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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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으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빛이 난다. 오랜만에 해가 얼굴을 내밀자 녀석은 담 위로 넘어가 잠깐 쏟아지던 햇빛을 만끽했다.

p. 24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양이와 할머니 - 나는 이 둘 다를 별로 좋아하지않지만 - 는 둘 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길냥이가 된 고양이는 중성화의 대상으로, 발정난 고양이의 소름끼치는 소리가 아기 울음소리같다며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

끊임없이 번식하는 듯한 길냥이를 안쓰럽게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저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한 편, 할머니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서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을 인정받기보단 그저 늙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 둘이 함께 만났다.

누구에게도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것만 같은 고양이와 할머니가 서로에게 애정을 주고 행복을 경험한다.

사랑을 받으면 절로 행복한 표정이 지어진다.

무섭게만 보이던 날카로운 눈매의 고양이조차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며칠 후 동네 사거리엔 조합원 환영 현수막과 재개발 반대 현수막이 차례로 걸렸다. 

p. 73


​이 도서의 배경은 부산의 재개발 지역이다.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수십년 살아오던 사람들도 곧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그 중엔 할머니들도 있다.                                                                                                                                                                                                                                                                                                                                                                                                                                                                                                                                                                                                                                                

부서지고 새로운 건물로 바뀔 자리에서 할머니는 고양이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골목 길고냥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이가 떠나고나면, 길냥이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새로 들어선 건물에서 길냥이들이 설 자리가 있을까.

아직은 철거되지 않은 빈 건물을 서성이는 고양이들.

깨진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애처롭다.




찐이가 아무리 거묘라고 해도 설마 아기 옷이 맞겠나 싶었는데 단추를 잠그는데 묵직하니 둘레가 비슷하게 맞았다!

p. 143

나와 함께 사는 토끼인형인 헤니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가끔 온라인으로 애완견 옷을 검색한다.

중대형견 옷 사이즈 정도면 헤니에게 아주 잘 맞는다.

헤니는 작고 아담한 귀여운 인형이지만, 손에 놓은 당근을 절대 떼어놓지않으려고해서 두께가 두툼한 크기의 옷이 필요하다.

얼마 전엔 크리스마스용 모자와 망토를 새로 사줬는데 아주 말 맞는다.


​똥똥한 고양이 찐이 역시 고양이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는다.

바로 사람 아기의 옷 말이다.

고양이들은 인간이 건드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옷을 입혀주는데도 가만히 있는 사진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하루하루 할머니의 몸무게도, 기억의 무게도 줄어 가고 있었다.

p. 168


​처음에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더불어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령의 나이와 함께 점차 기억을 잃어가고 건강도 잃어가는 할머니.

사람보다 먼저 죽기 마련인 고양이.

이 둘은 이별할 운명이다.

하지만 무지개 다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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