했다. 그의 고향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개인을바꿀 수는 있을 테니까, 개인이 바뀐다면 언젠가는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포기할 수는 없다. 장진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설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서주제로 나아가야 한다."
스티븐 킹의 말이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거창한 이념보다 사소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더 믿음직스럽다.

이들이 파도를 타면서 느꼈을 감정, 사치가 피아노를•치면서 느꼈을 감정, 누군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을 감정, 누군가소설을 쓰면서 느꼈을 감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걸 줄기면서 느꼈을 감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파도를 타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일이다. 세상을 구하는 일도 아니고 아프리카에서굶고 있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도 아니고, 종교적인 분쟁을막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없다. 전적으로 개인의 감정을 위한일이고, 스스로의 기쁨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기쁨을 제대로 찾아낼 수 없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해도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우리가 다음 세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이 자신의 기쁨을 온전하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많이제공해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파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하고,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구 뛰어놀 수 있어야 하고, 피아노를치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굶어 죽을 걱정 하지 않고 피아노를 칠 수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절에 발견했던 온전한기쁨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료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 온전한 기쁨을 충전해두지 않는다면 길고 긴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

서프보드도 그렇지 않을까. 파도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 서프보드를 더 잘 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나는 가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언덕길을 내려오던 그 시절을 생각하고는 혼자 웃는다. 그런 완벽한 시간이 다시 올까.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있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다치고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도전하고 실패하고, 실패해도 상관없어,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다시 부딪칠 수 있는 여유가 마음 가득히 부풀어 오르는, 그런 시간이 다시 올까. 언젠가 내인생에 그런 완벽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서프보드를 배우고싶다. 여름 바다에는 그늘이 없지만 그런 완벽한 시간을 위해서라면 햇볕 알레르기쯤은 참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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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손님이 머무는 집,
날마다 손님은 바뀐다네.
기쁨이 다녀가면 우울과 비참함이, 때로는 짧은 깨달음이 찾아온다네.
모두 예기치 않은 손님들이니그들이 편히 쉬다 가도록 환영하라!
때로 슬픔에 잠긴 자들이 몰려와네 집의 물건들을 모두 끌어내 부순다고 해도손님들을 극진하게 대하라.
새로운 기쁨을 위해 빈자리를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어두운 생각, 부끄러운 마음, 사악한 뜻이 찾아오면문간까지 웃으며 달려가 집안으로 맞아들여라.
거기 누가 서 있든 감사하라.
그 모두는 저 너머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손님들이니.
-루미, 「여인숙 전문

루미의 시는 이렇게 묻는다. 오늘 너의 기분은 어땠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손님이 찾아왔는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잠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내다가 떠난 고마운 손님이었는지, 이불이 더럽다고 화를 내느라 밤새 잠들지도 못하다가 급기야 집을 부수기 시작했던 난폭한 손님이었는지. 네 마음속으로 그 어떤 손님들이 찾아온다고 해도 너는 언제나 너일 뿐,
그 손님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네 마음속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꺼이 맞이하기를. 그가 어떤 사람이든 화를 내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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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일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하는 데 헌신해도 모자랄 판에 곧바로 읽지도 않을 책, 그것도 케케묵은 헌책 따위를 사들이느라 길에서 시간을 흘려버리는 나를 본다면 누군가의, 아니 대부분의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눈에 나의 그 시간은애타도록 아까울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그것은보람 있게 쓰이지 못하는 시간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시간의 가치는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게 생긴 것과 같이 저마다 다르다. 나에게 헌책을사들이느라 들이는 시간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헌책방 주인에게는약간 가져다준다-그렇다고 누구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그것은 순한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짧아지는 인생에는 그런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차피 내가 사들여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지못하고 죽을 것이다. 내가 나의 순한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니 포기한다 해도 이미 글러먹은 일이

다. 다만 나는 사들이는 만큼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의 오래된 게으름이 자주 못마땅할 뿐이다.
서재는 반드시 우리가 읽은 책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언젠가 읽게 될 책들로 구성되는 것도 아니죠. 그렇습니다.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었죠. 서재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들입니다.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책들이죠. 그것들을 영원히 못 읽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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