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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하다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10월
평점 :
뉴요커는 이민 이후의 생존 경험을 통해, 주변 사람의 부러운 시선이나 허울 좋은 체면치레 같은 것은 생존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진정한 자유와 존재감은 경제적 자립에서만 온다. 이것이 뉴요커의 행복 공식이다.
p. 021
살인적인 뉴욕의 물가.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적인 집값.
아무리 집값의 70-80%를 대출 받을 수 있다해도 뉴욕에서 살 일이 평생 가야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조승연 작가의 뉴욕과 뉴요커에 관한 에세이는 내게 더욱 아련하면서도 간절하게 다가온다.
아주 어린 나이에 집 앞에 가판대를 두고 레모네이드를 파는 아이.
그리고 스카우트 활동의 일환으로 쿠키를 파는 아이들.
이런 모습을 외화로 접하고 다소 생소하면서도 신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민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보면 납득이 간다.
청교도적인 절제와 실용주의적 생활 방식 역시 그 때부터 내려온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쓴다.
그래서 옷, 휴대폰, 자동차, 집까지 모든 걸 깨끗하고 삐까번쩍하고 새 것으로 가지길 원한다.
아직 멀쩡하지만 질리거나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타인의 시선' 에서 벗어날 때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대학교 1학년생이 된 첫 날부터 집에서 돈을 받아본 일이 없다.
과외와 장학금을 통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으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조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렸다.
경제적 자립이란 정말 중요한 거다.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성인으로 만들어주며 책임감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한다.
뉴요커들은 굉장한 텐션으로 일한다. 하지만 24시간 일에 얽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람에 비해 오히려 발걸음이 가볍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군더더기를 빼고 고강도로 업무에 임해 필요한 일을 마친 후 가질 수 있는, 그들이 즐기는 '다운타임'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p. 028-029
퇴근 후 회식을 하거나, 더한 경우에는 아예 퇴근을 하지 못하고 야근을 한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운동이나 악기 배우는 따위의 취미활동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주말이 되어서야 지난 5일간 못한 것들을 몰아서 한다.
혹은, 피로가 쌓여서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쉬거나 잔다.
이는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나라 직장인의 생활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그렇다.
ㅎ.ㅎ
수영을 하고 싶어서 새벽 6시 수영반에 등록하였고, 1시가 전인 새벽 5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준비하여 수영장에 갔다.
평일 내내 그렇게 해도 피곤하다기보다는 하루의 시작이 개운해서 좋았다.
재즈 피아노나 영어 회화를 배운 적도 있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엔 주말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20살 때부터 계속 해 온 건 운동이다.
수영, 헬스, 마라톤, 크로스핏, 피겨스케이팅, 복싱 등 일주일 중 3~5일은 꼬박 꼬박 운동을 한다.
체중 감량이 목표이긴 하지만,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도 있다.
요새는 다소 정적인 필라테스와 요가 - 하지만 운동 중 몸의 움직임을 보면 정적이지도 않다. - 를 배우는데,
몸매 관리는 물론이고, 심신에 안정을 주어서 꽤 맘에 든다.
욜로, 워라밸, 모두 다 좋은 말이다.
나는 항상 욜로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모든 일에 임하고 즐기는 중이며,
그 바탕에 워라밸을 두고 있다.
"그럼 몇 살 때쯤 그런 영화를 보여줄 거죠?"
"그 내용이 왜곡돼 있다는 걸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나이에 보여줄 거에요."
p. 127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사는 뉴욕에서는 특히 인종차별이 민감한 이슈이다.
따라서 단일 민족이나 단일 인종이 대다수인 지역들보다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대단한 뉴욕이다.
상황이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식이지, 뉴요커가 다른 시민들보다 뛰어난 윤리적 의식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지난 몇 십년간 유입되어 온 영어 강사, 외국인 근로자, 관광객들로 인하여
점차 차별에 대한 자각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자성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 옛날 흑인을 보고 어른들이 '깜둥이' 라고 했었지만, 지금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나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진통을 조금만 더 겪고 나면
우리나라 국민들도 피부색으로 누군가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뉴욕은 싱글들의 도시다. 한국에서는 30세만 넘어도 부모나 친지들이 결혼이 늦었다며 압박을 주기 시작하지만, 뉴요커들은 성공한 50대 중에서도 결혼을 안 한 사람이 많고 50대 중반이나 60대에 첫 결혼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p. 145
미국은 성별에 따른 역할과 연애, 결혼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지만 뉴욕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게이' 스럽고, 여자가 이렇게 옷을 입지 않으면 '레즈비언' 같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나,
그에 반해 뉴욕은 세계 최대의 성소수자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가족 중심의 문화가 중요시되는 미국 안에서도 뉴욕은 싱글들의 천국이다.
이 쯤 되면, 내가 가야 할 곳 아닌가?
그래도 요즘은 나아져서 30대 후반쯤 되어야 결혼에 대한 압박이 들어온다지만, 여전히 독신으로 사는 삶은 한국에서 피곤하다.
나는 괜찮고 행복한데, 주위에서 난리다.
아이를 한 명쯤 나아서 키워봐야하지 않겠나, 결혼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야 하지 않겠나 라는 말은 꽤 비논리적으로 들린다.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족으로 행복하게 사는 친척을 보며 자라왔고,
어차피 후회할 거 나는 결혼하지 않는 삶을 택하겠다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은 좋은 것이 서로 다르다. 굳이 타인의 호불호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다르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이것이 뉴욕이라는 도시가 '다양성'이라고 하는 과제와 끊임없이 씨름하며 깨달은 결론이다. 내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으면 된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사는 것' '인간은 원래 이래야 하는 것'이라는 정답을 미리 가지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서 감추고 남들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
p. 191
여기서 드는 생각.
'집값만 아니면 진짜 뉴욕에서 살고 싶다. 아니면 하와이. 왜냐면... 하와이는 느긋하고 와이키키가 있고 서핑할 수 있고 자유로우니까.'
"걔는 대체 왜 그래?"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좋은가 보지." 라는 말로 답하는 나다.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데, 위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의 인생에 내가 끼어들 권리는 없다.
나의 의견과 내가 아는 지식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세계와 남이 살아온 세계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랑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뉴욕.
몰랐다.
언젠가 여행가게되면 그 점을 꼭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