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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로 드립 1 - 지유가오카, 카페 육분의에서 만나요
나카무라 하지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6월
평점 :
- 모두의 꿈이 쉬어 가는 진정한 휴식공간으로서의 카페
요즈음의 카페를 떠올려보자면 그저 친구들과 만나 열띤 수다를 떨거나,
혹은 스터디 장소, 모임 장소, 조별 과제 장소 등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심지어 스터디 전문 카페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혹은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이 주위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과 노트북을 벗삼아 앉아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지유가오카에 있는 카페 육분의는 남다르다.
누구나 힐링 공간으로서 꼽는 카페이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한숨 쉬면서 자신을 두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단골 손님들과 직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깊은 관심을 가져서 어쩌면 시골 원두막같은 분위기를 주는 곳.
번화한 도쿄 안에서도 이탈리아 베네치아 느낌을 물씬 낸 지유가오카에서 그런 카페가 있다고 하면 의외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 있고,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가 묻어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아직 블로그에 의해 소개되지 않은 카페라고나 할까.
위치로 보면 강남역 근처 쇼핑몰에 있을 법한 곳이지만, 분위기로 보면 어느 주택가 속에 숨어 있는 카페이다.
엄청나게 많은 디저트와 음료 중에서 겨우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울리고 음료를 찾아가고 현금 영수증을 받는 것과는 상반되어 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공간을 찾아 휴대폰이 충전되는 콘센트를 찾아 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카페 육분의에서는 '카페' 가 지닌 본연의 의미가 잘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 곳에서는 꿈이 쉬어가고, 사람과 선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단, 암묵적인 규칙이 한 가지 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와 동일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선물로 진열대에 남겨야 한다. 금전적, 사회적 가치가 아니다. 그 사람 자신의 가치 기준에 의한 '등가교환'이다.
그렇게 카페 진열대에는 항상 선물이, 물건에 얽힌 마음이, 말없이 놓여 있다.
이 카페는 대합실이다.
선물은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사람은 선물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그리고 때로는 선물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p. 8
- 카페 육분의의 직원으로서, 꿈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카페 육분의의 마스터 히다카, 셰프 다쿠, 그리고 주말 알바생 지마, 이 세 사람 모두에게는 각각의 꿈이 있다.
물론 카페 육분의가 side job으로 치부되는 건 아니고, 더 큰 꿈을 위해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원두가 들어올 때마다 흥분하는 마스터 히다카는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엇, 마스터, 회사원이셨어요?"
"응, 증권회사 애널리스트."
지마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데 히다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설명하였다.
"기업 주가를 분석해서 리포트를 쓰는 거야. 보험회사나 신탁은행에 대해서 말이지.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주식 매매가 결정되고 수억 엔이 움직여."
(중략)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감촉과 향이 있는 '물건' 을 그리는 마음이 커졌나 봐."
p. 30
경제 전문가에서 바리스타로 바뀌는 건 쉽사리 생각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증권가에서 일하다가 중년이나 노년에 은퇴하여 카페를 연 것도 아니고,
히다카는 꽤 젊은 나이에 카페 육분의를 개업하여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최상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기루와도 같은 돈보다는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커피원두를 택하였다.
한 편, 다쿠는 유명 카페의 수석 셰프인 쇼고를 누르고 파스타 요리 대회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이를 홍보하여 카페에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게 아니라 늘 써 오던 연애소설을 제대로 완성하는 것이다.
지마의 놀림을 받아가면서도 카페에서 틈틈히 연애소설에 매진하는 그의 모습은 겉으로 풍기는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꿈을 가진 지마가 있다.
어릴 적 유복하게 살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이혼한 아버지를 찾아 늘 방황해왔다.
어쩌면 아버지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곳이 바로 이 곳 카페 육분의이고,
진열대에 어머니의 브로치를 두고 하염없이 아버지를 기다린다.
결국 카페에 집 모형을 두고 갔던 손님이 자신의 아버지였고 둘은 염원하던 만남을 가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 카페에서의 '선물 교환' 이라는 방식으로 일어난 셈이다.
- 커피 한 잔에 꿈을 풀고픈 사람들
단골 손님인 야에 할머니가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알아주는 커피 매니아여서 더불어 자신도 그렇게 되었다.
카페 육분의의 직원들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고, 다른 손님들의 이야기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야에 할머니에게 있어서 카페 육분의는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곳이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지마가 의지하는 언니이자, 카페 육분의에 원두를 납품하는 곳의 직원인 아야카는
예전 자신의 어머니처럼 미용사를 하고 싶어서 미용야간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
러나 생계 유지와 동시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도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한 인물이 있다.
준은 아버지가 지유가오카 백화점의 회장인 명문가 아들로서, 천사 일러스트로 전시회를 하고 싶어한다.
아야카를 빌미로 자신의 꿈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아버지때문에 고민도 하지만,
아야카의 설득을 통해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미술 데뷔를 한다.
이는 카페 육분의의 진열대 위 천사 도자기 인형을 가져가고 만년필을 두고 감으로써 형상화된다.
"...... 정말 포기할 거에요?"
지마는 책상 위에 뒤집어 놓은 액자를 가리키며 힘주어 말한다.
"거기 그려진 천사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준 씨뿐이에요. ...... 그래요, 준 씨가 했던 말이잖아요."
준은 지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저 옅게 웃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야카의 꿈은 아야카만 이룰 수 있어. ...... 지마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p. 85
양아버지와 함께 사는 미나토는 사춘기를 겪는 중이다.
친아버지의 흔적을 따라서 색소폰을 배우는 가 하면,
지금 곁에 있는 아버지는 자신에게 애정이 없고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한다며 오해한다.
그와 아버지와의 갈등은 카페 육분의 진열대 위에 놓인 아버지의 릴과 미나토의 색소폰 연주를 통해 해결된다.
- 카페 육분의에서 사랑이 피어날 확률
셰프인 다쿠는 자신이 쓰는 연애소설을 두고 잔소리 해대는 알바생 지마에게 항상 투덜댄다.
다정한 히다카와는 달리 다쿠는 지마에게 늘상 툴툴대면서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다.
물론 이건 일상다반사라서 지마와 다쿠, 둘 사이에 분노와 갈등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을 보면 오빠와 여동생이 집에서 투닥투닥하는 애정어린 싸움으로 느껴진다.
그랬던 다쿠가 사실은 지마를 아끼고 있고, 어쩌면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의 후반부에 연속적으로 네 번 정도 나오니 확실한 거 아닐까?
육분의를 거쳐간 많은 손님들이 꿈 혹은 사랑을 얻었다면, 이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하니까.
다쿠가 아무 전조 없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더니 지마의 왼손을 잡고 홱 끌어당긴다.
"걱정 마. 기껏해야 애를 보는 멋쟁이 아빠로 볼 테니까."
지마는 조금 당황해하면서도 다쿠가 잡아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p. 222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롯폰기에서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는 둘.
누가 봐도 연인이라고 오해하기 충분한 모습이다.
"지마."
"...... 네?"
"아니 그러니까, 그게. ...... 역까지 바래다줄까?"
지마는 멍하니 다쿠를 보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왜 그러세요? 다른 때는 그런 말씀 안 하시면서."
"...... 그게, 그, 어쩐지 네가 피곤해 보여서."
p. 250
어머니의 브로치를 만든 장인을 자신의 친아버지로 오해한 지마.
아직 둘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사건의 전개에 급변화를 맞는다.
힘들어하는 지마와 이를 신경쓰는 다쿠라니, 정말 평소답지 않다.
"앞으로도 이 가게에서 같이 일해주시겠습니까?"
지마의 수줍어하며 웃는 얼굴이 소리 없이 피어났다.
"고맙습니다. 기꺼이."
히다카가 얼굴을 들고 빙긋 웃었다. 그 곁에서 다쿠는 무뚝뚝한 얼굴로 바닥을 닦고 있다.
하지만 그런 다쿠의 입 끝이 한순간, 남몰래 아주 살짝 올라간 것을 이번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p. 309-310
정말이지 엄청나게 암시와 단서들을 뿌리고 끝난 1편이다.
새롭게 봄 옷을 입은 지마를 보고 수줍어하는 다쿠라니.
그동안의 양상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코코로 드립을 읽고 있다보면, 몇 년 전 일본 도쿄 여행갔을 때 아침마다 지하철역 가는 길가 카페에서 풍기던 진한 커피 향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한 건, 나는 전혀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커피 향을 좋아한다는 점에선 지마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코코로 드립을 읽으며 맛있는 버터 토스트와 오믈렛을 함께 먹고 싶다는 거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