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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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으로도 여름 휴가와 힐링이 떠오른다. 일과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 방에 날리는 제목이다. 실제로 저자(난 그를 전혀 몰랐지만 엄청나게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아티스트로서 '타임'지나 '포브스'에도 이름이 언급되었다고 한다.)는 쏟아지는 엄청난 일들 속에서 번아웃을 느끼고 잠시 쉬어가는 일상의 휴식 속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 속에 바다와 파도와 서핑 이야기는 없다. 대신 식물 기르기와 새 이야기,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와 부모님과 동생, 떠나온 집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이, 작은 파문이 아주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마이너스 2.5 배속으로 천천히 담겨져 있다. 그걸 같이 따라가며 읽고 느끼는 독자들의 가슴에도 이런 반가움과 안도감이 퍼진다. '이건 내 이야기네. 나도 바로 어제 이런 느낌을 가진 적 있는데.'

중국계 캐나다인인 저자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건, 사람이 가장 외롭고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부모님의 단골 식당에서 주인겸 주방장과 그의 가족이 나누던 대화들을 그리워한다. 그 모든 추억에는 '천천히'가 새겨져 있었다. 여전히 어른이 된 자신에게 스크램블 만들기나 차예단 만들기 등을 신나게 알려주시는 부모님, 자신이 버리고 간 식물을 잘 키워주신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사람은 과거의 따뜻한 추억을 딛고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또 자신이 전에 살았던 집이 지금은 낯선 주인을 만나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잠깐이라도 들어가보지 못한 일이나, 누군가와의 대화가 어려워 미리 대화의 각본을 준비해 가며, 실제 대화에서 준비 못한 전혀 엉뚱한 화제가 나오면 서둘러 대화를 끝내버린다는 소심함에 대한 고백은 인상 깊다. 그렇게 대화를 접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 이렇게 말할 걸'하고 후회하는 모습은 사실 숱한 내향적 현대인들의 평범한 일상이기에.

저자가 슬픔을 '새'로 표현한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창가에 앉은 통통하고 귀여운 새의 일러스트를 꼭 만나보기를!) 행복이 언젠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면 항상 슬프지만, 슬픔도 역시 떠난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며, 요즘은 슬픔을 가지에 잠깐 내려앉은 새처럼 반기려 노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슬픔은 반드시 떠나기 마련이며, 떠나기 위해선 먼저 찾아오는 게 당연한 거라는 진리.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 보편적 진리를 문장으로 담담히 표현하기까지 저자는, 얼마나 가슴에 떠다니는 어지러운 감정의 부유물들을 체에 거르고 걸러 고요한 바닥에 알맹이만 남도록 애써야 했을까. 내면에 떠도는 어지러운 감정들에 현기증을 느끼는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행복은 '일시적'이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만약 영원한 것이라면 특별한 이름이 붙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기쁨이 잠깐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보나 마나 사라질 감정을 굳이 자축하지 말라고 자책하는 대신, 자축할 수 있을 때 자축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사리지기 전에. 이번에도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러니 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는 게 어떨까.(235p)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금방 사라질 감정이다. 오래가지 않을 감정이니, 행복해하는 건 기운낭비다'고 생각했던 저자가 뒤늦게 깨달은 위의 고백은 당연한 얘기처럼 보일지라도 불안을 달고 사는 주위의 청년들이 꼭 알아야만 하는 문장이다.

행복의 질량이나 부피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행복이란 아주 깃털만한 것이라도, 이 순간에 내 가슴에 찾아왔다는 그 자체만으로 중요한 거라고 알려주고 싶다. 정체모를 불안과 꽁꽁 숨겨두고 싶은 열등감, 외로움에 빠져 있는 청년들에게. (저자인 조니 선이 그랬던 것처럼) 실패의 인정, 꿈을 이루지 못할 거라는 수긍, 매사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끊임없이 작고 소소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숨결 등이 얼마나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인지를 느껴보도록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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