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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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지켜보고 돌보는 아들의 글이다.

저자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는 해마와 변연계 어디쯤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새로운 저장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고 성격도 감정도 표현도 달라졌다.


이 책은 돌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노화와 알츠하이머 과정을 함께 한 아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책 속에서 아버지는 사람을 다르게 알아보았으며, 주변을 배회했으며, 과거의 기억을 오늘의 일로 생각했다. 자신의 질병을 인식하는 '병식' 또한 없었다.


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다른 사람을 어렵게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떤 맥락에 놓이게 되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질병 당사자를 위하는 온전한 방법이나 돌보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온전히 합당한 방법은 없어서 시설, 연명의료, 돌봄 사이를 가족들은 오고 갔다. 누가 돌볼지, 어떻게 돌볼지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이었다.


질병이 생겨서 뇌를 포함한 몸이 전과 달라졌거나 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 몸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데, 그 사람 같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고 받아들인 '그 사람'에는 특정한 몸 이미지가 있었던 걸까? '온전한' 정신, '멀쩡한' 팔과 다리, '제대로 된' 보행 방식을 포함했던 걸까? 이쯤에서 어빙 고프만의 스티그마가 생각났다. 물리적인 혹은 신체적인 차이 보다 더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 상징적인 차이의 체계를 스티그마로 나는 이해한다. 치매라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다면 '사람 답게' 살지 않는 것일까? 살 가치가 없는 것일까? 애초에 걷지 못해 침대에서만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맥락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치매가 죽어야 할 이유라기 보다는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웹 사이트에서 영어 원제를 검색하다가 아마존에 쓰인 리뷰 제목을 봤다. '슬프고 가슴 아프다'고 했다. 동감한다. 나는 읽으면서 최현숙의 《작별 일기》를 떠올렸다. 작별 일기도 슬프고 가슴 아픈데, 이 책처럼 부모의 죽음에 더해 그 죽음에 놓인 돈, 형제들, 유산, 돌보는 일등 구체적인 맥락이 곳곳에 놓여 있어서 이 구체성이 매우 와닿았다.


이 책의 원제는 《우리 아빠의 뇌 - 알츠하이머의 그늘 안에서 사는 삶》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뇌 이야기도 하기 때문에 본문과 어긋나는 제목은 아니나 한글 번역본 제목인 《내가 알던 사람》이 더 직관적이긴 하다. 내가 알던 사람과 내가 알게 된 이 사람이 다를 때, 그리고 그 사람 자체가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붕괴되고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책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내 죽음 방식을 생각했고 내 죽음을 예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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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낯선 길에서 - 다운증후군 아이와 엄마의 아름다운 성장기
제니퍼 그라프 그론버그 지음, 강현주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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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다 못해 사무치는 글. 다운증후군이 있는(‘앓는‘ 거 아님) 아들을 낳고 기르고 돌보는 엄마의 글이다. 왜 임신을 결정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달라진 삶과 관계를 회한을 갖기도 한다. 무조건 아이를 긍정하거나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지 만은 않아서 오히려 사려 깊고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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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이야기하기 - 육체, 질병, 윤리 카이로스총서 105
아서 프랭크 지음, 최은경 외 옮김 / 갈무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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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환자로 남기보다는 질병을 말하기로 결정한 스토리텔러. 이 스토리텔러들의 이야기는 통제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사람들을 이끌기보다는 가능한 세계의 각본을 보여줍니다. 왜 말하게 되었고 말 듣게 되었는지를, 어떻게 말하고 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값진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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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 어느 시골 의사와 환자 이야기
폴리 몰랜드 지음, 이다희 옮김, 리처드 베이커 사진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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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은 의료 대란의 조짐이 보인다.

전공의 없이 맞이하는 추석 연휴는 어떻게 될까.

의료인의 의료윤리와 경제적 욕망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시기에

영국의 한 골짜기에서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는 일반의(GP)를 조망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분명한 레퍼런스가 있다. 역시 영국의 작가 존 버거의 《행운아》다. 존 버거가 쓰고 장 모르가 찍은 사진이 있는 책이다. 책장 뒤편에 쓰러져 있는 《행운아》를 발견한 일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렇게 발견한 책을 훑어보는 데 배경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책에는 '존 사샬'로 불리는 일반의가 마을 사람들을 진료한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활동하는 '후임' 의사를 찾아보고 연락하고 관찰을 시작한다.


의사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의사'다. 의사의 성별은 여성이다. 존 버거의 《행운아》의 영어본 제목이 《Fortunate Man》인데 그래서《이야기는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는다》의 영어본 제목은 《Fortunate Woman》이다. 존 버거 책의 제목이 '행운아' 혹은 '행운남'이라면 이 책은 '행운녀'에 가깝다. 나는 Fortunate가 아니라 Lucky일까 생각했는데 Fortunate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의사'는 다양한 사람을 오래, 깊게 아는 행운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 앎이라는 자산(fortune)을 가진 사람이면서 그런 운명(역시 fortune)을 받아들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사를 관찰한다. 의사가 만난 사람, 의사가 하는 진료, 의사가 사는 방식. 골짜기 마을과 자연과 사람들과 얽혀있는 의사의 삶은 의사를 직업 아니라 배역처럼 보이게 했다. 의사는 20년 넘게 한 지역에서 일반의로 일하며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배경과 역사를 알면서 진료했다. 그래서 다른 진료가 가능했다. 당연히 새벽에 찾아오거나 길에서 마주쳐 의료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적인 노동관으로는 혹은 경제관으로는 '민폐'거나 '부불노동'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의사가 자신과 얽히는 모든 이야기들 역시 자신의 일이자 혹은 자신의 관계 맺음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알아서 더 정확하고 필요한 처치를 할 수 있었다. 의사들이 낙도에서 일하면 수억짜리 연봉을 준다는 자리를 마다한다는 기사에 나는 납득했다. 24시간 근무라고 할 수 있는 온콜은 상상도 괴롭다. 그래서 나는 수입 보다 관계의 질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사실상 마지막 세대의 의사를 관찰하는 글로 이 책을 읽었다. 의료 수가 문제와 전공의 복귀 기사들에서 공권력도 어찌할 수 없는 합리적인 플레이어인 의사들이 보였다. '비합리적인' 일반의와 합리적인 의사들. 나는 어느 쪽이 옳다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관계의 축소가 유일한 안전법이라는 사실을 느낄 뿐이다. 의료인들은 소송 이슈를 두려워하고 실제로 소송을 당한다. 그들이 전문직이고 고소득자지만 일상을 침해받기 보다 관계를 축소하는 일을 합리적으로 보는 이유다.


그래서 마음 품이 넉넉한 의사가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또는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의사 몫 이상을 할 수 없었던 모습 같은 다채로운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휴머니즘이라고 해야 할까.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본 '의사'는 마을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았다. 이사가고 이사오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전세대란으로 드나듬이 잦은 곳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정주하는 마을이라 가능한 이야기기도 하다. 


영국 언론에서는 GP를 만나려면 오래 대기해야 한다고 한다. NHS 데이터가 그렇단다. 20명 중 한 명은 최대 4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 기사 제목은 말한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말을 수긍해야 할까?(영국 GP는 무료다.) 사실 얽혀있는 관계에서 사람을 아는 일은 경제적으로 이득인 일은 아니다. 질적 측면을 안다는 기쁨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데이터화할 수 없는 몸에 새겨지는 일이다. 그런 기쁨을 강제할 수도 강요할 수도 없는 팬데믹 이후 의료 현실에서 이 책의 관계 맺음을 흘러간 옛이야기로만 이해하며 휴머니즘에 젖으면 되는 일일까? 나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울퉁불퉁한 관계 맺음을 생각했다. 기쁠때도 슬플때도 아플때도 있지만 관계 안에 있어서 가능한 감정들을 배우는 일이 나는 좋았는데 의료인들에게 바라긴 미안한 노릇이다. 물론 3분 진료와 비급여 치료 권유는 머리로만 납득한다. 어쨌든 이 책은 관계를 삶의 키워드로 생각하는 일반의 이야기지만 나는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맺음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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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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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사랑하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보다 어렵지 싶었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을 말하는 일에 서툴렀고 그래서 잘 표현하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았다는 건 나의 생각이고 어떤 방식으로는 드러났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 드러남들이 모래처럼 깔려있다.


《나주에 대하여》를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저자는 참 사랑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사랑은 당연히 이성애나 동성애를 넘어서는 혹은 넘어설 의도가 없는 관계의 마음들을 성기게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쉽게 포기하고 단념하는지. 김화진은 소설로 그 사랑을 표현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경》속 아름, 민아, 해든의 삼각형 꼴 관계는 어쩌면 지독한 선해나 낙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들을 품고 상상하는 저자의 마음도 상상하게 했다.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래가 아니라 이런 내가 하는 사랑. 해주는 사랑이 아니라 하고 할 수 있고 하게 되어서 변화하는 꼴의 사랑. 넷도 둘도 아닌 셋의 삼각형 꼴인 각진 마음들이 잘 보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나는 저자의 글 속 인물들처럼 순간들과 말들. 겉표지 뒷면(표4) 카피인 '세상에는 나에게만 놀랍고 소중한 작은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에서 '소중한 작은 것'들에 눈이 갔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줄 텐데 그 사람의 인생, 성격, 아픔, 슬픔, 기쁨이 말 한마디나 하지 않는 행동에, 말에 대한 흔하지 않은 반응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랬다. 


 이런 거 저런 거 떠나도 사실 내 동년배에 가까운 30대 초반 비장애인(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시시콜콜하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내게 너무도 '동시대적'이라 내 이야기로 읽기도 했다. 《나주에 대하여》에서 '아노락'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반가웠다. 아노락을 입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쇼핑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랬다.《동경》속 세일러 문,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도 반가웠다. 이것들이 '장치'인지 익숙해서 나온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체감하기 어려웠던 중견 저자들이 쓰는 팝송 이야기나 경험 이야기 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천선란 소설가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체감을 했다. 요는 동년배에 가까운 저자들의 글에 더 끌린다는 말이다.


 사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순간을 붙드는 혹은 붙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진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붙들린다는 표현이 나는 좋은데 이 책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에서도 보았을 때 계속 어딘가로 되돌아가는 타입 랩스 영화나 드라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경》속 이야기는 과거가 될까? 과거일까? 최은영 소설가의 단편들을 볼 때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에 공감했기에 삼각형이 잘 굴러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이야기가 삼각형의 경주를 찍은 사진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를 붙드는 관계들, 경험들이 과거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그 추억으로 겨울을 보냈다'는 감상적인 표현도 틀린말이 아니라서 동경하는 마음과 동경받는 사람의 마음에서 내가 붙들고 싶은 마음들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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