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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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사랑하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하는 일은 어렵다는 말보다 어렵지 싶었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을 말하는 일에 서툴렀고 그래서 잘 표현하지 않았다. 표현하지 않았다는 건 나의 생각이고 어떤 방식으로는 드러났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 드러남들이 모래처럼 깔려있다.


《나주에 대하여》를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저자는 참 사랑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사랑은 당연히 이성애나 동성애를 넘어서는 혹은 넘어설 의도가 없는 관계의 마음들을 성기게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쉽게 포기하고 단념하는지. 김화진은 소설로 그 사랑을 표현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동경》속 아름, 민아, 해든의 삼각형 꼴 관계는 어쩌면 지독한 선해나 낙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들을 품고 상상하는 저자의 마음도 상상하게 했다.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래가 아니라 이런 내가 하는 사랑. 해주는 사랑이 아니라 하고 할 수 있고 하게 되어서 변화하는 꼴의 사랑. 넷도 둘도 아닌 셋의 삼각형 꼴인 각진 마음들이 잘 보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나는 저자의 글 속 인물들처럼 순간들과 말들. 겉표지 뒷면(표4) 카피인 '세상에는 나에게만 놀랍고 소중한 작은 것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에서 '소중한 작은 것'들에 눈이 갔다. 말과 행동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줄 텐데 그 사람의 인생, 성격, 아픔, 슬픔, 기쁨이 말 한마디나 하지 않는 행동에, 말에 대한 흔하지 않은 반응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랬다. 


 이런 거 저런 거 떠나도 사실 내 동년배에 가까운 30대 초반 비장애인(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시시콜콜하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내게 너무도 '동시대적'이라 내 이야기로 읽기도 했다. 《나주에 대하여》에서 '아노락'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반가웠다. 아노락을 입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쇼핑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그랬다.《동경》속 세일러 문, 웨딩피치, 천사소녀 네티도 반가웠다. 이것들이 '장치'인지 익숙해서 나온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체감하기 어려웠던 중견 저자들이 쓰는 팝송 이야기나 경험 이야기 보다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천선란 소설가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체감을 했다. 요는 동년배에 가까운 저자들의 글에 더 끌린다는 말이다.


 사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순간을 붙드는 혹은 붙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진 이야기에 있기 때문이다. 붙들린다는 표현이 나는 좋은데 이 책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에서도 보았을 때 계속 어딘가로 되돌아가는 타입 랩스 영화나 드라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경》속 이야기는 과거가 될까? 과거일까? 최은영 소설가의 단편들을 볼 때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에 공감했기에 삼각형이 잘 굴러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이야기가 삼각형의 경주를 찍은 사진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를 붙드는 관계들, 경험들이 과거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지 않을까? '그 추억으로 겨울을 보냈다'는 감상적인 표현도 틀린말이 아니라서 동경하는 마음과 동경받는 사람의 마음에서 내가 붙들고 싶은 마음들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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