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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랜지션, 베이비
토리 피터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5년 4월
평점 :
미래 세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인권을 알게 하는 혁명적인 소설이다.
트랜스 여성인 리즈와 트랜스 여성에서 다시 환원한 에임스, 그리고 시스젠더인 카트리나, 세 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사랑과 행복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리즈는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트랜스 여성이다. 리즈와 탈리아 등 그녀의 친구들은 세상의 편견 속에서 용기있게 여성으로서의 당당한 삶을 산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용감하고 솔직하다. 자신의 행복의 조건을 알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추구하면서 따뜻한 감성과 유머를 숨기지 않는다.
에이미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본능적 욕구를 위해 스탠리와 바람을 피우는 리즈. 에이미가 위치 추적 앱을 통해 리즈를 뒤쫓아 왔을 때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듯 에이미를 대하는 장면에서는 아이러니하게 유머가 느껴졌다. 바로 그 장면이, 에이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스탠리를 때리고, 스탠리에게 맞아서 성형한 코가 부러지고, 결국은 쓰러져 흐느껴 우는 그 상황이, 에이미를 다시 에임스로 환원하게 하는 결정적인 문제의 장면이었음에도.
에임스는 어릴 때부터 여자들 속에서 편함을 느끼며 자신 속의 여성성을 서서히 깨달아 결국은 트랜스 여성이 된다. IT개발자로서 꽤 안정적인 백인 트랜스 여성인 에임스는 리즈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위의 스탠리 사건으로 인해 다시 남자로 환원하고, 직장 상사인 카트리나를 임신시키게 된다. 카트리나의 임신을 알고 결국 리즈와 카트리나, 자신 셋이서 함께 아기를 키우게 되는 파격적 제안을 하는 에임스.
카트리나는 아시아인 피가 섞인 혼혈 여성이기에 어찌 보면 또 다른 의미의 소수자이다. 이혼과 유산의 경험을 통해 아픔과 상처를 딛고도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로서 유능한 업무 능력을 발휘한다. 그녀는 에임스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새로운 가정의 희망을 꿈꾸다가, 에임스가 트랜스 여성이었다가 다시 환원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리즈와 함께 셋이서 아기를 키우자는 그의 제안에 처음엔 몹시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책의 중반, 리즈와 카트리나가 동지애를 느끼며 누구보다 강한 친밀감으로 동화되어 함께 아기 용품을 고르고 다니는 장면에서는 미국 사람들의 유연한 생각의 전환이 참으로 부러웠다. 오히려 에임스가 소외될 정도로 친밀하게 서로 연대를 느끼는 리즈와 카트리나. 과연 우리나라에선 이런 정신적 연대가 가능할지.
이 책에서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하고, 가장 애정이 갔던 인물은 카트리나의 엄마다. 카트리나는 엄마로부터 "아기는 엄마들이 많을 수록 더 잘 크게 된다"는 조언을 듣고, 마음을 돌려 리즈를 받아들이고 트랜스 여성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카트리나의 엄마처럼, 편견 없이 바다와 같은 삶의 지혜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멘토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리즈와 에임스, 카트리나의 한 가족 되기 프로젝트에 위기가 온 것은 카트리나의 친구 남편이 리즈와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는 것을 카트리가 알게 되면서이다. 에이즈에 대한 걱정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돌출되면서 카트리나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이어서 리즈가 바다에 빠진 것을 자살 시도로 오해한 카트리나와 에임스.(사실 리즈는 유쾌하고 낙천적인 인물이라 절대 자살같은 걸 시도하지는 않는다.)
책의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카트리나가 임신 중단을 선언하고 리즈와 에임스와 함께 모였을 때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호하게 마무리한 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주위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이 세상에는 다양하고 많은 개인들이 존재한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정상과 비정상이란 구분선을 짓고, 편견에 사로잡힌 거대한 폭력적 시선으로 이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이웃들을 힘들게 한다.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1층에는 트랜스 남성과 시스 남성이 살고, 2층에는 레즈비언 부부가 산다. 1층 시스 남성에게 정자를 받은 2층 여자들이 모두 아이를 가지고 각각 아들과 딸을 낳는다. 아이들이 크면서 두 명의 아빠들과 두 명의 엄마들과 한 집에서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습. 우리나라에서 이런 가족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날은 언제일까. 이런 가족에 대한 희망이 어째서 불가능하고 조롱받아야 하는 것인지, 이 책은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르면서 소중하듯, 누구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망을 등급 매기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리즈와 스탠리의 관계, 에임스와 리즈의 관계, 그리고 카트리나의 삶을 들여다 보며 인간이 저마다 다양한 피부처럼 갖는 욕망의 모습들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그러한 체험은 또한 우리의 인식을 더 확장시키며 더 관용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이 책을 많은 독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 사회는 더 많은 다양성으로 더 많은 따뜻함과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헐뜯고 비방하며 벽을 세우기 바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문학이야말로 사람들의 인식을 확장시키며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게 하는 최상의 도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요즘 현대인이,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어떤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제발 정책을 정하고 펼치는 고위 공직자들, 특히 정치인들이 꼭 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이 어서 도입되어 한 발 더 나아간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