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순간 - 읽기와 쓰기 사이, 그 무용한 지대에 머무르는 즐거움
김지원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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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고 선명한 것을 쫓는 것보다 흐릿하고 어쩌면 무용할 지도 모르는 것을 좋아하기로 한 작가의 생각에 끌린다. 이런 글을 읽으면 광장 가장자리에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내 뒤로 살며시 다가와 내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짚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챗지피티와 관련해 재밌는 밈이 있다. 기계를 사이에둔 두 사람이 각각 한 사람은 "이 한 문장을 세 쪽짜리 글로만들어줘"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세 쪽짜리 글을한 문장으로 요약해줘"라고 말하고 있는 그림이다. 말하는사람은 애초에 흥이나 기대 없이 마치 먼지만 들어 있는 거대한 선물 상자를 만들듯 쓰고, 그걸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오늘날 읽고 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 핵심을 말하자면 이런 것이 아닌가? 즐거움 없이 무한히 속도를 높이며 바이트만 증식시켜가는 것. - P-1

오늘날 수많은 활동에서 ‘자동화‘라고 선전되는 것들의 상당 부분은 자동화라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수동화에불과하다. 직접 텃밭에서 흙을 밟고 계절을 느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모든 일을 ‘자동화‘해준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강도 같은 일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런 종류의 지적에 대해 마치 ‘이상주의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연 모든 활동의 시작점과 끝점 사이를효율적으로 삭제해버리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쯤에서 한 오래된 경구를 떠올려볼 수 있다. "삶에있어 가장 효율적인 것은 빠른 죽음이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말한다.
만약 내가 이 문장, 이 이야기, 혹은 이 말을 즐겁게 읽는다면, 그것은 그것들이 즐겁게 씌어졌기 때문이다." - P-1

이처럼 스스로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 먼 미래에라도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쓰기의 즐거움을 한층 더북돋워줄 수 있다. 서간문 같은 비교적 정확한 독자를 상정하는 글이 쓰는 즐거움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서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즐거움, 그 텐션과 에너지를 자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령 다락방에서 홀로 외롭게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그 유리병 편지를 열어 쓰기의 시간에 읽기의시간을 겹쳐갈 것이다. 이는 상호 호혜적, 선물의 관계다.
선물의 핵심은 ‘진심‘과 ‘비효율성‘이다. 쓰는 사람이자신의 즐거움을 담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그것을 사려 깊게 자신의 나름대로 읽으려는 욕망 자체를 잃게 된다. 반면 텍스트를 싼 겉모습, 텍스트가 담긴 맥락, 주제 등이 얼마나 그럴듯하냐 혹은 허름하냐와 관계없이 나름의 이상함과 즐거움을 담고 있는 텍스트는 기어코 그것을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응답하게 만드는 생명력이 있다. 반면 어떤 종류의 텍스트들은 선물이 되지 못한다. ‘효율적인‘ 시스템화,
자동화되고 분담되었으며 쓸모없는 애매한 지대를 최대한버리고 필수 불가결의 노력만을 투입한 기계적인 글쓰기. - P-1

오늘날 대부분의 소통은 본질적으로 서간문보다는 일체의 자투리를 제거해버린 전보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쓸모없음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형식이면서도 연결 상태를 유지해 수신자를 지속적으로번거롭게들쑤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법의 글쓰기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번거로운 일을 해준다니 실로 환영할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치 쓸데없는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자동응답기를 틀어놓듯이 자동적으로 각종 쓸모없는 형식뿐인 업무 메일과전보에 대응하고 ‘차단하는 미래는 벌써 성큼 다가와 있다.
마법의 글쓰기 기계가 제공하는 온갖 즐거움 없는 쭉정이글들의 대필, 요약 서비스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을 닫고 내 방의 책상 앞에 앉는다면 나는 책과 종이를 펼치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종류의 글쓰기, 놀이를 꿈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도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 글의 차이를 그리 헷갈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즐거움은 이성과 판단보다도 앞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

책 읽는 게 점점 성가셔져 가능한 한 읽지 않기로 했다. 독서란 매우 훌륭한 일과라 생각하면서도 한 글자씩 글자를주워 모아 행을 쫓아서 페이지를 넘겨 가는 게 타인의 수다를 자신의 눈으로 들으려 하는 것만 같아 시끄럽다. 눈은 그런 걸 보기 위한 것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

우치다 햣켄, 햣키엔 수필 - P-1

어떤 외부 텍스트는 한 사람을 기어이 무릎 꿇리고 삶의 경로를 바꾸어놓고야 만다. 그런 경험은 내 주머니에 돌멩이를 주워 넣는 경험이 아니라, 갑자기 뚱딴지처럼 한계와 의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주머니에 내가 섞여 들어가한낱 모래 알갱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경험이다. - P-1

‘기억‘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 흘러가다가 고여버린 것, 혹은 우리가 의식해서 마음에 두고 언젠가는 유의미한 삶의 연결, 매듭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모든 것에 대해 앞치마를 펼칠 수는 없다. - P-1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걸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질문을 ‘무엇을 읽고, 무엇에 사로잡히고,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머무르고 또 통과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부담 없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편협해지고, 자유분방하게 텍스트의 행간을누빌 수 있을 것이다. - P-1

내 상자 속의 문장과 일화, 조각들은 책의 구석에서 제멋대로 끌어왔지만, 파티장 중앙의 가장 빛나는 샹들리에가 아닌 냅킨 같은 것이라서 훔쳐도 대체로 눈에도 띄지 않는 것들이다. 애초에 그 ‘창작자가 저자가 아닌 경우도 많다. (책 속 인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둔 것도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저 모든 문장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이 있고, 그
‘순간‘들 때문에 문장들을 훔쳐서 베개 밑 상자에 탐욕스럽게 욱여넣었다. - P-1

과연 완결된 관찰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은 완결될 수있는가? 어떤 치열한 잡동사니가 ‘끝나는‘, 그로서 ‘완성되는‘ 지점이란 어디인가? 벽에 내걸리고, 제목이 붙고, 역사적 컬렉션에 포함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 모든 ‘사이‘의영역은 지워져도 괜찮은 걸까? - P-1

어떤 텍스트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단지 배울 점을 찾고 그것을 오롯이 흡수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그것이 어떤-나조차도 몰랐던-세계와의 불화,
어긋남을 감각하게 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끄러지듯 텍스트를 읽다가 ‘딴짓을 위해 멈추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이어령은 "독서는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출 지점을 만나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지점으로부터 텍스트와 내가 만나 무언가가 촉발되는 분기가 시작된다. - P-1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말한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기묘한 버릇이 있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돌멩이 가운데 아무것이나 적당히 주워몇십 분 동안 지그시 바라보는 버릇이었다.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워 올려진
‘이‘ 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난 전율 - P-1

할 만큼 한없이 감동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분석할 수 없는 것, 그냥 그곳에있는 것, 색이 바래서 잊혀 사라지는 것이다.
난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일반인들이 쓴 방대한 양의 블로그나 트위터를 쳐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물가로떠내려온 말라비틀어진 나뭇조각처럼 5년이나 업데이트하지 않은 블로그에서는 어떤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어딘가 학생이 쓰다 만 것 같은 ‘점심밥 나우now‘ 같은 중얼거림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회학자로서는 실격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분석할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기시 마사히코가 사랑하는 이런 "분석할 수 없는 것"-단편들은 일기와 두서없는 메모에서 불쑥 고개를 든다.
이런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사실 소용없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 삶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것들을 각별하게 모아가기 위해서는 애초에 분류가 있으면 안 된다.
- P-1

메모라는 무형식의 형식이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이러한 무형식과 무분류는 반드시 일차적으로 메모가나를 경유-통과해가도록 한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라면전혀 주목하지 않을 만한 것일지라도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끌리는 것들을 모으게 되기 때문이다. 유용한 정보들만을 받아보는 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구제불능의 잡동사니함이다.
언젠가 나는 ‘독서노트‘라는 최소한의 형식(분류)마저도 벗어버릴 것을 고민하고 있다. ‘계속해서 써가는 이들에게 일기는 특정 장르라기보다는 모든 분류될 수 없는 강렬한 상념과 잡동사니, 자투리들이 가장 수상한 방식으로 빛나는 집합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것들을 메모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종류의 글은 기본적으로 자리에 앉는다고 해서써 내려갈 수 있는 종류의 글이 아니다. 틈틈이 가장 ‘영감‘
이 강렬할 때 순간순간을 최대한 섬세하게 관찰하고, 또 낚아채려는 시도 속에서 이런 글들은 쓰일 수 있다.
모든 의무감, 눈치, 번거로운 것들을 벗겨내고 나면 종이에 남는 것은 자신의 글조차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메모‘다.
이미 발견되어 있는 화석을 모래사장에서 소중하게 집어 올리는 행위, 만원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지친 얼굴에서 이미 존재했던 나의 얼룩을 찾는 행위.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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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날까지 - 세계적 명상가 홍신자의 인생 수업
홍신자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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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궁구해내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믿음직스럽다. 생각이 너무 멋져서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을 정도다.
항상 성장에 대해 생각했던 때를 지나 이제 성숙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성숙한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할까,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새롭게 떠올랐다.

10년의 미국 생활 동안 나는 자유를 누렸다고 생각했었다. 무용가 홍신자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맛보았고 명성도 얻었으니. 그러나 성취해야 할 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바로 그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허탈감과 함께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서른여섯 해를 살면서 외면해 온, 밀린 숙제들이었다. 개학 전날의 초등학생처럼, 손도 못 댄 채 미뤄두었던 숙제들 앞에서 나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짧은 목표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래서 움직여야 할 방향도 명확했고 할 일도 분명했다. 그 방향으로 뛰고 그일을 하면서 늘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가장 간단한 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질문들 앞에서는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왜 사는가, 그리고 왜 죽는가.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위태롭게 서 있는 허술한집 한 채에 불과했다. 너무도 낯익은 질문이 하나 굴러와그 집의 기둥에 툭 부딪히자, 그만 그 집은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 P-1

그는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순수한 예술이 춤이라고했다. 그는 춤을, 무용가를 좋아했다. 그가 해준 말은 짧았지만 그 순간의 커다란 깨우침이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춤을 추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춤은 보이지만 춤추는 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보는 자의 영혼에만 가닿을 뿐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 춤이 내 것이라고 내세울 수는없다. 스스로를 내세운다면 그 전에 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춤은 증명하거나 제시하기 위해 추는 것이 아니다.
춤은 등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고 팔다리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강해질수록 춤은 보이지 않고 춤추는 자의 몸만 보인다.
그럴 때의 춤은 춤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으니 나를봐주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의 ‘몸짓‘에 불과하다. 그런몸짓은 보는 이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 P-1

미리 계획하지 않고 그저 느껴지는 대로 이어나가는 춤. 온전한 나의 춤.
물론, 젊었을 때는 팔을 더 높이 들 수 있고 기교를 넣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가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테크닉으로 추는 춤과, 나이 든 이가 추는 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동작이 익어간다. 기본적인 동작에도 의미가 담긴다. 맛에 비유하자면, 갓 담근 된장과 익은 된장의 차이일 것이다. - P-1

누군가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순간‘이라고 말할것 같다. 혹은, 거기에 덧붙여 너무 순간이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모호한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도사랑이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기기 위해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저 물 흐르듯이 그 따듯한감정과 사랑스러운 숨결을 그대로 지나가게 두고 싶었다. 사랑은 그저 그 순간에 존재했던 감정일 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곧잘 묻는다. "사랑이란 것을 최근에 느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은 어떤 것인지요?" 나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짧게, 기억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인 사랑을 왜 기억하지 않느냐고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랑을 느끼는 한순간에집중할 뿐 기억으로 붙잡아두거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추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려 할 테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너무나도 값지기 때문에 오롯이 받아들이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혹시나 소유욕으로 인해 순간의 감동을 놓치거나 집착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

좀처럼 관여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는 나에게 딸은 "엄마, 나 친딸 맞아?"라며 어린아이가 할 법한 말을 하기도한다. 나는 그저 알아서 답을 찾으라고 말해줄 뿐이다.
"시간을 가지고 결정해라" 정도 외에 내가 더 보탤 말은없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항상 직접 겪어보고 부딪쳐봐야 아는 것이니.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잘되는일이 있으면 못되는 일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다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관념은, 끊으려면 끊어지는 쇠사슬이다. 굳게 믿고 있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면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도 막상 닥쳐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스스로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지녔다는 사실만 인지한다면, 생활 속의 순간순간이 자유를 향한 스승이 되어줄 것이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하나.
사랑을 공부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P-1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늘 열려 있어야 인생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내가 늦은 나이에 춤을 따라갔던 것처럼,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특별함과 이상함을 동시에 얻게된다. 그러나 사실 그 특별함과 이상함은 내 안에서 비롯된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자유로운 선택과놀이일 뿐이다. - P-1

이미 일어난 비극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기억과 아픔을 비워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은 하나의 긴 경험이다. 사계절이 있듯이, 삶에서도 업 앤드 다운upand down이 반복된다.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사랑을 하나씩 찾자. 그리고 그사랑을 나누는 공부를 하자. 사랑을 베푸는 것이 권력이나 돈을 베푸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성현들은가르쳤다. 우리 생명의 근원은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질 역시 바로 사랑이다. 사랑으로 비로소 충만해졌을 때 남에게도 베풀자. 미움을 가진 사람은미움으로밖에 남을 대할 수 없다. 베푼 만큼 되돌아오지않을까 봐 실망할 바엔 차라리 사랑하지 않겠다고 철문으로 가슴을 무장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접근해 오면 두려움과 긴장부터 느낀다. 이 사람과의 승부를 미리걱정하는 것이다. 가슴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사랑이 머 - P-1

리를 거치면, 미처 깨닫기도 전에 계산과 방어가 시작된다. 가슴속의 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라. 사랑이 솟아오르고 있음을. 사랑의 힘이 온몸으로 퍼져나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비의 전율이다.
사랑은 치유라는 이름 안에서 강해진다. 구속과 억압,
자기만족이라는 이름 안에서는 한없이 폭력적으로 기울게 된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했을 때 격려해 주고 축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배우자를, 자식을, 제자를 구속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욕심이다. 질투나 소유욕을 우리는 자주 사랑으로 착각한다. 그러고는 그것에 서둘러 사랑이란 이름을 붙이고상대를 구속하기 시작한다.
- P-1

일상이 여행인 나는 늘 길을 물어가면서 다닌다. 길을알려주는 사람들의 손끝에서 때로는 사랑, 때로는 증오,
때로는 무관심을 본다. 증오를 가진 자의 손가락은 엉뚱한 곳에 가 있고, 무관심한 자의 손가락은 어디를 가리키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득한 자의 손가락은 언제나 정확한 곳을 가리킨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길을 헤매고 말 것이다. - P-1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표현함으로써 삶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득, 자신이 왜 그 순간에 눈물이 나고 화가 났는지 의아해질 때면 스스로 돌아보며분석하고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감정은 정직하므로, 그것을 탐구하면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다. 만약 누군가를 만나는 게 힘이 들고 기운이 빠진다면, 돌아보라.
겉보기에는 안정적일지라도 지금 그 관계에는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테니 말이다.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한 다음엔 자기를 보다 솔직하게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마치 내게 꼭 맞는 스웨터를 뜨는 일과 같다. 몸에 맞는 자신만의 옷을 입고 있으니, 나를 표현하는 데에 자신감이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웃음으로, 울음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말과 글로 모두 쏟아내야 한다. 가슴에 빈 공간만 남기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빈 가슴으로 서로를꼭 껴안는 것이다. - P-1

나는 늘 ‘지금‘이 좋다. 나는 ‘지금‘을 살고 ‘지금‘을 사랑하고 ‘지금‘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지개를 보면 춤추며노래하고 싶고, 소망을 꿈꾸고, 키스하고 싶다. 젊었을때보다 지금을 충분히 누리며 살고 있는 현재의 내가 훨씬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습관적 행동은 멀리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려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내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 비워내려는 것이다. - P-1

나이 듦의 좋은 점은 이처럼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는것이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관계의 끝맺음 앞에서는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원망도 미련도 없다. 그저그런 기분들을 바둑을 두듯 늘어놓을 뿐이다. ‘왜‘라는이유도 붙이지 않은 채로 그 감정을 거기에 그대로 두고나는 오늘을 위해 떠난다. 자꾸만 ‘왜‘로 돌아가는 것은내가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왜‘는 끝이 없다. 끝없는 질문을 하다 보면 과거에 갇히게 되고, 결국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든다. 과거로 간다는 것은 퇴보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생각의 끈을 늘이지 않고 끊어내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중요한 법이니 자꾸 과거의 끈만을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로 돌아오는연습을 해야 한다.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지속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과거를 파고들지 않는 연습을,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을 비우고 정화하는 연습을말이다. 만리 길도 첫걸음부터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유를 찾아보자. - P-1

그러면 작년의 나보다 올해의 내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성숙해질 수 있다고 기대해 보기도 한다. 늙음은 어떤 한구간에 멈춰선 채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노화라는 단어를 성숙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끝도 없이 늙는 게 아니라 끝도 없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성숙이라는 과정 속에 삶이 있고, 죽음으로 그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몸은 마치 법당과도 같다. 나는멍하게 앉아 있을 때가 많은데, 남들은 더러 오해하여 나에게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묻곤 한다. 나는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앉은 채로 몸의 에너지가 흐르고 진동하는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 감각과은밀히 만나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 어느 것도 끼어들 수 없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는 시간을 잊는다. 몸에커다란 감사를 느끼며 그냥 앉아 있다. 아침이면 눈을 뜬것에 감사하며, 또 하루의 경배를 시작한다. - P-1

생각해 보면 사는 것은 간단하다.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식사는 마치 호흡과도 같다. 숨 쉬는 것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식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지인 중에는 처음에소화불량을 겪다가 위암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가 더러있었다. 나는 그것이 식사의 조화가 깨졌기 때문이라고생각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이룬다. 그러니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아주 간단한 것들을 지키면 된다. 먹는 음식에 따라서 내안에 있는 것들이 달라진다. - P-1

 어떻게 식사를 할 것인지는 본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해야 한다. 간단한 노하우나 즉흥적인 해답만을 원하는 이들도 몇몇 있었는데,
이는 옳지 않은 방식이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체득할수 있는 원리가 있다. 명상은 스스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 P-1

고독은 침묵과 가까운 형태이고, 침묵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해답을 내린다. 그 해답이 어떠한지에 따라 자유로움의여부가 결정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고독의 진가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고독한 시간이 있어야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법이다. 더불어 결국 인생이란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한 번도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모든 일이 하나의 거대한 과정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실은 인생에는 별것이 없다. 결국 모든 일은 나에게서 시작하고 나에게서 끝이 난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감정을 온전히느끼는 것이 지금을 누리는 가장 자유로운 방식이다. 고독하다는 것과 외롭다는 것과 쓸쓸하다는 것의 맛과 느낌과 질감을 느끼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들여다보고, 그 시간을 누리는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 - P-1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스스로를 마침내독립된 한 실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일련의 과정 맨 위에는 나의 정신이 있다. 우리가 죽음을맞으면, 육신이 소멸하며 정신도 함께 소멸한다. 그러니죽는 것은 결국 정신, 즉 에고다. 두려움을 만들어내는것도 에고다. 에고가 소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에고란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는, 때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믿기 어려울 만큼 불투명한 존재다.
에고는 그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면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외적 조건들을 끌어모아 증거로 삼으려 한다. 모든 갈망이 여기에서 일어난다. 죽음에 대한두려움은 그런 갈망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상실한다는데서 생겨난다. 그렇다면 육신의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고를 먼저 죽일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까지 외부로부터 체득해 지니고 있었던 모든 지식과 관념을 송두리째 벗어던지기로 했다.
단선적인 언어로는 이러한 합리적이고 조화롭고 질서있는 혼돈을 모순되지 않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단지,
스스로 빈 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만을 느끼고 있었다.  - P-1

나는 한 척의 배고 노를 젓고 있는 사공은 나의 에고다. 그러나 빈 배는 사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물결의 흐름을 따르는 것 외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애썼던, 혹은 저먼 강건너편에 이르려고 서둘렀던 사공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나는 빈 배로 떠 있겠다. 더러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일렁이겠지만, 바다로 향하는 순조로운 흐름에 무심히 실려 있겠다. 어쩌면 바다에 이르기도 전에 강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배는그저 물속에 가라앉은 빈 배일 뿐이다. 빈 배가 걱정할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P-1

나는 자연으로부터 안정과 평온을 얻는다. 자연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려 한다. 숲속에 앉아 게으름과 지루함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문자 그대로 그저 숨만 쉬면서 살다 보면 나는 까마득하게 흐려진다. 왜냐하면 그 무엇과 나를 구분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태에서 행복을 느낀다.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바로 이런 순간에 이르기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품고 있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나에게 품고 있는 생각을 환상이라고인정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환상은 부정적인 현장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부서진다. 그 환상이 부서졌을 때의 아픔이란 것도 별것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 관해서라면, 상황이 좀 다르다. 자신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도 교묘히 짜인 하나의 작품이자 명작이라, 어디를 건드려도 모순을찾아내기 힘들 만큼 논리적이고 또 조직적이다. 이 명작을 창조한 작가는 바로 교활하고 영악한 나 자신이다.
이 환상은 깨뜨리기도 힘들고, 힘겹게 깨뜨리고 난 뒤의고통도 크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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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가 이란 사람이며 현재 본국의 열악한 상황 탓에 그곳에 남은 형제자매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은 충격을 받아 더욱 집중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당신이 그의 사연에 진심으로 관심을 둔다는 증거이기에 그는 고마워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당신은 계속 귀기울여 듣는다.
물론 당신은 여기 이란 가족이 겪은 일을 이전으로 되돌릴순 없다. 하지만 힘겨운 이 사람에게 관심을 선사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 순간 끊임없던 당신의 생각이 멎는다. 이 순간 당신은 자유롭다. 자신의 생각에게서 자유로워진다. 전체적으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향해 자유롭다. 원래 원했으나 한 번도할 수 없었던 것을 향해 자유롭다. 당신은 이 경험을 이어 나갈수 있다. 거듭거듭, 매일매일. - P-1

 윤리적 참여를 하려면 집중력이 필요하다. 윌리엄스는 집중력을 세 가지 형태로 나눈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스파게티를 포장지에서 꺼내 끓일 수 있게 한다.
스타라이트Starlight훌륭한 보호자, 성공한 부하직원이 될 수 있게 만든다.
데이라이트 Daylight당신이 삶에서 바라는 것의 기초가 되는 집중력이다. - P-1

모든 만남은 관심을 기울일 때 효력이 있다타인을 참으로 만나려면 온전히 여기 있어야 한다. 장소가가장이냐, 현실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줌Zoom으로 만나도 실제 당신과 건너편 사람이 서로 반향을주고받는다면 활기찬 관계가 쌓인다. 사회학자 하르트트로자 Hartmut Rosa는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과의 인터뷰에서
"반향이란 대답하는 세상을 향한 근본적인 그리움이다"라・고 말했다. 행복하고 의미 있고 선한 삶은 몸과 마음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조화를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 P-1

 어떤 순간에도, 만남은 늘 중요하다. 모두가 당신에게 당신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상의다른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P-1

모든 좋은 관계는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타인을 만나는 건불가능하다.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정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 P-1

지금 이 순간 무조건 존중하라는 말은 모든 인간을 무조건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잊지 말자. 당신은 교황도, 신도 아니다. 마더 테레사가 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당신은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당신에게 그것이 인간을 향한사랑이라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랑의 관계를 맺게된다. 사랑은 무한하다. 이곳에서, 죽음 너머에서도 사랑은 힘을 발휘한다. 좋은 것이 다 그렇듯, 사랑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한 번의 미소로 말이다. - P-1

다정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값진 선물이다. 아량의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이며, 쪼잔한 계산의 반대말이다. 당신이 내게 미소를 지을 때 좋아하는나의 반응을 보고 기쁠 테지만, 처음부터 그런 나의 반응을 계산한 건 아니다. 나는 당신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지금 엄청 슬프거나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다정은 보람이 있다. 당신과 타인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 사소한 게 아니다. - P-1

도널드 데이비슨이 주장한 ‘호의의 원칙‘
듣는 사람이 반사적으로 상대의 말을 비합리적이고 한심하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낙인 찍어서는 안 된다. 상대 입장을 최소한 이해해보도록 상대에게 최대의 합리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 논리로는 너의 주장을 완전히 따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논리가 (나의 논리처럼) 어느 정도 합리성을 담고 있다고 가정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덜 똑똑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니 조심하자. 지금 여기서 누가 이데올로기적인가? 나인가 너인가? 당신인가 우리인가?
물론 ‘호의의 원칙‘은 정언명령처럼 완고하지 않다. 상식에서 출발하는 이완훈련이다. 긴장을 풀고 귀를 쫑긋 세우며,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다. 다정은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가장 진실하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진실을 적어도 그 일부를 찾는 것이다. 아침에 (아직 잠이 덜깬) 당신에게 아이가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을 때도 ‘호의의 원칙‘이 필요하다. 다정은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멍청하건 똑똑하건, 선하건 악하건 끊임없이서로에게로 향하는 세상을 가정하는 일이다. - P-1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에게 자기성찰은 우주와 하나라는느낌을 재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당신이 보기에는 이런 생각이 우스울 수도 있다. 아직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다.
인생에서는 (거의) 모든 일이 가능하다. 부엌에서, 열차를 타고가면서, 우체국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자기성찰을 하다가 문득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쪽에서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라.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뜻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그 옛날 자신에게 던진 이 호소를 당신도 자발적으로, 비아냥대지않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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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을 주면 이 세상 최고의 레모네이드를 만든 사람이 이 책의 저자다. 힘겨운 어린 시절을 이렇게 드러내고 또 그걸 딛고 멋지게 살아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생의 의미란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아니라, 자기 자신이 뿌듯해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living a life you‘re proud of. - P-1

그러나 이제 정신과에 몸담은 지 17년이 지나면서 그 이상으로 깨달은 점이 있다. 각각의 사람이 바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서로 매우유사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이해하기 힘들 만큼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자녀를 여럿길러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를. 이렇게 형제자매 간에도성격과 호불호가 다른데, 심지어 남이면 어떠할까. 매우 다르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사람의 정서가 언어와 문화를 막론하고 다 유사하다는 앞의 말과 얼핏상반되게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진리라고 믿는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공통된 정서와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을 일으키는 자극의 종류나 크기, 그리고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는 개인차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타고난 성격과 과거의 경험이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쳐 형성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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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펼침 (주책공사 5주년 기념판)
이성갑 지음 / 라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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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그 마음을 조금씩 닮아가고 싶었다.

책은 결코 답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찾지 못할 겁니다. 답을 못 찾으니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왜 읽냐고요. 맞습니다.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책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죠.
책은 답을 주지 않지만, 길을 만들어줍니다. 그 길은 나 자신이 만들어야 하고 내가 걸어가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 만들어주지 않고 걷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 P-1

코끼리의 몸무게는 수컷은 6톤,
암컷은 3톤에 달합니다.
이 거대한 몸집을 코끼리는어떻게 지탱하는 걸까요?
비밀은 발바닥에 있습니다.
코끼리 발바닥은 거대한 젤리 같은지방 섬유 조직이라 말랑말랑합니다.
그 말랑함으로거대한 몸집을 지켜내는 겁니다.
책을 읽는 것은거대한 삶을 지탱하기 위한말랑함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끼리의 발바닥처럼요. - P-1

7. ‘마음‘이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를 뜻합니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헬라어로는 ‘카르디아(Kapola)‘, 영어로는 ‘하트(heart)‘인데, 모두 ‘중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은 곧 삶의 중심입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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