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센스 1 - 남들과는 '아주 조금' 다른 그와 그녀의 로맨스!
겨울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남 


정지후는 마조키스트이다.

그가 가학용 목줄을 주문한 게 회사 내 같은 기획개발팀의 사원 정지우에게 잘못 배달된다.

계속 전전긍긍하면서도 강아지와 같은 성격을 버리지 못하는 그는 목줄에 '미호' 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아낀다.

그는 결국 정지우를 주인님으로 삼고 그녀에게 감동받을 때마다 강아지처럼 '질질 짠다.'



"크게 부딪치셨잖아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구요!"

갖고 싶지 않아요?

주인님이요.


p. 55



정지우의 늘 차분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강한 성격은 정지후의 마음을 뒤흔든다.

오해건 아니건 일단 정지후를 주인님으로 삼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하고, 결국 머릿 속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만다.



혹시 저랑 같은 취향인 거라면... 그래서 그때처럼 나에게 명령하고 싶은 거라면- 하세요!

뭐든지 좋으니까 단호하게...! 개라고 생각하고!!


p. 89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처리하고, 주도적으로 상황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황당한 '변태적인' 요구도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받아들이는 그녀는 그에게 하늘에서 강림한 주인님이다.

그녀가 하는 모든 '바닐라적인' 일반적인 언행은 마조키스트 정지후에게는 그저 주인님의 놀라운 그것일뿐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남자라니...

이보다 더 심한 자의식과잉주의자가 어디 있겠는가......



"찾아보니까 뭔가, 보통은 때리고 벗기고 그런 식이던데... 역시 저에겐 무리에요."

"아뇨, 저도 그런 것까지 바라는 건... ! 찾아 보셨어요?"

"네."

"좀 생각해보신 거예요?"

"예? ... 그게 아니라,"

"와... 기쁜데요?"


p. 133



그런 정지우는 사내에서 누구에게나 호감형인 사원이다.

상사도 승진할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일 잘하는 사람으로 여성 직원들이 흠모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일찍 출근하시네요? 아침은 드셨어요?"

그러나 자연스럽게 사교 멘트가 나오는 타입.


p. 65



"제가 해볼게요. 주세요! 이전 데이터 찾아보면서 하겠습니다.

이것도 정리해 두면 되죠? 또 맡기실 일 없으세요?"


p. 99



때론 겉과 속이 다른 정지후의 행동을 보면서 중학생 때 친구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나와 함께 길을 걷던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어! 선생님!" 이라고 굉장히 반갑게 외치더니, 둘이 한참동안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그 다음 바로 "아, 저 여자 완전 재수없어."

...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사회 생활하는데는 정말 편할 성격의 인간이 그 애뿐만이 아니었다.

정지후는 그 속을 알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나 이쁨받고 성공할 타입의 인간이다.



"혼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어쨌든 남이 기대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더라구요. 사회적인 평판이 좋은, 친절한 사람으로. 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춘 내 모습을 충족시키려고 아등바등하는... 멍청할 놈일 뿐이죠."

한심하고, 어디까지나 계기이고, 취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저 소심한 인간일 뿐이라고... 누군가 그렇게 말해줬으면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했다.


p. 169



정지후를 계속 보면서 생각한 건, '역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나?' 라는 것이다. 

성격적인 면에서 너무나 흠 잡을 데가 없거나 늘 얌전하고 조용한 인간을 보면 

그 속엔 대체 뭐가 들어 있을지 의심부터 하게 될 정도이다. 

솔직히 정지후가 마조키스트라는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면 그만이니.

그저 그 이중적인 모습이 살짝 소름끼치게 느껴진다.









- 그녀


소심하면서도 속으로 끙끙 앓는 성격의 정지후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게 바로 그의 주인님, 정지우이다.

물론 그녀도 사람인지라 어떤 행동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하고, 머릿 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흘러간다.

상사인 정지후에게 소리친 듯 한 발언을 사과하려고 며칠을 고민한 거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자주적인 인간이며, 

무엇이든지 그리 오래 그리고 그리 심각하게 골몰하지 않는다.



"얼른요, 주인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참 잘했어요."


p. 182



겉으로는 다른 누군가처럼 굉장히 평범해 보이거나, 아니 누구보다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던 남성이 

알고 보니 마조키스트라는 사실에 충격받지 않을 여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정지우는 몇 안 되는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 없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페이스북 자기 소개란에 'open-minded' 라고 충분히 쓸 수 있을 법한 그런 류의 사람말이다.



"시간을 좀 가지자."

"...그래."

'그게 다야? 할 말 없어?'

'왠지... 그런 말 할 것 같았어.'


p. 284



남녀간의 이별이라는 큰 사건에도 정지우는 상황이 그래서 그럴 법하다고 여기고 쉽게 수긍한다.

자신보다 좋은 직장을 가졌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결심한 쪼잔한 전남친 장현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인배이다.



"유나 언니는 오해한 게 없어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매사에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지우 씨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에서부터.'


p. 95



정지우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할 때 굳이 숨길 이유를 찾지 못한다.

자신이 정지후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 앞에서 드러낼 수 있다.



"잘 들어요! 당신한텐 별로여도 나한텐 좋아할 가치가 있는 건, 그 외에도 많이 있을 거라구요!"


p. 230



정지후의 옛 여친에게 사이다같이 속 시원하게 말 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걸크러쉬가 절로 생길 정도이다.

우리나라 여성들 대부분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걸 그녀는 직접 앞으로 나서서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쑥덕쑥덕


정지후와 정지우의 이야기는 그들의 속내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같은 부서 직원들의 좋은 안주거리가 된다. 

정지후 혹은 정지우와 친구처럼 친한 사원 한 명이 아니라, 특히 여사원들 모두는 정지후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그와 정지우와의 관계에 대해 매일 매일 알고 싶어한다.



"왠지는 몰라도, 오늘 마주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주고 가서..."

'둘이 사귄단 소문이 어느새 많이 퍼졌군...'

'얜 우리가 말해주지 않으면 진짜 모르네... 사내 소문...'


p. 241



그러니까 이런 건... 너무너무 질린다.

우리 모두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며, 나와 그 누군가,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과 친하지도 않은 그냥 같은 회사 동료일 뿐인 사람들에 대해 제3자가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가.

이건 명백히 남의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장소가 학교이든 - 그래도 이건 어린 날의 호르몬 분비나 치기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 직장이든

어느 시골 동네처럼 남의 얘기가지고 사사건건 떠들고 앉아 있는 건 정말 시간 낭비이다.

온라인 상에서 자기가 싫어하는 연예인 기사에 악플 다는 거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만 좀 남의 사생활로 떠들고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으면 한다.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기에는 너무 짧고 소중하지 않은가.









이 웹툰 두 권에서 가장 좋았던 건 귀여운 강아지 '복서' 이다.

(아, 물론 강아지와 닮은 것 같이 묘사되었던 정지후는 전혀 상관없다.)

복서가 중간 중간 짜증나는 나의 마음을 상당 부분 달래 주었다.


마조키스트이건 새디스트이건 나와는 너무나 먼 별개의 단어들이라서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나의 초점은 오로지 정지후와 정지우, 그리고 인물 하나 하나의 성격에 맞춰졌다.


이 웹툰에 대해 말하자면, 확실히 지루하진 않다.

글씨도 그림도 큼직큼직해서 한 권 당 20분이면 다 읽으니 시간도 그리 소비하지 않는다.

내용은 개인차이니 별로 말 할 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코로 드립 1 - 지유가오카, 카페 육분의에서 만나요
나카무라 하지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모두의 꿈이 쉬어 가는 진정한 휴식공간으로서의 카페




요즈음의 카페를 떠올려보자면 그저 친구들과 만나 열띤 수다를 떨거나, 

혹은 스터디 장소, 모임 장소, 조별 과제 장소 등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심지어 스터디 전문 카페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혹은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위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과 노트북을 벗삼아 앉아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지유가오카에 있는 카페 육분의는 남다르다.

누구나 힐링 공간으로서 꼽는 카페이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한숨 쉬면서 자신을 두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단골 손님들과 직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깊은 관심을 가져서 어쩌면 시골 원두막같은 분위기를 주는 곳.

번화한 도쿄 안에서도 이탈리아 베네치아 느낌을 물씬 낸 지유가오카에서 그런 카페가 있다고 하면 의외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 있고,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가 묻어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직 블로그에 의해 소개되지 않은 카페라고나 할까.

위치로 보면 강남역 근처 쇼핑몰에 있을 법한 곳이지만, 분위기로 보면 어느 주택가 속에 숨어 있는 카페이다.

엄청나게 많은 디저트와 음료 중에서 겨우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울리고 음료를 찾아가고 현금 영수증을 받는 것과는 상반되어 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을 찾아 휴대폰이 충전되는 콘센트를 찾아 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카페 육분의에서는 '카페' 가 지닌 본연의 의미가 잘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는 꿈이 쉬어가고, 사람과 선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단, 암묵적인 규칙이 한 가지 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와 동일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로 진열대에 남겨야 한다. 금전적, 사회적 가치가 아니다. 그 사람 자신의 가치 기준에 의한 '등가교환'이다.


그렇게 카페 진열대에는 항상 선물이, 물건에 얽힌 마음이, 말없이 놓여 있다.


이 카페는 대합실이다.

선물은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사람은 선물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리고 때로는 선물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p. 8







- 카페 육분의의 직원으로서, 꿈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카페 육분의의 마스터 히다카, 셰프 다쿠, 그리고 주말 알바생 지마, 이 세 사람 모두에게는 각각의 꿈이 있다.

물론 카페 육분의가 side job으로 치부되는 건 아니고, 더 큰 꿈을 위해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원두가 들어올 때마다 흥분하는 마스터 히다카는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엇, 마스터, 회사원이셨어요?"

"응,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지마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데 히다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설명하였다.

"기업 주가를 분석해서 리포트를 쓰는 거야. 보험회사나 신탁은행에 대해서 말이지.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주식 매매가 결정되고 수억 엔이 움직여." 

(중략)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감촉과 향이 있는 '물건' 을 그리는 마음이 커졌나 봐."


p. 30



경제 전문가에서 바리스타로 바뀌는 건 쉽사리 생각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증권가에서 일하다가 중년이나 노년에 은퇴하여 카페를 연 것도 아니고,

 히다카는 꽤 젊은 나이에 카페 육분의를 개업하여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최상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은 돈보다는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커피원두를 택하였다.

 한 편, 다쿠는 유명 카페의 수석 셰프인 쇼고를 누르고 파스타 요리 대회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이를 홍보하여 카페에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게 아니라 늘 써 오던 연애소설을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다.

지마의 놀림을 받아가면서도 카페에서 틈틈히 연애소설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겉으로 풍기는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꿈을 가진 지마가 있다.

어릴 적 유복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혼한 아버지를 찾아 늘 방황해왔다.

어쩌면 아버지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곳이 바로 이 곳 카페 육분의이고, 

진열대에 어머니의 브로치를 두고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린다. 

결국 카페에 집 모형을 두고 갔던 손님이 자신의 아버지였고 둘은 염원하던 만남을 가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 카페에서의 '선물 교환' 이라는 방식으로 일어난 셈이다.








- 커피 한 잔에 꿈을 풀고픈 사람들 




단골 손님인 야에 할머니가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알아주는 커피 매니아여서 더불어 자신도 그렇게 되었다. 

카페 육분의의 직원들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야에 할머니에게 있어서 카페 육분의는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지마가 의지하는 언니이자, 카페 육분의에 원두를 납품하는 곳의 직원인 아야카는 

예전 자신의 어머니처럼 미용사를 하고 싶어서 미용야간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

러나 생계 유지와 동시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도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한 인물이 있다.

준은 아버지가 지유가오카 백화점의 회장인 명문가 아들로서, 천사 일러스트로 전시회를 하고 싶어한다.

아야카를 빌미로 자신의 꿈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아버지때문에 고민도 하지만, 

아야카의 설득을 통해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미술 데뷔를 한다. 

이는 카페 육분의의 진열대 위 천사 도자기 인형을 가져가고 만년필을 두고 감으로써 형상화된다.


"...... 정말 포기할 거에요?"

지마는 책상 위에 뒤집어 놓은 액자를 가리키며 힘주어 말한다.

"거기 그려진 천사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준 씨뿐이에요. ...... 그래요, 준 씨가 했던 말이잖아요."

준은 지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옅게 웃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야카의 꿈은 아야카만 이룰 수 있어. ...... 지마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p. 85


양아버지와 함께 사는 미나토는 사춘기를 겪는 중이다.

 친아버지의 흔적을 따라서 색소폰을 배우는 가 하면, 

지금 곁에 있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애정이 없고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한다며 오해한다.

그와 아버지와의 갈등은 카페 육분의 진열대 위에 놓인 아버지의 릴과 미나토의 색소폰 연주를 통해 해결된다.









- 카페 육분의에서 사랑이 피어날 확률




셰프인 다쿠는 자신이 쓰는 연애소설을 두고 잔소리 해대는 알바생 지마에게 항상 투덜댄다.

다정한 히다카와는 달리 다쿠는 지마에게 늘상 툴툴대면서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다.

물론 이건 일상다반사라서 지마와 다쿠, 둘 사이에 분노와 갈등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을 보면 오빠와 여동생이 집에서 투닥투닥하는 애정어린 싸움으로 느껴진다.


그랬던 다쿠가 사실은 지마를 아끼고 있고, 어쩌면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연속적으로 네 번 정도 나오니 확실한 거 아닐까?

육분의를 거쳐간 많은 손님들이 꿈 혹은 사랑을 얻었다면, 이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까.



다쿠가 아무 전조 없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더니 지마의 왼손을 잡고 홱 끌어당긴다.

"걱정 마. 기껏해야 애를 보는 멋쟁이 아빠로 볼 테니까."

지마는 조금 당황해하면서도 다쿠가 잡아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p. 222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롯폰기에서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는 둘.

누가 봐도 연인이라고 오해하기 충분한 모습이다.



 "지마."

"...... 네?"

"아니 그러니까, 그게. ...... 역까지 바래다줄까?"

지마는 멍하니 다쿠를 보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왜 그러세요? 다른 때는 그런 말씀 안 하시면서."

"...... 그게, 그, 어쩐지 네가 피곤해 보여서."


p. 250



어머니의 브로치를 만든 장인을 자신의 친아버지로 오해한 지마.

아직 둘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사건의 전개에 급변화를 맞는다.

힘들어하는 지마와 이를 신경쓰는 다쿠라니, 정말 평소답지 않다.



"앞으로도 이 가게에서 같이 일해주시겠습니까?"

지마의 수줍어하며 웃는 얼굴이 소리 없이 피어났다.

"고맙습니다. 기꺼이."

히다카가 얼굴을 들고 빙긋 웃었다. 그 곁에서 다쿠는 무뚝뚝한 얼굴로 바닥을 닦고 있다.

하지만 그런 다쿠의 입 끝이 한순간, 남몰래 아주 살짝 올라간 것을 이번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p. 309-310



정말이지 엄청나게 암시와 단서들을 뿌리고 끝난 1편이다.

새롭게 봄 옷을 입은 지마를 보고 수줍어하는 다쿠라니.

그동안의 양상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코코로 드립을 읽고 있다보면, 몇 년 전 일본 도쿄 여행갔을 때 아침마다 지하철역 가는 길가 카페에서 풍기던 진한 커피 향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한 건, 나는 전혀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커피 향을 좋아한다는 점에선 지마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코코로 드립을 읽으며 맛있는 버터 토스트와 오믈렛을 함께 먹고 싶다는 거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삶을 원하는(?) 사이코


주인공 헨리는 사이코패스이다.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칭찬과 평판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그는 내연녀와 생긴 아기를 동시에 죽일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장인을 우연히 죽인 다음에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헨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의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도의 전문적 방법으로 완벽하게 폭군 살해에 성공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즉, 헨리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큰 사고가 나서 배가 뒤집혔다는 것도, 아버지가 대단한 야생동물 사냥꾼이었다는 것도, 얼음 같은 북해에서 모두 빠져 죽고 헨리 혼자 유일하게 구조됐다는 것도 모두 지어낸 말이었다. 사실 헨리의 아버지는 개 주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말단공무원이었고 헨리는 오줌싸개에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수틀리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이코패스였다. 


흔히들 사이코패스는 어떤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생긴다고하나 그에게 있어서 그 사건이란 '출생' 자체였고, 그는 타고난 사이코패스였다. 어릴 적 보육원에서 또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특히 파쉬를 괴롭혔다. 그는 마치 영화 '아이덴티티' 의 주인공 절름발이 남성이나 '양들의 침묵' 의 한니발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범죄학 전문 박사가 아니기에 사이코패스가 어떠어떠한 유형으로 나뉘어져 있으면 또한 그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헨리로부터 받는 인상은 그저 그가 '평범한 - 아이러니한 표현이긴 하지만 - 사이코패스' 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작가' 로서의 그의 면모에서 잘 드러난다.



원칙적으로 서평을 읽지 않는 마르타와 달리 헨리는 모든 평을 한 자 한 자 다 읽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칭찬에는 자를 대고 줄을 그었고 기사를 오려서 스크랩북도 만들었다. 



헨리는 이 순간을 사랑했다. 좋은 일을 하고 뿌듯한 기분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분 좋으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그를 만나려고 먼 길을 왔을 것이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얼굴 한 번 보려고 말이다.



그러나 위의 두 예는 평범한 시민이 되길 원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권력과 성취욕에서 나타난 자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하는 행동이 非사이코패스적이라 할 지라도, 그 의도가 다분히 사이코패스적이라면 그는 결국 평범한 인간이 아닌 셈이다.



여가시간에는 취미로 아마존에 서평을 올렸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해두자면 좋은 말만 썼다. 부정적 평가란 발가락의 때만큼이나 비생산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도 만약 나쁜 평을 올리게 되면 트라비스 포르스터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왕 만든 필명이니 쓸 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과연 위의 상황에서도 그가 어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서평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자기 만족으로 '작가' 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자 평을 올릴 수도 있지만, 나쁜 평을 올릴 때 마음이 편치 않는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헨리도 가끔은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도 느끼고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헨리에게도 어느 정도 '인간적인' 구석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놀랐던 구절이다. '깨끗한 양심' 이라는 표현으로 그동안의 양심은 '깨끗하지 않았다' 는 걸 암시할 뿐더러, 자신의 삶이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안다는 표시일 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건 돈, 권력, 여자, 그리고 진실한 한 명의 친구인 듯 하다. 자신의 모든 것 - 물론 헨리의 경우엔 아주 모든 것이 아니지만 - 을 내보이고 편안해지게 만드는 그런 친구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는 벨트를 풀어 오브라딘의 몸통에 묶고는 배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람이 어쩌다 선해지는 그런 순간이었으리라. 헨리 자신의 생각도 그랬다. 잠시 선해졌을 뿐 그는 여전히 악인이었고 결국 죗값을 치르게 돼 있었다.



생선가게를 하는 친구 오브라딘을 위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가 마음 상해할 까봐 그의 아내를 통해 몰래 조금씩 도와주는 배려심까지 갖고 있는게 바로 헨리다. 사이코패스치고는 참으로 모순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내를 신처럼 숭배하는 헨리


사이코패스 헨리에게 있어서 아내 마르타는 신과 같다. 

그에게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해 주는 신일 뿐만 아니라,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면서도 감싸주는 그런 신 말이다.

사실 헨리의 마음 속에서 '사랑' 이란 감정이 싹 튼 것도 마르타의 글 때문이었다.



그는 원고 한 장 한 장을 소중히 챙겨두었다. 그녀는 원고가 어디로 갔는지 묻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는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텄다. 두 사람은 함께여서 좋았고 그런 삶은 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됐다. 헨리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르타는 성녀와 같은 모습을 한 여성이다. 말이 많지 않으며,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으며, 특히 헨리에 대해서는 귀신처럼 알고 있다. 그가 누군가를 죽이는 걸 꺼리지 않는 사이코패스라는 걸 알면서도 함께 살며 평화를 유지하길 원한다.



마르타는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여자 문제면 그냥 얘기 하지마. 어서 가서 담비나 좀 잡아줘."

(중략)

그녀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고 화난 것 같지도 않았다. 헨리는 그녀가 자신의 약점을 감싸줄 때면 특별히 더 위대해 보였다. 그래서 다른 여자에게 갈 때면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조신하게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고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바람을 피우고 돌아올 때면 마르타는 으레 그의 죄의식을 투영하는 색깔을 알아채곤 했다.



선천적 공감각의 소유자인 마르타는 모든 사물과 생물에게서 색깔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녀의 능력이 헨리로 하여금 그녀를 존경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쓰기 능력, 그 글을 남편의 이름으로 그가 모든 걸 누리도록 허하는 관대함, 그의 바깥생활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 자유로움, 하지만 모든 것의 본질을 알고 있는 면. 헨리에게는 자신보다 위의 존재라고 느끼게 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춘 여자이다.



"헨리, 꼭 새로 시작해야 할까? 지금처럼 사는 게 좋지 않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로 할 수 있는 방탕한 생활은 모두 하는 헨리와의 결혼 생활을 그녀는 싫어하는 거 같지 않다. 오히려 이런 면이 헨리로 하여금 '변해야겠다.' 고 다짐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헨리, 사랑하는 내 남편, 이로써 당신과 당신의 소설을 구합니다. 당신을 빈손으로 돌아서게 하는 일은 예전에도 할 수 없었고 지금도 할 수 없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밝은 빛은 검디검었습니다. 당신이 걱정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헨리가 우느라 아내의 쪽지를 계속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남편 헨리를 구한 아내. 헨리는 이 시점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다한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다.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아내의 죽음을 사고사로 위장하기위해 천연덕스럽게 모든 시나리오를 꾸민 걸 보면, 울음은 단지 상실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이상 작가로서의 영위로운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상실감. 자신의 모든 걸 알면서도 다 받아 준 크나큰 존재를 잃은 상실감.










여성을 향한 본능만이 살아 있는...


그렇다면 헨리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서 가장 '일반 남자다운' 모습은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콕 찝어서 '여성을 향한 본능'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에게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아내 마르타가 있다. 동시에 내연녀 베티가 있는데, 그는 베티를 사랑하지는 않고 그저 그녀의 몸을 탐할 뿐이다. 그녀와 자신 사이에 생긴 아기와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없애버리려고 마음 먹는다. 또한 출판사장인 모리아니가 베티를 좋아하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그 둘을 적극 이어주려 한다. 



베티는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화가 나고 절망한 모습의 그녀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헨리는 '난 왜 베티가 가려고 할 때만 그녀를 갖고 싶은 걸까?'라고 생각했다.



결국 베티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대상일 뿐이고, 그 대상은 작가로서의 지위와 돈을 이용한 불특정 여성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는 세계 여러나라를 여행하고 곳곳에서 만난 여성들과 즐기곤 한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부재감에 울다가도 눈 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성에게 금방 혹하고마는 그를 정말 '가장 동물적이며 본능적인 남성'으로 칭할 수 있겠다. 심지어 아내 잃은 헨리를 위로하기 위해 온 소냐를 보고도 반하여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 그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눌 만한 대상이 있긴 한 걸까? 사람이라면 "아니다" 라고 대답하겠지만 동물을 포함한 생물의 범주에서라면 "그렇다" 라고 답 할 수도 있다.



헨리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검정색 호바바르트 한 마리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주인을 반기는 폰초의 모습에 헨리는 매번 감동을 받았다.



그에게 있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도 환영할 수 있는 개 폰초뿐인 듯 하다. 아이러니한 건 호바바르트 종이 강도를 추격하는 데 특화되어있다는 것인데, 동시에 성격이 일관되어서 한 주인을 따른다는 것이다.






아침 드라마에서 살인 스릴러물로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절벽에서 시작한다.

내연남녀의 대화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갈등.

아기가 생겼는데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유부남 헨리와 그의 반응에 신경쓰는 베티.
이런 상황은 쉽게 상상되고 아침드라마의 지겨운 불륜 스토리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장인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서서히 스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가 아내의 원고를 도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행동 양상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 이후로 기스베르트는 적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헨리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다. 대신 헨리의 과거를 찾아내 조각조각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그는 인생의 과제를 얻은 셈이었고 그의 삶은 충만해졌다. 담배도 끊었고, 까짓 거 전혀 어렵지 않았다, 불면증도 없어졌다. 살찌는 부작용이 있던 우울증 약도 끊었다. 심지어 원형탈모도 나아졌다. 인생의 적을 만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헨리에게 보육원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던 기스베르트는 어느 날 그 악마가 불의의 사고로 아내가 사망한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걸 알고 천천히, 그리고 아주 꼼꼼히 그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그가 헨리와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을 스크린에서 본다면 제대로 긴장감이 느껴질 것이다. 자동차 사고 직후 헨리가 그를 구하는 장면과 병원에서의 재회까지 더해진다면 기가 막힌 플롯이 하나 생긴다.







미스터 하이든은 어쩌면 읽기 껄끄러울 수도 있는 블랙 코미디이다.

그저 살인마일 뿐인 한 남자의 복잡한 성격을 들여다봐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건, 요즘처럼 더운 여름 열대야를 이겨낼 방법이기도 하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호사 고진





법정 스릴러 소설은 처음 읽는다. 그것도 한국 법정 소설로는.

우리나라 헌법은 전세계적으로도 본받을 만한 정도라고 하다. 하지만 그 법을 집행하는 건.. 글쎄...

법과 집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기게 그런 지루한 법정 이야기를 소설로 어떻게 풀까 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작가가 현직 부장판사라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그 어렵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작가가 자신을 담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되고 싶은 인물을 담은 건지 궁금한 주인공이 여기에 있다.

변호사 고진.

알 만한 분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내겐 전혀 새로운 인물이다.

그는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변호사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외모에 쉽게 반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미모라는 게 그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의뢰인이나 피고인의 미모에 신경쓰는 모습, 그 밖에 여러가지 모습들이 마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인물 셜록홈즈를 떠올리게 한다.




고진이 '이래도?' 라고 하듯 고개를 들고서 말했다.

"범인을 알았어."

하지만 이유현은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아, 저 병은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p. 365




남들이 보기엔 단서 하나 찾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떤 관찰과 추리를 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는 애초에 누가 범인임을 짐작하고 있었고, 단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범인이 누구인지 최후의 순간까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 

마치 왓슨박사에게조차 범인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셜록 홈즈를 닮아 있다.

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모습 또한 홈즈와 매우 닮았다.


그가 거짓말 탐지기의 논리적 오류를 증명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남들은 생각할 수 없는 점을 꼬집어내는 그를 보고 있자면 정말로 우리나라에 이런 변호사가 있나 궁금증이 생긴다.



"피고인은 앞서 '남편을 불러내 만났는가'라는 질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답을 금방 못 했죠. 그 질문에는 아직 답을 하지 않은 겁니다. 그 상태에서 이어진 '그리고'라는 말은 아직 대답하지 않은 앞서의 그 질문을 뜻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첫째, '그날 저녁 남편을 만났는가'와, 둘째, '그를 살해했는가'라는 두 질문으로 분해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그중 앞의 질문에 답했던 것입니다. '아니다'라고요. (후략)"


p. 211



평소엔 법정에서 얼굴을 보기조차 힘든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변호사.

냉소적인 유머에 능한 남자.

변호사 고진이라는 흥미로운 캐릭터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흔히들 말한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믿지 않는다.

누구나 기억의 저편에서 가장 뒤에 있는 걸 조금씩 묻어둔다.


그런데 소설 속 세 명의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그들의 치기어린 달리기 시합으로 결혼 상대를 정했던 대학교 바로 그 순간부터,

20여년이 훨씬 지난 이 순간까지 마음 속에는 늘 '김명진' 이라는 한 여성이 자리잡고 있다.

변호사 고진에게 "20년이나 지났는데..." 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어찌 김명진을 사랑하는 여자로 보겠냐며 도리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는 그들.

하지만 속마음은 그와 정반대이다.


남궁현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대화도 매끈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인물인데, 그런 그에게도 김명진이 늘 자리한다.

김명진과 꼭 닮은 외모의 베트남 여성과 한 차례 결혼했던 그. (나중에 김해나가 이 둘의 사진을 보고 매우 슬퍼한다.)

베트남 여성의 죽음 이후 그에게도 다시 결혼이라는 이름이 찾아오게 된다.

이번에 그 대상은 다름아닌 김명진의 동생 김해나이다.

신창순과 결혼하여 감히 어쩌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선택은 '가장 김명진스러운' 김해나이다.

그의 속마음을 안 상태에서 과연 김해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그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한 편 대학교수인 한연우는 김명진을 '관념적으로'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 만난 변호사 고진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에 솔직하다.

이제 더 이상 김명진을 볼 수 없다는 걸 안 상태에서 그가 한 선택은 최대한 명진을 도우는 거다.

성인군자같았던 그가 임의재에게 찾아가서 김명진을 돈 문제로 괴롭히지 말라고 화내는 것은 매우 의외이다.

그가 평생을 독신으로 산 것도 어쩌면 김명진때문이 아니었을까?


세 명의 남자들 중에서 가장 놀라움을 준 건 바로 임의재이다. 

누구에게나 거드름피우며 자신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한 그는,

부자들이 할 만한 행동을 그대로 보이며 안하무인의 대명사인 듯 하다.

이혼한 상태의 그가 남편 신창순에게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김명진에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자신 외의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이는 그가 아끼는 김명진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김명진이 사랑한 남자 역시 임의재였다.








타고난 매력





법정에서 의외의 증인으로 나온 고등학교 동기가 김명진에게 불리한 발언을 한 건 그럴만하다.

김명진은 예쁘고 만나는 모든 남자를 반하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데다 착하고 조용해서 적이 없다.

그런 친구를 둔다면 누구라도 '열폭' (열등감 폭발) 할 만하다.

자신의 외모나 매력이 김명진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둘이 함께 다니며 시너지 효과라도 내겠지만,

그것마저 아니라면 평범한 소녀에게 있어서 김명진은 그저 눈엣가시일 뿐이다.


여기에 순정만화같은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 불문학과에서 남자 4명이 한 여성에게 반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택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이 여성을 좋아한다.

남자 넷은 경쟁관계이지만 동시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들은 함께 청혼하고 한 명만 고를 수 없다는 여자의 말에 달리기시합으로 정하기로 한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누구나 사로잡는 김명진을 오늘날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어장관리녀' 라고 칭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어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하고 있는 상대에게는 끊임없는 희망고문을 하는 어장관리녀인 셈이다.

만약 김명진이 실존 인물이고 SNS라도 한다면 댓글마다 찬사와 시기어린 말이 함께 달릴 것이다.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내재된 매력이 정말이지 부럽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떠한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끝까지 진범을 알기가 어려워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500페이지 가까운 두께에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마치 한국형 법정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그리고 제법 해피엔딩이어서 더욱 맘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오렐리 발로뉴 지음, 유정애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고집불통 할아버지




페르디낭 브룅은 여러가지 사례들로 비추어 보아 굉장한 고집불통 노인네이다. 

그가 이혼 후 이사 온 보나파르트가 8번지의 이웃들은 그를 싫어하여 내보낼 계획을 세우게 될 지경이다.


페르디낭의 악행은 상당히 많은데, 일부러 이웃 노파들을 언짢게 하려기 보다는 못살게 괴롭히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가식적인 친절함 - 그가 생각하기에 -에  무례함으로 응징하는 이러한 그의 적대감은 처세술이자 생존법이 되었다.

그리하여 연쇄살인범 흉내를 내기도 하고, 피지도 않는 담배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에 어떤 이유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일까?

그는 자신이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게 불운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를 놀리길 좋아하는 솔직한 사람일 뿐, 남들이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한다.

그는 늙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권태를 잊지 위해 못되게 구는 행동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그의 이상하고 괴팍한 행동에 대한 변명거리가 될 만 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내 루이즈가 자신을 두고 바람 핀 정도? 하지만 그마저도 결혼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그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결국,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족을 온갖 핑계거리로 삼아 무고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셈이다.

그는 정말 '너무한' 노인네이다.















여성들에 대한 절망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남성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자리한다는 거다.

이에 있어서 페르디낭 브룅은 아주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어머니는 여동생을 출산하다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여동생은 사산아였다.

할머니는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갔다가 감기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하게 되었다.

자식인 딸에게도 애정을 쏟지 않아 마리옹은 싱가포르에 가서 살게 된다.

어머니와 여동생, 할머니에 대해서는 과연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바로 여기서 그의 여성들에 대한 절망이 싹 튼 것일까?


그는 여성들이 애정을 미끼로 하는 협박이나 교활함, 속박을 싫어한다.

그래서 암캐인 데이지에게 엄청난 애착을 쏟게 된다.

그렇기에 아파트 관리인인 쉬아레 부인이 데이지를 차에 치이게 했다고 생각했을 때 자살 시도까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을 아주 싫어하는가 하면 또 그런 건 아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에게 아주 친절하거나 이상형의 여성을 보면 금새 마음에 들어 한다.

먼저 다가온 꼬마 줄리엣이 그러했고, 

자신을 '친절한 이웃집 할아버지' 라 부르며 커피, 식사 등에 초대하고 

변호사 신분으로 살인 혐의를 풀어주기까지 한 베아트리스 클로델에게 반한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 클로델은 거절로 답한다.

나중에 브릿지게임에서 만난 마들렌에게는 첫 눈에 반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는 마들렌도 그에게 반했는지 자신의 손녀인 줄리엣에게 연신 그의 근황을 물어본다.










애완견에 대한 애착



바람 핀 아내와 이혼 후, 데이지는 페르디낭의 유일한 낙이 되었다.

데이지는 그에게 애정을 요구하거나 밀당을 하지도 보채지도 않는다.

그런 데이지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페르디낭의 슬픔은 엄청나다.


노인과 애완견, 혹은 애완묘의 관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양에선 '고양이를 키우는 고리타분한 늙은 독신 여성' 에 대한 비하가 자주 언급되었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의 우울증을 막기 위한 애완용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60대 노인이 자신의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기 위해 수억을 내걸기도 했고,

치매 노인의 치료와 증상 완화를 위해 애완견을 이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페르디낭이 데이지를 그토록 사랑하는 건 여성사람들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도 한 몫 했지만, 

더불어 그는 힘없는 노인이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건 말없는 동물뿐이라는 이유도 있다.
















소녀와 할아버지




어느 날 페르디낭에게 찾아 온 소녀 줄리엣은, 자신과 할아버지의 관계를 의심하는 아버지까지 뿌리치고 그와 점심식사를 한다.

페르디낭 집의 청결 상태를 꼼꼼히 검사하는 가 하면, 식사나 약을 거르지는 않는지 참견한다.

자신이 할 말을 다 하면서도 페르디낭에게 맞서고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할 줄 아는 그녀는 결국 페르디낭을 변화시킨다.



마법처럼 문이 열렸다. '열려라, 참깨'도 이보다는 더 효과적이지 않을 듯하다. 기만적으로 태연하게 페르디낭이 말했다.

"점심 같이 먹으려고 널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야. 준비 완료야. 어서 들어와, 음식이 식고 있단다.... (후략)"

p. 88



그의 근심거리는 바로 이것이다! 줄리엣이 하루 종일 오지 않았다. 아이가 다시 오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페르디낭은 점심 심사를 같이 하려고 아이를 기다렸다. 학수고대? 뭐, 너무 그렇게 과장할 건 없지만 시치미 떼고 있는 이 꼬맹이는 함께 있기에 꽤 졶은 친구다. 

p. 102



마침내 줄리엣과 페르디낭은 속 깊은 이야기를 과감없이 나누는 사이가 되고, 

페르디낭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줄리엣에게는 모두 털어놓게 된다.



"아니, 할아버지는 대체 몇 세기에 사시는 거에요? 어떤 여자도 할아버지가 하는 말과 행동의 1퍼센트도 참아줄 수 없을 거에요. (중략) 여자들은 할아버지한테서 달아나는 거에요. 할아버지가 그녀들이 달아나게끔 하기 때문에요. (중략) 할아버지는 궤도를 수정할 시간이 아직 있다고요. 따님인 마리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태도를 바꾸세요. 

p. 193





소녀의 진심어린 충고에 삶을 '거대한 농담' 이라고 여기며 멋대로 살아가던 페르디낭도 태도 전환을 하게 된다.

집을 깨끗이 정돈하고, 손자 걱정을 하며, 전에는 하지 못했을 행동들을 한다.

어찌 됐든 해피엔딩이니 소설 읽는 경험이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요새 유행하는 '눈길을 끄는 표지' + 할아버지' 시리즈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베라는 남자] 를 읽고 좋아했다면, 

이 소설 [페르디낭 할아버지 너무한거 아니에요] 도 좋아할 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