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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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때 마음을 다잡고 싶을 때 다시 읽어야 할 책!

이후로 우리는 아빠가 주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지지, 격려, 이해, 어느 한 단어로딱 떨어지게 표현할 수는 없는 어떤 것이었다. 오랜 고민과 의논 끝에 우리는 그것이 ‘편안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여러 가지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 것. 부담 없는 편안함.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 좋은 것, 훌륭하고 귀한 것을 해주는 것이 물질적 응원이라면 부담 없는 편안함은아이가 받은 것들을 가지고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할수 있도록 해주는 내면적 지원이다. 친구는 대학원 진학이라는 부담스러운 과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아버지에게서 "거 뭐 될 필요 없다"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편안해지고 용기를 얻었다. 많은 부모가 물질적 지원을아끼지 않으며 아이의 성공과 성취를 빌겠지만,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진짜 좋은 부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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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부쩍 ‘어떤 상대와 결혼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받는다. 최적화된 상대란 없다. 15년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이 세상엔 내 남자, 내여자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했다. 사람을 소유할 수도 없고,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꿀 수도 없고, 끊임없이 같은 깊이로 사랑할 수도 없다.
결혼이 인생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면서 기분 전환

이나 새로운 도전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결혼은 동화책처럼 "그들은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살았다"도 아니고 결혼 전 일상처럼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다. 결혼을 해도 둘다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도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에가까운 애정 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결혼에도 행복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결혼을 하면 보이지 않던여러 갈등 요소가 생기며 어두운 그림자의 부분을 끌어안을 인내심과 이해심이 중요해진다. 결혼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은 그 순간에는 진심이겠지만 배우자 포함 그 어떤 가까운 인간관계도 나의 인생을, 나의 행복을,
내가 외롭지 않음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고독은 스스로떠안고 처리해야만 할 것 같다.

‘태도 attitude‘란 ‘어떻게 how‘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삶의 태도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 태도들의 틀 안에서 개별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알기어려운 것이 나다. 이제부터 집중해 생각하자고 해서 바로생각을 길어 올릴 수도 없다. 그 생각은 자칫 당시 분위기에 휘둘린 감상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 그때의 청승맞은 여행도 그저 생각을 비우는 역할을했을 뿐이었고, 깊은 생각은 돌아온 후 새로운 일의 가능성을 손수 알아보려고 움직이면서 비로소 자극받아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의 밖을

둘러봐야 했던 것이다.
일단, 어쨌든, 움직여보는 것의 중요함을 통감했다. 게다가 생각하는 것에만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자칫 행동하지 않을, 움직이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만드는 데 생각이 더 쓰인다.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밖에 못하니까,
라며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나에겐 뭐가 있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생각이뻗어나가면 또 하나의 내가 나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다.
넌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 그게무난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보기도 전에 ‘아냐, 됐어. 나따위가 뭘‘이라며 부푼 마음을 누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나한테는 이것이 최선이야. 라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 자신에게 맞

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않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만 긋는 것과는 다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가장 확실한 리트머스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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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대화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다‘는 건 ‘그럼 이것만 하겠다‘와 전혀 다른 말이니까. 오히려 거꾸로 ‘난 이걸 할 거야‘라고 너무 강하게 집착하면 그게 더 무리해서 가능성을 좁히는 일이 돼버릴 수도있어.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저런장소에는 가지 않겠다‘ 등, 아무튼 내가 하고 싶지 않은것들, 안 할 것들을 사소하게라도 조금씩 테두리를 정리해가다보면, 의외로 좋은 것들이 결과적으로 내곁에 남게 되고, 나만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저절로 나 시에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 같아.
가끔 경우에 따라서는 ‘이건 하겠다‘나 ‘이건 안 하겠다‘를 넘어, ‘지금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겠다‘라는 선택지도 있어.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 지금은 이대로가만히 있겠다는 다짐도 어떤 상황에서는 대단한 의지와 중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더라. 특히 회사 같은 조직에 있다보면 비유를 하자면, 가끔 지진같은 상황이 벌어져서 사람들이 허둥지둥 난리가 나. 주변 눈치를 보는 이들, 아무개의 라인에서는 이들, 도망가는 이들 등등. 개중에는 그 소란에 초연해서, 담담히 그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애들이 실은 알짜란다. 이런 게 또 은근 내공이 있어야 가능하거든.

아무튼 요조야, 나는 가끔 네가 조금 덜 퍼주고, 더 못돼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의 그런개방성이나 차별하지 않는 평등주의적 태도가 너만의어떤 부드러운 결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
생각해보렴. 만약 요조가 자신이 가진 자원을얄짤없이 관리하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목소리는 결코지금의 그 나른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었을 거야.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헤퍼서 조금 더 손해보고 상처입는다 해도, 그래도 역시 ‘줄 수 있는‘ 사람, ‘주는 법을아는‘ 사람은 더없이 근사한 거 아닐까.

셋째, 강연 내용을 외울 때는 ‘시각적으로‘ 외워야 한다는 것. 강연에서 할 말을 보고 읽을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머릿속에 외워둬야 하잖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방법은 이래. 강연록을 A4용지로 출력해서 반으로 잘라. 그런 다음, 강연할 때 들고 볼 수 있는 A5사이즈 인덱스 카드에 붙여 그 인덱스 카드를 돌려보면서 외우는데, 이때 중요한 건 거기 쓰인 문장을 하나하나 달달 암기하는 게 아니라, 각 인덱스 카드를 ‘시각적‘으로 ‘통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거야. 내용보다 ‘전체 구성‘ 혹은 뼈대를 순서대로 눈에 익혀버린다고나 할까. 그다음 단계로 각 인덱스 카드의 소제목, 핵심 단어, 핵심 문장을 머릿속에 익혀.

얼마 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개념인데요. ‘점화효과‘라는게 있대요.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촉진현상을 나타내는 인지심리학 용어라고 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에게노출된 메시지들이 은연중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거예요.

뭐 이런 이야기인데요. ‘아니, 고작 단어 몇 개로 인간이 이렇게 홱홱 변한단 말이야? 인간이 그렇게 바보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실은 인간은 바보잖아요.
정말 바보가 맞아요. 그래서 단어 하나에도 인간은 영향을 받죠.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송, 우리가 듣는음악, 우리가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받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 점화효과라는 것은 지속력이 길지는 않아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자기 모습대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은연중에 우리 태도의 일부가 되겠죠.

사람들은 왜 타인의 생각이 나와 같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까. 상대의 ‘다름‘을 어째서 섣불리 ‘틀림‘으로 낙인찍는 걸까. 한데 요즘 같은 온라인 환경에선 우리는 너무나 많은 타인들을 너무나 가까이서 접하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것 같아. ‘톨레랑스‘ 즉 관용의 문제랄까. 나와타인 간에 생각의 차이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태도들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

는구나, 아, 그렇구나‘ 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대로 두는 태도.
2. 나와 다른 부분이 조금 불편해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3.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좀더 자세히알려줄래?‘라고 의견을 주고받거나 토론하는 것. 어느한쪽이 설득될 수도 있지만, 결론을 내린다거나 누가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건 아냐. 다만 서로의 관점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논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자각하게 되는 효과는 있겠지.
한편 나와 타인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때 결코 보여서는안 되는 태도는 이런 거야.
‘너의 생각은 틀렸어. 그러니까………’뒤에 이어지는 말은 이래.
‘너의 생각은 틀렸어. 그러니까 입다물어.‘
‘너의 생각은 틀렸어.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말해.‘
이건 분명히 폭력인데, 그 폭력성을 숨기기 위해 ‘정의‘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분을 빌려와서 휘두르는 부분이 가장 슬픈 것 같아

저는 지극히 경계하는 두 타입의 부류가 있어요하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에요. 언니가 말한 ‘다름‘을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극단적인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해요. 아무리 옳은 대의를 가지고있다고 해도, 아무리 정의로운 이론을 믿는 것이라 해도그것이 극단적이 될 때는 아주 위험해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극단적 태도가 세상을 아주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만 보게 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맞고 나랑 의견이다르면 너넨 다 적이야, 악이야, 이렇게 몰아가기 쉽고요.

저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참 좋아해요. 그리고그 말이 정말 어려운 말이라는 것도 알아가는 와중이에요. 늘 깨어서 세상을 바로 보고 옳은 편에 서야 하지만,
옳은 편에 서 있으면서도 깨어 있어야 해요. 옳은 편에 섰다고 안심하면서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편이라는 명분에 취해서옳지 않은 편에선 사람들보다 더 깜깜한 혐오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나자신을 의심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으면 괴로울 수는 있어. 하지만 그에 너무 상처받아서 자학하거나 공격하거나 징징대면 그건 프로의 자세가 아닌 것 같아. 적어도상대가 일리 있는 말을 하고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냈다면, 그것을 수용하고 문제를 바로잡고, 어서 털고 일어나 다시 또 걸어나가야지. 남탓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오로지 일이 잘되게끔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거지. 언제기회가 닿으면 일본드라마 <중쇄를찍자!>를 한번 봐봐.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돈해야겠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해주는지, 어떤 사람들을 가까이에 둘지, 대충 이맘때면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봐. 인생살이의 기본 방향성에 대한 방황은 더이상 질질 끌지 말고 아무리 늦어도30대에선 끝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심플하게 추린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지나치게 고집하느라시야가 좁아지는 건 조심해야할 것 같아. 예를 들자면
"아, 난 이런 타입과 안 맞아"라며 바로 사람을 판단하고배제해버리거나, 나한테 어울린다고 믿는 옷스타일이나헤어스타일만 고수한다거나(이 대목에서 왜 나 찔리지?).
40대가 되어 자신의 핵심 가치를 추리면 그것을 단단한베이스로 두고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를 모색해볼 수도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돼. 사소하게는 평소 안 가본장소에도 가보고, 안 입어본 색깔의 옷도 입어보고・・・・・

저는 정말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거든요. 매 순간 저는 주변의 환경에 휘둘리기만 해요. 세상은 무의미하다는 소설을 읽으면 저도덩달아 삶은 무의미하다고 믿다가도, 감동적인 영화를보고 나면 삶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의미를 감각하게돼요. 어제는 좋았던 사람이 오늘은 갑자기 미워지기도하고요, 어제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던 의견을 오늘은 갑자기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이렇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다보면 어떤 순간, 사람들이 저에게 ‘요조답다‘
‘신수진답다‘라고 말해요. 그럼 저는 언제나 기가 차서반문해요 나다운 게 대체 뭐냐고 나답다라고 말할 수있을 만한 어떤 태도가 나로부터 반복되고 있는 거냐고오늘날까지도 제 고민의 모이가 제가 마시는 맥주의

안주가 ‘나다운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지만, 여전히오리무중이에요. 다만 제가 겨우 아는 것은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 그저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나의 누적된 선택들이 나를 더욱 나로서 만들어준다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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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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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사는 멋진 사람들
일상에서의 작은 배려가 깃든 에피소드들을 읽으니
내 마음도 천천히 데워지는 기분

차올라 찰랑찰랑하던 여러 이유들에 마지막 한 방울이보태진 것뿐일거예요. 다만 여태 내가 쾌적하게 운동할수 있었던 환경에는 타인의 선의를 믿는 신뢰가 크게 작용하고 있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죠. 그리고 내가 수영을 그만둬도 당연히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점도요.
그건 요즘 제가 다른 운동에 빠져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마음먹으면 언제든 수영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거예요. 좀 쉬고 돌아가면 신경쓰이던 것들은 잊어버린 채 다시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잠시 멈춘 것도 결국은 수영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라고요. 좀 이상한 말이지만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언제든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북토크에서 그런 질문을 받아요. "작가님은 갓생을 살고 계신데 그러기 위해 어떻게 루틴을 유지하시냐"고 말이죠. 저는 그리 부지런하지도 못한 사람일 뿐이고 대체로 스스로에게 너그러우며 불규칙적으로 생활한다고 답합니다. 멀리 떨어진 타인의 일상이기에 매끄럽고일관되며 균형이 잘 잡힌 것처럼 보이는 착시일 뿐이라고요. 마치 다른 사람들 눈에 혼비씨는 회사 다니면서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글을 쓰는 듯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균형을 잡기 위해 기우뚱대는 과정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잖아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워야 하듯 일상의 항상성을 지키려면 계속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일-일-일-일이 아니라 일-쉼-일-놂이 될 때야 비로소 그런 변화의 리듬이 만들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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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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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온 신간을 제일 먼저 읽는 기분은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기분
행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이슬아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서 최근에 책 몇 편을 읽었는데 신간이 나와 또 집어들게 되었다.
늘 그랬듯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글이다. 점점 그 범위가 확장 되는 듯 하다. 여러 일들에 과감히 도전하고 해내는 그녀가 멋지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면 아랫배에 묵직하게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보며 잘 살아보자고. 힘 내자고.

친구들은 최근에 본 시상식에 대해 수다 떨고 있다. 노래하는 여자가 김태리의 수상 소감을 회상한다.
"그렇게 큰 자리에서 진짜 자기 말투로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어. 그래도 되는 줄 몰랐는데."
친구들은 맞장구치며 김태리의 수상 소감을 성대모사한다. 절제되지 않은 흥분과 벅참과 우악스러운 몸짓을 흉내 내며 좋아한다.
"무대에서 자기 자신처럼 굴어도 된다고 믿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까?" 번역하는 여자의 질문이다. 나에

게나 남에게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나다움,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는 그 자기다움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지 다들 안다. 무대가 주는압력은 굉장하니까. 그 압력에 진땀을 흘리면서도 나 아닌것은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버티는 사람을 보면 왠지 마음이 좋아진다.

부담과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 속에서 그들은 훈련한다.
하루는 훈련을 마친 두 선수가 로커룸에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장면은 아주 짧게 슥 지나갈 뿐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는 할 수 없다. 타자인 저스티스가 일루수인 해티버그에게 묻는다.
"뭐가 제일 겁나?(What‘s your biggest fear?)"
"공이 내 쪽으로 오는 거.(The baseball being hit in mygeneral direction.)"
저스티스가 피식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해티버그의포지션은 일루수다. 야구에서 공을 가장 많이 받고 잘 다루어야만 하는 일루수가 공이 자기한테 올 때 가장 무섭다고 대답한 것이다. 저스티스는 장난치지 말고 진짜로 말해보라고 재차 묻는다. 그러나 해티버그가 웃음기 없이 못 박는다.
" 농담 아니야. 진짜야.(No, seriously, that is.)"
그리고 이어지는 정희진 선생님의 목소리.
"제가 이 장면에서 엄청 울었어요. (…) 그러니까 이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이 감당이 안 된다는 얘기잖아요."
그러자 별안간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느라 신호가 바뀐 줄도 몰랐다. 뒤차가 클랙슨을 빵 울렸다. 슬퍼도 도로에 멈춰 있으면 안 된다.

에 멈춰 있으면 안 된다. 나는 운전대를 꼭 붙든 채로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며 다시 차를 몰았다.
"직업이든 공부든 생계든 해야만 하는 일이 있잖아요.
회피할 수 없는 일, 회피하면 모든 게 무너지는 그런 일이누구한테나 있어요. 일루수한테 공은 그런 거죠. 그런데 그일이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잘 써야만 하는데 자신이 없는 원고를 마주할 때면 서툰 수영 실력으로 파도에 담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놀랐다. 이 사람도 무서워한다는 것에 잘해야만 하는 소중한 일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에 선생님에게도 글쓰기가 그런 공이라는 사실이 무지막지한 위안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안을 하나 드립니다. 약간 느슨한 협회를 만드는 거예요. 삶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런 모임을 만들어서 각자 상황을 얘기해보면 어떨까. (…) 세상의 모든일루수한테 마음을 조금 보내주는 거죠. 마음을 조금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 사람이 처한 상항을 서로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인생을 감당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 보면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일루수다.

"요즘 ‘유래’라는 말을 계속 곱씹고 있어요. 예를 들어제 아이들인 예지와 예서의 유래는 당연히 진형과 순일이라생각해왔는데요. 오히려 저의 유래야말로 예지와 예서가아닐까, 저의 유래는 제 아내인 순일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이런 세상 살아 무엇 하나 하는 사춘기적 우울을 여태 앓고있는 저에게, 삶의 지속가능성은 예지와 예서 그리고 순일로부터 유래하거든요.
유래는 존재의 기원일 텐데요. 제가 순남씨를 알게 된건 슬아 작가님 덕분이므로 적어도 저의 세계에서 순남씨는 슬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죠. 고양이 탐이도 작가님으로부터 유래하고요. 여성의 계보도 그렇습니다. 작가님이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잊힌 여자의 계보가 복원되죠. 우리는분명 누군가로부터 유래한 사람들인데요. 그가 저를 낳은사람일수도 있겠으나 저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일 수도있겠어요."
그러자 이 책이 끝나도 끝나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삶이 끝났어도 나를 통해 선생님의 마음속에살아있듯이, 책이 내 손을 떠난 후에도 누군가에게는 이제막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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