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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 모성, 글쓰기, 그리고 다른 방식의 사랑 이야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4년 12월
평점 :
저자는 딸을 낳았다. 그리고 이혼했다. 이른바 '싱글맘'이다. 이 책은 싱글맘을 통과하는 버전의 자신의 시선으로 쓴 책이다. 버전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저자에게 가능한 버전은 여럿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예술은, 특히나 시각화하는 예술에는 관찰과 표현이 중요하다고 한다. 둘은 다른 게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한 레슬리 제이미슨은 압도적인 관찰력과 섬세한 표현력을 가진 저자다. 이 책에서도 그 능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나는 레슬리 제이미슨의 책을 전부 읽었는데, 번역을 뚫고 나오는(어떤 번역본은 번역이 부정확해 보였지만) 관찰과 표현에 매료되었었다.
모성 이야기라고 하면 역시 엄마 되기의 약자성, 소수자성을 부각하는 서사가 가능하지 싶지만 역시 그런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제이미슨은 계속 갈팡질팡한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좋은 엄마가 아닌 방식의 욕망했다. 아기가 아빠에게 간 날을 기다렸으면서도 아기가 없으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데이트도 하고 데이팅 앱도 썼다. 어렸을 때,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부재하는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과 흥미와 상관없이 늘 곁에 있던 엄마의 차이를 생각했다.
나는 늘 관계는 실시간 스포츠 경기 혹은 주식 시장 같다고 느꼈다. 누구도 예단할 수도, 예단대로 되지도 않는 블랙 스완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머리속에서 상상한 시나리오는 초장에 폐기되고 어느덧 나는 최악의 결과를 내거나 최악의 인간이 되고는 한다. 제이미슨 역시 관계라는 덫에서 고민했고 글을 썼다.
저자가 드물게 솔직하다거나 자신을 잘 관찰했다고 할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도 작가의 욕망이다. 최악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라는, 혹은 최악이라고 그려놓았지만 사실은 깎아 정제한 못생긴 돌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작가의 일로 보였다.
제목이 제일 재미있었던 영화인 〈사랑할 때는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떠올랐다. 최악인 사람도 나고 그걸 보여주는 사람도 나라면 정말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믿기는 어렵다. 엄마가 아이 바깥 욕망을, 혹은 아기가 있음에도 갖는 욕망이 최악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고 배신하며 최악의 인간이 된다는 뜻에서 저자도 최악의 면모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책의 본 제목은 splinter다. 가시라는 뜻인데 본문에 대여섯 번 정도 등장한다.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왔던 가시. 그래서 났던 상처. 상처 이후 내 피부는 다른 피부가 된다. 그래서 내 것인 가시. 생선가시, 나무가시가 아니라 내 몸을 찔렀던 그 가시. 아기도 전 남편도 새 남자친구도 다 가시였다. 왜냐하면 내가 달라졌기 때문에. 침범하는 가시가 내가 생각하는 관계인데 제이미슨도 비슷하게 보는 듯 했다. 안전할 수 없는 삶에서 나는 가시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시도해야 한다고 오래 생각했다. 그게 글 쓰기고 살기고 생각하기지 싶었다. 제이미슨이 펼쳐놓는 화려한 문장들도 결국 관계를 오래 계속 생각하는 사람의 문장이었다. 그래서 동료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