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만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일생에 단 한 번은 35미터에 달하는 신의 나무를 마주한 나무학자 왕잔의 처지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룡과 함께 살았다는, 화석으로만 남은, 하지만 우리 눈앞에서 기적처럼 살아 숨쉬는 그 나무.

곧 나는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다른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옛날에 충주호에서 부엉이 볼 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겠지?
사람들이 퇴근한 뒤 편집실에 혼자 앉아서 릴테이프를 이리저리돌려가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편집할 때 그게 어떤 기분인지 내가얘기한 적이 있었잖아. 밤이 늦도록 편집하다보면 어느 틈에 이야기의 내용은 더이상 들리지 않고 목소리의 톤과 빠르기가 들리지그런 목소리에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빛과 어둠, 열기와 서늘함, 고독과 슬픔마저도 들을 수있을 것만 같아.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이야기가아니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런 미세한 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아, 이 사람은 지금 고생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그 목소리만은 그 시절이 제일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있구나. 몇번이고 반복해서 듣다보면 그렇게 혼자 중얼거릴 때가 있어. 편집하면서 내가 제일 안타까웠던 순간은 목소리가 끊어질 때였어. 더말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말을 멈춰.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릴테이프는 혼자서 돌아가지. 침묵과 암흑, 내 귀에는 잡음만이 들려, 몇 번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내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일지도 몰라. 거기에 진실이 있을지도 몰라. 1초, 2초, 3초, 4초, 5초. 나는 목소리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면서 없어진 그 목소리의 감정을 읽어."

다시 체호프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이 ‘세계‘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무수한 ‘나‘들의 이야기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모두가 이야기들로 연결돼 있다고, 그래서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쪽 끝이 떨리는 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우리가 문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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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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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읽어보아야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의 눈은 멀다. 이 먼눈이라면 통영의봄길이든 눈 쌓인 혜산선의 길이든 지척인 것이고 백 년쯤 전에 태어났다는 이나이레쯤 전에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나 모두 반갑고 친하고 벅차고 가여운 것이다. 게다가 먼눈을 가진 이가 세상을 먼저 살다 간 다른 먼눈을 가진 이를 살피는 일이라니.
아무래도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 같다. 박준(시인)

그때에도 보름이면 이세상은 달빛으로 가득차지 않겠나? 달이야 거기 사람이 있든 없든 찼다가 이지러지는 그 자연의 법칙을 반복하겠지. 그런 무심한것이 자연이라는 것도 모르고 인간들은 거기에 정을 둔단 말이지.
마치 해와 달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야. 오호. 우리의 태양이시여, 영원한 달님이시여, 라고 찬양하면서, 하지만 해와 달은 그 누구의 인생도 구원하지 않아. 우리도 그런 자연을 닮아 노래는 들리는 대로 들으면 되고, 춤은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 거지, 좋으니 나쁘니 마음을 쏟았다 뺏었다 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해와 달의 이야기를 할 때, 상허의 얼굴에서 잠시나마 표정이사라졌다. 기행은 그 무표정이 반가웠다. 잘 모를 때는 그 무표정이 까끈한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여겼으나 상허가 조금 이상해지고 난 뒤부터는 그게 얼마나 인간적인 표정인지를 기행은 알게 됐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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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김연수 (무선 보급판) 디 에센셜 The essential 2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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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가 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좋았던 이야기와 구절들이 잊혀질 쯤 다시 또 읽고 새기고 싶다.

세상에서 첫번째로 신기한 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일. 이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길을 걸은 일. 사물이 두 개만 있어도 그 사이로 길이 생겨난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걸은길들은 모두 나무와 나무 사이라든가, 집과 집 사이, 혹은 사람과사람 사이이거나 능과 능 사이였다.
사이로 길이 난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들 중 하나가 호수 너머로 보이는 저녁 빛이다.
호수 옆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는다. 저녁을 먹고 호수까지 걸어가면 해는 이미 저문 뒤다. 어스름 속의 호수에서는 서쪽의 빛까지가 부속 시설이다. 여름의 빛은 끈덕지다.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잔영은 하지부터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날마다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에 서서 그들과 함께 어두워지며 올려다보는 저녁의 빛은 세상에 지친 마음을 교정해준다. 모든 것이 다 끝난 뒤에도 우리에게 남은 게 있음을 지켜보는 일. 이것이 저녁 산책의 기쁨이다. 애당초 기쁘게 살고 싶다. 는 아니었다. 아무리 번거롭고힘들더라도, 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오해를 한다 해도기쁘게 죽을 수 있도록 살고 싶다, 는 마음이 거기 있었다.
저녁이면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호수 둘레의 길을 오래오래 걷는다.

태풍은 잠시 잊어버리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가만히,걷는다』라는 책이었다. 프랑스 작가들의 산문이 모여 있었다.
‘파리의 오렌지는 나무 밑에 떨어진 것을 주워온 열매처럼 슬퍼보인다‘고 알퐁스도데는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나이가 든 뒤에도 산사나무꽃을 보면 그 꽃을 처음으로 봤던 나이와 심장을 되찾는다고 썼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여섯 살 때 혼자 남은 파리에서 만난 부랑자의 말을 옮겨놓았다.
원래는 그에게도 아내와 아이들과 좋은 차와 재산이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자기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눈에는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살다가는톱니바퀴 같은 것에 물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죽어가리라는 것도.

그는 종일 자신이 하는 일이 ‘사는 법‘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무는 걸 보는 일, 자기 손목에서 피가팔딱팔딱 뛰는 소리를 듣는 일, 산책하고 강을 보고 하늘을 볼 뿐.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일이다.
내게는 무엇이 사는 법‘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고 식당과 술집이 저녁 아홉시면 모두 문을 닫아야만 했을 때였다.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 나가본 적이 있다. 밤새도록 가게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던 광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불 꺼진 번화가는 이미 찾아온 미래처럼 내게 다가왔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어떤 삶을 원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자주, 더 많이 하는 삶, 돋보기로 모은 햇빛처럼 초점이 또렷한 삶이다. 누가 뭐라든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몰두하고 싶다. 뒤처지는 것 같겠지만 좋아하는 일은 얼마든지,
그러니까 하루종일 할 수 있으니까 사실은 제일 앞서가는 일이다.
내게는 독서와 글쓰기가 바로 그런 일. 나의 ‘사는 법‘이다.

자잘한 파도에도, 큰 파도에도 마음은 부서진다. 조금씩, 혹은 한꺼번에 많이 부서지는 마음을들여다보는 건 무서운 일이다.
물결이 물러나면 밀려온 경계가 서서히 지워지고 그 위로 새로운 물결이 밀려왔다. 매번 다른 파도였고, 새로운 모양의 경계가만들어졌다. 매일 아침 생겼다가 저녁이면 부서지는 어떤 마음들처럼. 그때의 나에게, 혹은 소설 속 할머니에게 그래도 괜찮다고말해주고 싶다. 그게 완벽한 삶이라고. 완벽한 인생이란 완벽하지 못한 것들, 못난 것들, 부서진 것들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삶이라고.
어떤 마음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생겨난 마음이 부서질 때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강릉 같은 곳에서 살아 매일 파도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도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사는 나는 바다 삼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도 파도는 있다. 그것은 날마다 달라지는 날씨다. 맑은 날이 하루라면 궂은 날도 하루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도 날이 바뀌면 고요해진다.
하루하루가 다른 날씨들이다. 나는 그 날씨들을 살펴보고 생각하고 공부한다. 모든 날씨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음이 있다는 것. 그러니 끝날 때까지는 그날의 날씨를 즐겨야만 한다는 것.
그게 내 날씨 공부의 전부다. 비가 내리면 당분간은 비가 내리는 대로, 햇살이 선명하면 당분간은 햇살이 선명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자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 나는 모르는 어떤 의미가있는 게 아닐까? 그걸 모르는 한에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게 아닐까? 나는 이백 년 뒤를 상상했다. 이백 년쯤 지나면 나도이 일을 이해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이해는 나중의 나에게 부탁하고, 일단 가보자.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한번 지켜보자.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뿐일 테니까.
그렇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래를 향해 문을 열었다.

나보코프는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이 좋을지 나쁜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다시 알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아는 것, 그게 이해다. 스물네 살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알게 됐다. 인생의 이야기는 먼저사람의 행동과 나중사람의 이해로 완성된다. 서로를 그려가는 두 개의 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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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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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용기내지 못해 소설 읽기를 미루고 있다.
나는 무엇으로 인생을 꽉 껴안아볼 수 있을까.
사람을 깊고 진하게 만날 수 있을까.

햇빛을 오래 바라 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표지에 나와 기뻤다.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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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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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맥락과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어』에 담긴 생각은 죽은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죽은 생각의 시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상사의 역설은 어떤 생각이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콘텍스트 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이다.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베이컨의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왜곡에도 불구하고· · · ·베이컨의 초상베이컨의 그림들은 대상을 닮아 있다.
화는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어디까지 왜곡해도 개인은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자신이 자신이기를 그치게 되는 경계는 어디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오더블유제이O.W.J.라는 필명의 평론가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자아의 경계가 어느 지점인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지표"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배우는 이는, "말에 들어있는 실마리를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제자들을 위해 공자는 어떻게 가르침을 베풀었나? 공자 교수법의 특징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는 "어기지 말라"(無)고 간단히 대답하고 끝낸다. 나중에 다른제자인 번지가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야비로소 비교적 자세히 부연해준다. 공자는 상대가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세 가지를 들어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이런 가르침 방식에 대해 물론 제자들은 답답해한다.
공자 역시 제자들이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있다. 공자는 말한다. "너희들은 내가 뭔가 숨긴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바가 없다. 행동하되 너희와 함께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나다."(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也.) 이 말이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의 차원에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말의 차원에서는, 숨기는 것이 있을수 있음을, 침묵의 차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언은 암묵적으로 제자들에게, 침묵의의미를 깨달으라고 촉구하는 셈이다. 행동에서는 숨김이없되 말에서는 숨김이 있을 수 있는 이, "이것이 나다."
丘也.

고전의 지혜가 살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고전 자체의 신비한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한 독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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