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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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구역 사람에게 물으면 열에 아홉은 롱롱을 말했다. 세상의 허물을 벗기는 전설 속의 뱀, 롱롱이 나왔다는 것이다.

p. 013

이 소설은 SF소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샤머니즘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허물로 뒤덮인 사람들이 격리된 D구역,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방제센터.

우리가 흔히 SF소설 (sci-fi)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시나리오인데,

동시에 샤머니즘적 요소가 나오니 흥미롭다.

계속하여 롱롱(뱀)을 신격화하면서 신에게 비는 노파가 등장하는가 하면,

사람들은 롱롱의 신화를 믿으면서 방역회사나 약보다는 거대한 뱀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위태롭고 생명의 존폐가 왔다갔다하는 순간엔 역시 가장 원초적인 믿음이 생겨나는 게 우리 인간인가보다.

종교라는 것을 믿지도 않고, 무속신앙은 더더욱이 아니지만,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흐름에는 어쩔수없이 밑바닥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T-프로틴은 피부가 깨끗해지라고 먹는 거니까, 혹시 알아? 이걸 먹고 뱀이 허물을 깨끗하게 벗어버릴지."

p. 128

영화 [설국열차] 에서 열차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 그들은 몰랐지만 - 단백질 블록인 양갱을 먹는다.

이 소설에서는 허물을 조금이라도 덜 나게 하기위해서 프로틴을 먹는다.

배경으로 헬스장이 등장하는 건 피식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로틴 소비량이 많은 곳들 중 하나가 바로 헬스장일테니까 말이다.

단백질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SF소설에서는 마치 행군하는 병사들이 먹는 소금처럼 생명을 이어가기위한 최소한의 끼니로서 묘사된다.



믿을 거라곤 롱롱의 이미지 뿐이었다. 건강을 선물하는 롱롱, 근심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하는 롱롱, 소원을 묻지 않고도 알아서 이뤄주는 롱롱 등이었다.

p. 232

그 와중에 상업적(?)인 결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인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리사욕을 챙길 수 있는 존재인가보다.

허물이 생기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인 단백질과 그들에게 신화적 존재인 뱀을 결합시킬 생각을 하다니.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돈벌이 수단을 찾아내는 인간은 대단하기까지하다.

프로틴은 여전히 프로틴일 뿐인데, 거기에 약간의(?) 이미지를 끼얹었더니 인기가 치솟는다.

비록 재난 상황에서 상점을 부수고 들어가 강도질을 하는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게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이 도시에서 공포는 거짓을 진실로 뒤바꾸는 알리바이입니다. 공포는 실재하니까 거짓은 없다는 논리입니다."

p. 153-154

우리는 공포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뒤쳐지면 안 되니 각종 학원에 보내야 한다.

수행평가 대비를 위한 특별 대비학원도 있고, 체계적인 입시 준비를 위한 입시 컨설팅 전문도 있다.

한 편, 언제 어떤 사고가 날 지 모르기에 다양한 보험에 가입해두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어서 나이가 먹는 만큼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에 그만큼 노출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런가하면 사이비 종교는 '지구 종말론' 이나 악마 숭배 등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종교를 믿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해보면 처음 종교란 게 생겨난 이유도

인간의 힘으론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자연 현상을 두려워하다가 우리보다 더 큰 어떤 존재, 즉, 신이 있다는 믿음에서부터이다.



이 소설은 뻔하디 뻔한 SF 배경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속보이게 구는지를 보여준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회사, 크게 인류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명목하에 어떠한 실험도 마다하지않는 박사,

절박한 상황에서 미신에 기대는 사람들까지.

그래서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이나 상상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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