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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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고진





법정 스릴러 소설은 처음 읽는다. 그것도 한국 법정 소설로는.

우리나라 헌법은 전세계적으로도 본받을 만한 정도라고 하다. 하지만 그 법을 집행하는 건.. 글쎄...

법과 집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기게 그런 지루한 법정 이야기를 소설로 어떻게 풀까 하고 궁금했다.

그런데 작가가 현직 부장판사라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그 어렵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작가가 자신을 담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되고 싶은 인물을 담은 건지 궁금한 주인공이 여기에 있다.

변호사 고진.

알 만한 분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내겐 전혀 새로운 인물이다.

그는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변호사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외모에 쉽게 반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미모라는 게 그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의뢰인이나 피고인의 미모에 신경쓰는 모습, 그 밖에 여러가지 모습들이 마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인물 셜록홈즈를 떠올리게 한다.




고진이 '이래도?' 라고 하듯 고개를 들고서 말했다.

"범인을 알았어."

하지만 이유현은 일부러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아, 저 병은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p. 365




남들이 보기엔 단서 하나 찾기 힘든 상황에서도 어떤 관찰과 추리를 결합하여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는 애초에 누가 범인임을 짐작하고 있었고, 단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할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범인이 누구인지 최후의 순간까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 

마치 왓슨박사에게조차 범인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셜록 홈즈를 닮아 있다.

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모습 또한 홈즈와 매우 닮았다.


그가 거짓말 탐지기의 논리적 오류를 증명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남들은 생각할 수 없는 점을 꼬집어내는 그를 보고 있자면 정말로 우리나라에 이런 변호사가 있나 궁금증이 생긴다.



"피고인은 앞서 '남편을 불러내 만났는가'라는 질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답을 금방 못 했죠. 그 질문에는 아직 답을 하지 않은 겁니다. 그 상태에서 이어진 '그리고'라는 말은 아직 대답하지 않은 앞서의 그 질문을 뜻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첫째, '그날 저녁 남편을 만났는가'와, 둘째, '그를 살해했는가'라는 두 질문으로 분해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그중 앞의 질문에 답했던 것입니다. '아니다'라고요. (후략)"


p. 211



평소엔 법정에서 얼굴을 보기조차 힘든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변호사.

냉소적인 유머에 능한 남자.

변호사 고진이라는 흥미로운 캐릭터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흔히들 말한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믿지 않는다.

누구나 기억의 저편에서 가장 뒤에 있는 걸 조금씩 묻어둔다.


그런데 소설 속 세 명의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그들의 치기어린 달리기 시합으로 결혼 상대를 정했던 대학교 바로 그 순간부터,

20여년이 훨씬 지난 이 순간까지 마음 속에는 늘 '김명진' 이라는 한 여성이 자리잡고 있다.

변호사 고진에게 "20년이나 지났는데..." 라고 말하며, 

자신들이 어찌 김명진을 사랑하는 여자로 보겠냐며 도리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는 그들.

하지만 속마음은 그와 정반대이다.


남궁현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대화도 매끈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인물인데, 그런 그에게도 김명진이 늘 자리한다.

김명진과 꼭 닮은 외모의 베트남 여성과 한 차례 결혼했던 그. (나중에 김해나가 이 둘의 사진을 보고 매우 슬퍼한다.)

베트남 여성의 죽음 이후 그에게도 다시 결혼이라는 이름이 찾아오게 된다.

이번에 그 대상은 다름아닌 김명진의 동생 김해나이다.

신창순과 결혼하여 감히 어쩌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선택은 '가장 김명진스러운' 김해나이다.

그의 속마음을 안 상태에서 과연 김해나는 결혼식을 올리고 그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한 편 대학교수인 한연우는 김명진을 '관념적으로'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 만난 변호사 고진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에 솔직하다.

이제 더 이상 김명진을 볼 수 없다는 걸 안 상태에서 그가 한 선택은 최대한 명진을 도우는 거다.

성인군자같았던 그가 임의재에게 찾아가서 김명진을 돈 문제로 괴롭히지 말라고 화내는 것은 매우 의외이다.

그가 평생을 독신으로 산 것도 어쩌면 김명진때문이 아니었을까?


세 명의 남자들 중에서 가장 놀라움을 준 건 바로 임의재이다. 

누구에게나 거드름피우며 자신 마음대로 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한 그는,

부자들이 할 만한 행동을 그대로 보이며 안하무인의 대명사인 듯 하다.

이혼한 상태의 그가 남편 신창순에게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는 김명진에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자신 외의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이는 그가 아끼는 김명진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

대학 시절 김명진이 사랑한 남자 역시 임의재였다.








타고난 매력





법정에서 의외의 증인으로 나온 고등학교 동기가 김명진에게 불리한 발언을 한 건 그럴만하다.

김명진은 예쁘고 만나는 모든 남자를 반하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데다 착하고 조용해서 적이 없다.

그런 친구를 둔다면 누구라도 '열폭' (열등감 폭발) 할 만하다.

자신의 외모나 매력이 김명진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둘이 함께 다니며 시너지 효과라도 내겠지만,

그것마저 아니라면 평범한 소녀에게 있어서 김명진은 그저 눈엣가시일 뿐이다.


여기에 순정만화같은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 불문학과에서 남자 4명이 한 여성에게 반한다.

그들은 그 누구도 택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 이 여성을 좋아한다.

남자 넷은 경쟁관계이지만 동시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들은 함께 청혼하고 한 명만 고를 수 없다는 여자의 말에 달리기시합으로 정하기로 한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누구나 사로잡는 김명진을 오늘날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어장관리녀' 라고 칭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어서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하고 있는 상대에게는 끊임없는 희망고문을 하는 어장관리녀인 셈이다.

만약 김명진이 실존 인물이고 SNS라도 한다면 댓글마다 찬사와 시기어린 말이 함께 달릴 것이다.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내재된 매력이 정말이지 부럽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떠한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끝까지 진범을 알기가 어려워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500페이지 가까운 두께에도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마치 한국형 법정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그리고 제법 해피엔딩이어서 더욱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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