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쓰고 일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하는 데 헌신해도 모자랄 판에 곧바로 읽지도 않을 책, 그것도 케케묵은 헌책 따위를 사들이느라 길에서 시간을 흘려버리는 나를 본다면 누군가의, 아니 대부분의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눈에 나의 그 시간은애타도록 아까울 것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그것은보람 있게 쓰이지 못하는 시간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시간의 가치는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게 생긴 것과 같이 저마다 다르다. 나에게 헌책을사들이느라 들이는 시간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헌책방 주인에게는약간 가져다준다-그렇다고 누구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그것은 순한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짧아지는 인생에는 그런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어차피 내가 사들여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지못하고 죽을 것이다. 내가 나의 순한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니 포기한다 해도 이미 글러먹은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